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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23. 2022

(희)망했다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얼굴을 제외한 그의 모든 기관은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식사는 물론 심지어 대소변 처리도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특수 제작된 전동휠체어를 타고 기차를 이용하고 마트에도 간다. 입을 활용해 ppt자료를 만들고 강의를 하고 방송 출연도 한다.  처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대형마트에 막상 용기를 내서 간신히 도착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선뜻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인 후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마트에 들어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른 물건을 담을 수도 계산대에 올려놓을 수도 없었다. 물론 구입한 물건을 혼자 들고 나오는 일 또한 불가능했다.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되는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장에서 그를 만났다. 훤칠한 외모에 활달한 말투. 몸이 불편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의 말처럼 나 또한 내 주위에 있는 장애인들을 유심히 지켜보거나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배려해 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런 불행은 절대 나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이 일상에서 겪어내야 할  고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그들의 힘겨운 삶에 관심도 없는 것은 물론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왜 그들이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폐 아들을 둔 친구가 왜 장애인연대 대표로 발에 땀이 나도록 뛰며 삭발투쟁까지 하는 열혈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만 치부해온 것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에 관계없이 그들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흉내 내며 즐거워하는 어린이의 편견 없는 모습, 반면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장애인의 행동은 우두커니 바라보거나 방관하는 어른의 모습을 그려내는 영상 상속에서 얼핏 내 모습을 만난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장애를 얻게 되는 이들의 비율이 많다는 통계에는 한번 더 놀란다. 말 그대로 우리는 예비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 한때 '나는 망했다'고 여기며 한없이 절망하고 동반자살 사이트에 가입하기도 했던 그는 타인의 시선에 무뎌졌으며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았고 세상에 '희망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바꾸기 위해 그는 오늘도 새벽 두 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고 한다. 그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망했다'가 아니라 '희망했다'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고통에 맞서기를,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이라고 말하는 많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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