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Sep 26. 2022

소금이 온다

염전에 가 본 적이 있나요

무작정 그를 만나러 갔다. 하늘은 푸르렀고 우리 가슴도 마냥 부풀어 올랐다. 모닝커피 한 모금에 늘어진 눈꺼풀이 일어나고 마음이 뜨듯해진다. 얼굴에 스미는 바람결은 적당히 선선하고 누군가와 어디를 가도 설렐 것 같은 가을 날씨다. 더구나 눈빛만 바라봐도 마음이 통하는 그들과의 일탈 같은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으로 채워질 것을 예감한다. 


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제철을 맞은 실한 꽃게탕으로 바다를 먼저 만난다. 시장 안에 자리 잡은 그곳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제법 많다. 정갈한 밑반찬들도 식욕을 자극한다. 얼큰하게 우러난 국물과 윤기도는 쌀밥에 입맛이 절로 돈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살이 꽉 찬 꽃게를 야무지게 발라 먹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고 배까지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날이다. 이제 그를 보러 갈 시간. 운이 좋다면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혹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정표를 따라 간 그곳은 바로 신진도리 염전. 소금 창고 옆에 차가 없다는 것은 주인이 없다는 뜻이고 오늘은 소금 수확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단 염전을 둘러보고 카페로 향한다. 해가 좀 기울기 시작할 무렵에 다시 오자는 계획이다.


도로변에 자리한 널찍한 카페가 적당히 고요하고 편안하다. 각자 기호에 맞게 차를 주문하고 달큼한 당근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인다. 달지 않고 계피향이 나는 수제 케이크이다. 사방이 통창으로 되어있는 카페는 비나 눈이 오는 날 찾으면 더 운치가 있을 듯하다. 미뤄놨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다정하게 시간을 채운다.


다시 점찍어둔 염전으로 돌아왔다. 널찍한 염전을 찾았는데 아쉽게도 주인은 없다. 소금을 기다리는 염전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상기하며 조심스레 그곳을 어슬렁거린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벼처럼 소금 또한 그렇다. 매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는 염부의 발자국 소리, 물결을 어루만져주는 다정한 바람의 손길, 하루도 빠짐없이 염전에 고인 물로 목욕을 하는 구름의 살가운 애정을 먹고 자란다.


창고 한 곳에 쌓여있는 소금산이 장관이다. 소금은 인생처럼 단맛, 신맛, 짠맛과 쓴맛이 난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상기하며 가만히 소금 맛을 음미한다. 짜다고만 여겼던 소금에서 쓴맛이 나고 살짝 달큼한 맛도 나는듯하다. 햇살을 등지고 소금을 거두기 위해 대파질을 하는 염부들을 보기는 틀렸구나 포기하고 나오는 길에 서둘러 소금을 수확하는 그들을 만났다. 양해를 구하고 어설프지만 대파질도 해보고 난생처음 소금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으니 오늘은 정말 대운이 트인 날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소금은 그들의 몸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온 땀들이 고여서 짠맛이 나는 것이고 거기에 그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더해져 다양한 인생의 맛이 나는 것은 아닐까. 비가 너무 자주 와도 안 와도 안된다며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그들. '소금이 온다'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자연의 순리를 배우는 날이다.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단 것, 신 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져. 뿐인가.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짠맛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맛이 강해.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소금에 포함된 미네랄이나 아미노산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조화야.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쓴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겠 지. 

-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 중에서 -



작가의 이전글 (희)망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