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난청

by 에퀴티

6년 전쯤인가 건강검진 청력검사하면서 경도난청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검사하시는 분 조언대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경계선에 가까워졌으나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습니다."

두해 지난 후에는 종합 소견 첫 줄에 경도난청-정기적 추적관찰이라고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쓰였고, 또 두해 지난 후에는 난청-정기적 추적관찰로 변경되었다.


1.

정기 검진 소견서에 굵은 글씨로 박힐 때부터 가족들의 불편함, 오해, 구박, 핀잔, 걱정, 배려가 시작되며, 난청인으로 공고히 된다.


첫째 방에서 모자 지간에 불편한 대화를 오랜 시간 동안 문 밖까지 들릴 정도로 하고 나서, 거실에 와서는 아내가 씩씩대며 말을 꺼낸다.

“들었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 표정을 보곤 얼굴이 찌그러진다.


소파에 앉아서 좋아하는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식탁에 앉은 아내가 조잘 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더니, 갑자기 잔소리가 귀에 꽂힌다.

“요새 내 얘기에 왜 대답을 안 하느냐, 딴생각을 하는 거냐, 무시하는 거냐"


둘째가 등교 준비를 위해 방문을 열어둔 채 거실, 욕실 오가더니,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들어오지 마"

아빠가 "뭐라고?" 하면서 들어가서는 서슬 퍼런 짜증 소리를 듣는다.


TV를 함께 보는데 누군가 대사를 놓쳐서 물어보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친근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나도 놓쳤어.”


가족과 함께 TV 시청 중에 클라이맥스에서 대사를 놓쳐서 물어보면 반응이 매몰차다. 특히 로맨틱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잊을 수가 없다.

“몰입에 방해되니까 잠자코 조용히 보세요.”

“나중에 재방을 보시거나 옆방에서 스마트폰으로 크게 틀어놓고 보세요.”

“넷플릭스에 자막 버전 나오면 그때 보세요.”


어느덧 누군가 말을 걸면, 습관적으로 "어?"라는 소리로 반응을 한다. 이해를 못 했으니 다시 얘기해 달라는 의미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어"라고 뱉어낸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고쳐보겠다고 "어?" 할 때마다 1만 원씩 저축하겠다고 하더니, 며칠 만에 너무 많이 모여서 포기했다. 그래도 "어?"는 줄었다.


요새 가족들한테 난청인으로 이해해 달라고 자주 얘기하면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가족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가족들도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고, TV 시청에 합류하면 볼륨을 높여 주고, 잔소리와 짜증 말미에는 미안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이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자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2.

회사에서 상사 및 구성원들한테 일찌감치 난청에 대해 커밍아웃을 했는데, 내가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듯이 동료들도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기억력 감퇴나 노안 수준으로 치부할 뿐이기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의에서 화자의 말을 오롯이 이해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버릇대로 회의실 뒷자리가 지정석이었는데, 노안이 오면서 화면 앞자리에 앉더니, 난청이 오면서 발표자 또는 의사 결정자 앞에 앉는다. 자리를 놓치면 회의 내내 귀를 쫑긋하고 집중해야 하기에, 내가 보고할 때에는 일찍 와서 자리를 선점한다.


티타임 때 모여서 잡담할 때,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가 얘기하면 폰을 만지작거리고, 조용조용 얘기하는 동료와 수다 떨 때는 민망하더라도 최대한 귀를 가까이 댄다.


노안은 마흔이 되면 누구나 겪는 변화지만, 난청은 소수만 경험한다. 난청이 악화될수록 점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작아진다. 대부분은 이해하고 위로와 걱정을 건네겠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구설이 두렵다. 가끔은 업무나 고과의 차별도 걱정되지만, 그건 지나칠 걱정이다.

‘이해도가 낮아요.'

‘함께 일하기 어려워요.’

‘나이 들면 저렇게 되는구나.’


3.

상사와는 칸막이를 사이에 둔 이웃이다. 유관 부서로만 알고 지내다, 2년 전부터 상사와 부하로, 올해부터는 옆자리다.


상사는 정면의 모니터를 보며 일을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나지막이 질문을 건넨다. 그러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상사 쪽으로 돌리고, 칸막이 너머 상사의 입 높이에 귀를 맞춘 채 꾸부정한 자세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말의 행간을 놓친 듯하면, 시선을 마주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호칭을 불러 다시 질문을 이끈다.


모니터에 질문에 대한 내용이 보이면 유추해서 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나, 불행하게도 모니터는 항상 내가 볼 수 없는 각도에 있다. 적절한 대답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문을 되묻기도 하고, 이상한 대답을 하여 상사를 갸우뚱하게 한다.

서로 이해가 상충하여 감정이 생길 때, 난청은 감정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제 말에 왜 집중을 안 하세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제 말을 무시하시는 거예요?”


상사가 질문을 했다 싶어서 벌떡 일어나 대답을 했는데, 상사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상사는 '이 사람 이거 뭐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화상회의에 집중하고, 나는 오른쪽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 앉는다.


어느 날은 환청이 들렸는지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상사한테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먼저 물어본다. 상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네?"라고 말하고는 하던 일을 하고, 나는 쥐 죽은 듯이 자리에 앉는다.


이제 상사가 자리에 앉으면 귀와 말초신경이 긴장을 한다. 상사의 목소리가 들리면 자리에서 자동으로 일어나 귀를 쫑긋 갖다 댄다. 상하 관계에서 난청을 극복하기 위한 본능이자 슬기로운 회사생활이다. 누군가 이사를 가거나 상하 관계가 해체되어야 해결될 것이다.


4.

퇴근 시간대가 지나 전철의 밀집이 한풀 꺾이면, 가끔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을 만난다. 그래도 열차 안은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인다. 도우미견은 항상 장애인보다 먼저 올라타고, 몇 정거장 뒤 내릴 문 앞에 장애인이 자리를 잡으면 그 곁에 조용히 앉는다. 바른 자세, 과묵함과 친근한 눈매를 보면 누가 봐도 도우미견이다. 사람이 많음에도 놀라지 않고 차분하다. 사람들이 대견하다고 아는 체하거나 쓰다듬어도 놀라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은 도우미견 칭찬을 자주 듣는 말 인양 씨익 웃고 만다.


어느 날 그들이 탑승한 후에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몇 정거장 후에 내릴 것이기에 항상 그러하듯이 문 앞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휠체어는 그들을 지나쳐야 한다. 휠체어 앞바퀴가 열차 문 안쪽으로 걸치기는 했는데, 더 이상 전진하기가 어렵다. 휠체어 장애인은 그들을 보고 말은 못 하고 곤혹스러운 눈빛이다. 도우미견이 눈치챘는지 옆으로 살짝 자리를 내주고, 시각장애인도 도우미견 때문인지 휠체어 소리를 들었는지 따라서 움직인다. 휠체어 장애인은 뒷바퀴까지 탑승시키고 자리를 잡고 고정시킨다. 도우미견을 보고 밝게 웃어 준다. 비장애인들도 도움을 주려고 한 발짝 나섰지만 어떻게 도와줄지 모른다. 우물쭈물하는 동안 장애인들 스스로 해결한다.

이제 그들은 전철에 내려 승강기를 타고 개찰구를 지나 다시 승강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나도 그들이 오랜 투쟁 끝에 쟁취한 이동의 동선을 따라간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반려견의 꼬리는 위로 올라가 봄바람 따라 살랑살랑거리고, 시각장애인의 발걸음도 가볍다. 도우미견은 앞서고, 시각장애인은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간다. 도우미견은 장애인의 눈치를 보거나 걱정 없이 총총 총총 걸어가고, 장애인은 목줄이 있는 듯 없는 듯 발맞추어 간다. 나무사이의 노란색 보도블록이 길을 안내한다.




노화가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오는 사람은 소수이며, 그들은 다수가 될 때까지 가정에서 직장에서 스스로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서 감내하거나, 소수를 배려해 달라고 주변을 설득하며 버텨 나간다. 그러나 장애인한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모두들 위해서 소수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그 길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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