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돌봄

by 에퀴티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다. 거리에는 구세군의 종소리와 김장 나눔 행사 현수막이 보이고, 방송에서는 연탄 나눔과 불우이웃 돕기 명단이 흘러나오며, 사람들 가슴에는 사랑의 열매 배지가 붙어 있다. 국가, 학교, 회사,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직간접으로 돌봄을 제공하고 있고, 우리도 눈을 감고 천천히 하루 일과를 돌이켜 보면 돌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 달에 한번 바닥 대청소가 있다. 밤늦게 청소하기 때문에 자기 자리 의자나 박스 등 물건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퇴근한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니, 새로운 사무실 풍경이 펼쳐진다. 똑같은 모양과 색상을 가진 큼지막한 의자들이 모두 나를 응시한다. 자리에 와서는 오래간만에 힘을 주어 의자를 내리고 앉는다. 아직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권위 있는 의자들이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한 마디씩 한다.

"A는 팔에 힘이 없어서 어제 누가 올리는 것을 도와줬던데."

"B는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여 애들 하교시키고 눈치 보며 늦게 출근하는데, 그때까지 의자가 있으면 너무 티 날 텐데."

"C는 어제 술자리를 2차, 3차까지 가서 늦을 텐데."

집에 있는 가볍고 친근한 의자와 다른 중량감 있는 의자 세개를 내려 준다. 책상 위 남아 있는 의자들이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고 째려본다. 특히, 조직 책임자 의자가 포스를 뽐내면서 매섭게 뚫어져라 본다. 모조리 내려 준다. 내릴수록 힘에 부쳐서 자연스럽게 의자를 몸에 밀착해서 내리더니 의자 바퀴에 붙은 얼룩이 옷으로 옮겨 붙어 떼어지지가 않는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살짝 묻히고, 손톱으로 정성스럽게 살살 긁어내니 떨어졌다. 주인의 패션스타일과 결이 다른 시커멓고 해진 슬리퍼가 눈에 띈다. 내 자리에 있는 여분의 슬리퍼를 줄까 망설이다가 포기한다. 내 이미지가 발냄새와 무좀에서 자유로운지 확실하지 않다.

마지막 빈자리 2개가 남았다. 주인이 없거나 공용으로 사용하는 오갈 데 없는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제 퇴근할 때 의자뿐만 아니라 바닥에 있던 박스까지 올렸다. 마지막까지 원위치시켰더니 주위가 확 뚫렸다.

드디어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2.

장기 휴가 또는 출장을 갔다가 복귀하면 설레면서 낯설긴 한대, 1년여의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 어떨까? 게다가 휴직 전 팀은 사라지고 낯선 팀과 팀원들과 함께 한단다. 새 생명을 세상에 품어내고, 건강하게 기르느라 온 힘을 쏟았던 이들이 복직할 때,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출근해서 이메일 체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복직할 친구가 옆자리에 앉는다고 한다. 책상 위를 슬쩍 보니 묵은 먼지가 장난 아니고, 자세히 보니 태생을 모르는 얼룩도 여기저기 심하다. 다행히 1~2시간 후에나 온다고 한다. 10년 전세살이 끝에, 처음으로 분양받은 집에 들어가며 했던 입주 청소처럼 깨끗하게 환영하고 싶다. 먼저 덕지덕지 눌어붙은 묵은 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손 닦는 데 사용하는 핸드 타월을 두 손으로 빠르게 뽑아낸다. 한무데기는 물에 적시고, 나머지는 마른 상태로 가져온다. 물에 적신 타월로 먼저 책상을 쓱 한번 닦았더니 타월이 먼지 범벅이다. 물 타월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나머지 책상 면을 훑듯이 닦아준다. 그러고 나서 마른 타월로 쓱싹쓱싹 물기뿐만 아니라 먼지 찌끄래기와 얼룩을 닦아낸다. 책상에 이어서 3단 서랍 위/앞/옆도 동일한 방법으로 초벌청소를 끝낸다. 이제 찌라시와 함께 받았던 소형 물티슈를 사용해서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한 서랍 안 청소를 한다. 금세 동이 난다. 동료한테 대형 물티슈를 협찬받아서 쓱싹쓱싹 어깨가 뻐근하도록 닦는다. 아직 얼룩이 눈에 띈다. 화장실에 가서 물티슈에 손 세정제를 잔뜩 묻혀서 닦는다. 책상과 서랍 외관은 제법 청소한 티가 나고 서랍 안도 깔끔하다. 이제 문으로 닫혀 있던 겉옷 넣는 옷장, 수납장을 청소한다. 여기는 물 타월과 마른 타월이면 충분하다. 다시 닦고 또 닦는다. 이제 마쳤는가 싶었는데 의자에 먼지가 쌓여 있다. 특히 뒷덜미 닿는 부위는 비듬이 떨어진 듯 색이 바래 있다. 닦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기똥찬 묘수가 떠 오른다. 의자를 똑같은 모양과 색상의 의자가 잔뜩 있는 회의실로 끌고 가서 제일 깔끔한 놈으로 교체를 하고, 비듬 의자는 제일 구석에 놓아둔다. 의자를 끌고 왔다 갔다 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옷에 땀이 찰 정도로 일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더니, 내 책상과 서랍이 째려본다.


3.

퇴근까지 1시간 남았는데, 금일까지 각자 업무를 주어진 양식에 맞추어서 모두 취합해서 정리하라고 한다. 상위 조직에서 요청했고, 금일 팀단위 취합을 해야 내일 실과 담당 단위, 모레 센터 전체로 정리해서 본부로 송부하는 일정이다. 팀단톡방에서 취합할 사람을 자발적으로 추천받는다. 모두 눈치 보면서 묵묵부답이고 시간만 흐른다. 그러다 솔선수범의 대명사,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가 나선다. 먼저 템플릿에 맞추어 본인 것을 순식간에 정리하여 공유하고서는 각자 내용을 채워달라고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니 기존 자료 중에서 발췌해서 채워 주면 본인이 정리하겠다고 한다. 휴가 중, 회의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어떻게 할지 가이드를 준다. 단톡방에서 엄지척, 하트 아이콘 숫자가 쑥쑥 올라가고 칭찬의 릴레이가 이어진다. 얼마 후에 어떤 이는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어떤 이는 이메일로 공유한다. 어떤 이는 기존 사람이 송부한 것에 본인 것을 업데이트하고, 어떤 이는 본인 부문만 달랑 공유한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취합을 끝냈는데, 업데이트할 것이 있다고 누군가 다시 보낸다. 짱가는 '업데이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대인배 코멘트와 함께 다시 정리해서 실 담당자한테 송부한다.


내일이면 누가 어제 무엇을 취합했는지 잊힐 것이고, 새로운 취합이 있을 수 있다. TV의 짱가는 감동으로 몇십 년 동안 가슴속에 남아있는데, 우리의 짱가는 바로 잊힌다. 그리고 연말 평가에도 성과에 추가하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취합과 정리를 부끄러워한다.




올해 하반기는 대중의 신망을 받던 두 창립자 덕분에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인간과 고객의 차이'를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어록을 곱씹을수록 '이윤의 맛'이 배어 나온다.


“손익을 따지기보다 고객이 힘들 때 우선 고객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쿠팡은 고객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위기 상황이지만 계속 고객에게 감동을 전하면서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기 바란다.”(쿠팡)


"매장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며, 이들이 매장이 가진 에너지의 핵이다. 구성원들이 고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는 결국 본인들 스스로가 만족스럽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런던베이글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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