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대로 있어도 어린 시절을 되돌릴 수 없듯, 음식이 여전해도 그 시절의 맛은 다시 만들 수 없다.
1. 오징어 숙회
자식의 생계에 대한 책임에서 엄마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삼 남매와 함께였고, 삼 남매 몸무게를 수 킬로그랩에서 수십 킬로그랩까지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삼 남매는 도시락 반찬으로 주로 김치와 계란 프라이를 가져갔고, 질리지 않는 두부 듬뿍 된장찌개를 먹었고, 때로는 닭 모가지만 들어간 닭볶음탕을 먹었다.
그와 반대로 아버지는 자유로워서 간헐적으로 함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짧았지만 풍족했다. 온갖 종류의 과자와 사탕이 한가득 있는 선물세트를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승용차를 타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신나게 물놀이를 했는데, 어쩌다 평범한 일상도 있었다.
늦잠을 잘 수 있는 일요일 아침인데, 아버지가 목욕탕을 가자고 아침 일찍 깨운다. 형은 벌써 일어나서 옷을 입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 뜨거운 온탕과 차가운 냉탕만 있는 목욕탕은 너무 싫다. 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하니 벌써 사람이 가득 찼다. 다행히 귀퉁이에 막 나가려고 일어서는 할아버지가 있다. 우리는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한다. 바가지에 비누, 샴푸, 때수건을 넣어서 자리 주인 표시를 한 후에 샤워기로 몸을 적시고 온탕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탕 가운데에 앉아 '시원하다'라고 탄식하면서, 형제들한테 들어오라고 하고, 형은 벌써 엉덩이까지 들어갔다. 난 도저히 무릎이상 들어갈 수 없다. 아버지가 형을 낚아채더니,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 몇십 초가 흐르더니, 형은 아버지 품을 떠나서 잠수까지 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형이 장난기가 발동하더니, 온탕의 물을 끼얹는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가 다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번에는 몸을 비비 꼬면서 앉는 데 성공한다. 부동의 자세로 꾹 참고 있으니 괜찮아졌다. 옆의 아저씨는 아까부터 온탕에 앉아만 있다. 때를 밀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온탕에서 불려야 하는데, 앉아만 있다. 뜨거워서 그런 거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때를 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 관문으로 목까지 들어간다. 그동안에 몸은 익어간다.
이제 제일 싫어하는 때 미는 시간이다. 매번 내가 스스로 때를 밀겠다고 하고, 완벽하게 밀어도, 어쩔 수 없이 등을 맡기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아버지는 탈출하려는 몸을 붙잡고는 온몸 구석구석 다시 때를 민다. 등에서 팔로, 목에서 가슴으로, 엉덩이에서 다리로 대패질하듯이 밀 때마다 한 움큼씩 나온다. 대패질에 살이 시뻘게졌다가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다. 간혹 내가 때가 나오지 않아서 세게 밀면 간혹 멍이 들기도 하는데, 아버지는 나보다 더 세게 미는 데도 상처 난 적이 없다. 때수건에 수건을 넣어서 두툼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비법이다. 이제 때를 밀고 샤워기로 씻어내면 자유시간이다. 이제 집에서 할 수 없는 온갖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누가 오래 잠수하는지 겨뤄보고, 수건을 채찍 삼아 바가지 경주를 하고, 누구 샴푸 포장지가 배수관을 따라 하수구에 먼저 도착하는지 경주를 하고, 바가지에 물을 얼마만큼 담아야 가라앉는지 시험하고, 샤워기로 물싸움하기 등을 실컷 하면 집에 갈 시간이다.
목욕탕 문을 나서자 바깥공기가 온몸 구석구석을 스며들며 시원함을 퍼트린다.
우리는 뱃속에 가득 찬 허기를 달래면서 경동시장으로 향한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어묵을 먹고 싶은데, 그쪽 방향과 정반대인 수산물 골목으로 가서 매끈하고 윤기 있는 커다란 생물 오징어 몇 마리를 산다. 그리고 집으로 향한다. 허기가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엄마가 밥과 국을 이미 해놓고 기다리고 있고, 누나는 밥상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재빠르게 오징어를 손질하고 뜨거운 물에 데친다. 그동안에 엄마는 고추장에 식초, 참기름, 참깨를 듬뿍 넣고 초고추장을 만든다. 식탁 한가운데에 오징어 숙회가 김을 모락모락 풍기면서 자리를 잡는다. 다리 한 점을 잡고 초고추장을 살짝 묻혀서 입안에 넣는다.
목욕탕 물냄새와 목욕 마칠 때 시원함이 온몸을 감싼다.
요즘은 대중목욕탕에 잘 가지 않고, 가더라도 탕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 귀찮아서 때도 밀지 않는다.
오징어는 귀해져 숙회집을 찾기 힘들고, 먹어도 이젠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다. 그리고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차가운 숙회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2. 참기름 김
어릴 적 경동시장 근처의 막다른 골목에서 살았다. 다른 동네 아이들은 모르는 특별한 골목이었다. 골목에는 단독주택들이 ㄷ자 형태로 있었고, 골목 입구 쪽에는 여인숙이 있었고,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구멍가게가 골목 안쪽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목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남녀 구분 없이 모두 함께 모여서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나 따라 하기, 다방구, 얼음땡, 비석치기 놀이를 했는데 골목에 사는 어떤 부모도 시끄럽다고 소리치거나 쫓아내지를 않았다. 그런 놀이들이 시들어지면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집안에서 모여서 놀기 시작하고, 거칠게 몸으로 노는 일곱 발 뛰기, 오징어포, 자치기를 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손야구(짬뽕), 야구, 축구를 하면서, 골목은 달라졌다. 한창 놀고 있으면 시끄럽다고 다른 데 가서 놀라고 소리친다.
그러다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집안으로 넘어가면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공 주인 아이는 집안으로 넘겨버린 아이한테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서 가져오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집은 우리가 놀 때마다 시끄럽다고 야단치는 문숙이 엄마네 집이다. 저 집에 넘어가서 찾지 못한 공만 꽤 된다. 현관도 굳게 잠겨 있어서 몰래 들어갈 수도 없다. 담 너머에 공이 어디 있는지 힘을 모아 무등을 타고 찾아본다. 마루 밑에 공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문숙이를 불러 공만 가져오라고 하면 될 일이지만, 깍쟁이라 우리가 부른다고 나올 애가 아니다. 공 주인이 계속 재촉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두드린다.
"문숙아, 문숙아, 문숙이 있니?"
나오라는 문숙이는 나오지 않고 엄마가 나온다. 잠에서 깨어 귀찮다는 표정의 얼굴을 문 밖으로 내민다.
"문숙이 왜 찾는데?"
"문숙이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요"
"문숙이 언니들이랑 친척집에 놀러 갔는데"
"그래요?...... 그러면 마루 밑에 있는 공 좀 주세요?"
문숙이 엄마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마당에 있던 양동이에서 바가지로 물을 한가득 떠 골목에 뿌리며 속사포처럼 잔소리를 쏟아낸다. 우리는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고, 혹시나 공을 던져주지 않을까 눈치만 살피지만 대문은 꽝 닫힌다.
그 당시 여인숙으로 4인 가족이 이사 왔고, 그중에 또래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8호실에서 산다고 8호실이라고 불렀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축구를 할 때는 축구공을 가지고 왔고, 맨주먹으로 야구를 할 때 포수글러브와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왔다. 야구 폼도 멋있을 뿐 아니라 방망이도 잘 휘둘러서 공을 잘 맞추었고, 글러브로 공도 잘 잡아서, 골목 형들의 사랑도 받았다. 8호실 부모님은 자주 함께 있었고, 8호실 네 놀러 가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어느 날 한참을 놀다가 8호실 네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고, 끼니 시간이 되었다. 8호실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과 참기름을 바르고 맛소금으로 간을 마친 윤기가 살아있는 김을 가져왔다. 수저로 밥을 알맞게 퍼서 그 위에 김을 감싸고, '호'하고 한번 불고는, 8호실 얼굴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면서 입으로 넣어준다. 8호실 옆에서 침이 꿀꺽 넘어간다. 그리고는 똑같이 밥 위에 김을 올려놓고 '호'하고 불고 내 입으로 넣어준다. 따끈따끈한 밥을 감싼 김에서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풍기더니, 목구멍으로 쏙 빠져 버린다. 여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다. 8호실 한번, 나 한번 아기새처럼 입을 벌린다. 8호실은 공책에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고, 나는 내 차례를 놓치지 않으려 8호실 엄마를 쳐다보다가 때를 맞춰 입을 벌린다. 8호실은 배부르다고 하는 데,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다. 우리 집 참기름 김은 간이 세서 밥을 가득 퍼야 했고, 배가 빨리 불렀다.
얼마 지나서 8호실 네는 자취를 감추었고, 중학교 올라가서 8호실 반을 지나가다 볼 수 있었다. 교실 안 창문 너머로 보이는 8호실은 금테 안경과 안경걸이를 하고 있었고, 칠판 앞에서 멋지게 무엇인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동네 골목처럼 교실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입맛이 없을 때에, 밥에 조리김을 싸서 입안에 넣어주면, 스마트폰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