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by 에퀴티

알바의 기준은 무조건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성비가 높은 것이었고, 그런 알바 제안이 오면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 시절 알바비는 시급이 아니라 일당으로 계산되었고,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24시간을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

1990년 8/2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은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하여, 하루 만에 점령하였다. 신문, 방송에서 연일 대서 특필하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는 UN을 기반으로 어떻게 제재를 할지 논의를 한다. 그리고 1991년 1/17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작전명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을 개시한다. 이라크 본토 및 쿠웨이트 주둔 이라크군 대상으로 대규모 공습을 강행한다.

1991년 2/24일 지상전을 개시하고, 2/26일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시티를 해방한다. TV만 켜면 걸프전 얘기만 나온다. 그때 북한의 세습체제처럼 쿠웨이트가 국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왕정국가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2/24일 걸프전 지상전을 개시한 날, 학교에서 선배가 다급하게 나를 찾더니, 제안을 한다.

"일당 엄청난 알바가 갑자기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래? 오늘 오후부터 해야 하고, 2~3일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거야"

"저야 무조건 Go죠, 어디서 하는 거예요?"

"을지로이고, 5시까지 도착하면 돼."

"근데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국기 만드는 거나 봐."

"네, 이따 봬요."

오후에 선배와 만나서 사무실에 도착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대에 다니는 학생 2명이 합류하였다. 선배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높아 보였다. 사장님이 맞아 주었고, 긴급함을 강조하며 곧바로 작업 얘기로 이어졌다. 목소리에는 흥분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학생들, 오늘 작업은 성조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걸프전을 알고 있죠?"

"네?, 성조기와 걸프전은 무슨 상관이죠?"

"아마 걸프전이 하루 이틀 안에 끝날 것이고, 미군이 쿠웨이트에 입성할 겁니다. 그때 쿠웨이트 시민들이 미군을 환영하면서 성조기를 흔들 겁니다. 오늘 그 성조기를 만드는 거예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성조기를 만들다니 대단하다. TV 속에서만 보던 걸프전과 연관되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을 느낀다.


우리의 할 일은 성조기가 빼곡히 인쇄된 천이 감겨 있는 롤러를 천천히 풀어 가며, 인두로 한 장 한 장 떼어내 낱개의 성조기로 만들어 깃대에 꽂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쿠웨이트를 보낼 것이기에, 밤을 새워서 일을 하는 것이고, 많이 하면 추가로 알바비를 주겠다고 한다.

작업하기 시작한다.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붙는다. 쉬는 시간 없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한다. 서로 협업하면서 작업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강제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질문은 계속된다.

'도대체 누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냈고, 가까운 나라를 놔두고 한국까지 주문이 왔고, 을지로에 있는 수많은 회사 중에 여기 업체로 흘러왔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쿠웨이트 주민들은 도망간 국왕이 귀국하면 환영할지도 궁금했다.'

하루를 꼬박 일하고, 둘째 날이 반 정도 지나갈 때, 사장님이 갑자기 멈추라고 한다. 수출 계약이 어긋나서 성조기를 납품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알바비를 깎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다행히 여대에 다니는 선배들의 말발로 약속한 만큼의 일당을 받을 수 있었다.

TV 속에서 미군이 쿠웨이트에 입성할 때, 쿠웨이트 주민이 성조기를 흔드는 장면을 기다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성조기를 공급했다.


걸프전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이제 아무도 국기를 흔들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예멘에서,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만 계속 죽어가고 있다.

2.

1991년 12/24일 크리스마스이브다. 아침부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뭐 하니? 자고 있지?"

"그래, 왜 아침부터 전화질인데?"

"오늘 저녁에 할 일 없지? 여자 친구도 없으니 어디 가서 민폐 끼치지 말고, 일이나 하자"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그래 하자"

오늘 일은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난다고 한다. 이브이기도하고 밤새도록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당이 몇 곱절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굴러 들어온 복덩이다.

전쳘역에서 친구를 만나고, 알바할 장소로 향한다. 주택가에 있는 단독주택이다. 사장님이 우리를 반지하로 안내한다. 개조를 해서 그런지, 전체가 널찍한 하나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온갖 종류의 옷으로 가득 차 있다. 바닥에 보일러가 없는지 방이 차다. 방석을 깔고 앉자마자, 사장님이 오늘 할 일을 브리핑한다.

"조금 지나면 아동복을 잔뜩 실은 트럭이 올 건데, 그것들을 여기로 내려서 포장지에 이쁘게 넣으면 돼요. 새벽 5시에 작업한 물건을 실을 트럭이 다시 올 거니까, 그때 작업한 것을 다시 실어 주시면 돼요."

말이 끝나자마자 트럭이 도착했고, 우리는 브리핑대로 실행한다.


아동복은 사이즈별로 끈으로 묶여 있고, 포장지도 아동복 사이즈와 동일하게 구분되어 있다. 포장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원아동복 로고가 붙어 있다. 백화점에서 판매를 하고 나름 중산층 이상에서 인기가 있는 브랜드다. 이제 원아동복 공장에서 이제 갓 출하된 것처럼, 흐트러진 아동복을 정리해 깔끔하게 접은 뒤 포장지에 넣는다. 친구와는 계속 수다를 떤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을 하고 있는 처지를 잠시 한탄하더니, 곧바로 그런 처지에 놓인 서로를 헐뜯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금 상해갈 즈음, 아동복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재고떨이하면서 포장지가 상한 것을 재포장하는 건가?"

"여기 아동복 짝퉁처럼 보이지 않니?"

"우리 신고해야 하나?"

"야, 인마, 일단 일을 하고 일당을 받은 다음에 고민해야지"

"아마 이거 재포장해서 지방으로 보낼 거야"

"영어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출하는 거 같지 않니?"

"근데, 왜 이브에 작업을 해서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에 보낼까?"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릴 거야"

"출출한데, 여기 야식을 줄려나?"

"먹자고 하는 일인데, 안 주면 우리가 사다 먹자."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붙는다. 새벽까지 모두 마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다. 게다가 고정된 일당이라 모두 마칠 필요도 없다. 새벽 5시 되니 트럭이 도착했고, 우리는 포장한 아동복들을 트럭에 싣고, 약속된 일당을 받는다.

차디찬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전철역으로 향한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산타가 선물을 나눠주는 크리스마스인데,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몸은 무겁고 주변은 적막하다. 주머니 속에서 자꾸 돈봉투가 만져졌다. 잠깐 반짝하듯 돈 쓸 생각이 들었지만,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알코올을 주입하기에는 가엾어 보여 가족들 곁으로 걸음을 옮긴다.



#. 짝퉁 관련 에피소드


한 번은 선후배끼리 농촌활동을 갔는데, 사전에 농촌에 위화감을 줄 수 있으니 유명 브랜드 착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날도 각자 논에서, 밭에서 한껏 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한방에 둘러앉았다. 아직 잠자리 들기에는 초저녁이라, 자연스럽게 오늘 일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한다. 서로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맞장구도 치고, 웃기도 하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화제가 짝퉁브랜드 옮겨지더니, 각자 착용한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나이스(NICE) 신발을 보여주면, 아디도스(adidos) 신발로 받아주고, 파마(PAMA) 티셔츠를 보여주면, 휠라(FIRA) 티셔츠로 받아 준다. 모두가 재미나다고 깔깔 대고 웃는다. 그러자 갑자기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수줍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저도 있기는 한데, 창피해서...... 보여드려도 되겠어요?"

모두가 우리끼린데 어떠냐고, 다 함께 외친다.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

쑥스러운 듯이 바지 허리띠를 풀더니, 안에서 주섬주섬 속 옷 상표를 보여주면서 크게 외친다.

"쌍방아!"

예상치 못한 네임에 어리둥절하더니, 누군가 "쌍방울"하고 말하자, 모두가 포복절도하고 떼굴떼굴 굴러간다.


3.

1995년 봄이 지나갈 무렵에, 복학 예정인 선배가 알바를 제안한다.

"일당이 제법 세고 주말에도 하니까 시간 될 때 언제든지 합류해라, 혼자 하니까 너무 심심하다"

졸업 학점을 따기 위해 집중할 시기였지만 일당이 세니까 시간이 될 때마다 합류한다. 회사 이름은 클린과 테크를 조합하여 세련되게 만들었는데, 주로 하는 일은 아파트나 건물의 정화조와 물탱크를 청소하는 것이다. 작업은 무엇을 하든지, 크고 작든지, 어디를 가든지 비슷하다. 먼저 유입 밸프를 잠그고, 고여 있는 물을 펌프 등을 사용해서 최대한 빼낸다. 그리고, 고압세척기 또는 손잡이가 긴 브러시로 청소하고, 때로는 소독도 한다. 그리고 다시 유입 밸프를 열고, 원위치시킨다. 우리는 청소도구를 사용해서 깨끗하게 닦는 것이고, 정직원들은 건물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전기를 다루고 펌프, 세척기, 약품 등을 사용한다.


정화조 청소를 할 때는 회사에서 제공해 준 방수복을 입고, 장화를 신어야 한다. 그리고 정화조에 첫 발을 내디딜 때, 역겨운 악취와 둥둥 떠 다니는 오물로 '욱'하고 쏠릴 때, 꾹 참아야 하고, 방수복이 뚫려서 오물이 몸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일단 한번 더러워지는 것을 어렵게 통과하면, 그다음 익숙해지는 건 쉽다.


물탱크의 경우 아파트는 소형이 많아서, 물을 뺀 후에 혼자 물탱크 안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고 나오면 끝이다. 다만 사람들이 마실 물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대충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한 번은 강남에 있는 대형 백화점 물탱크 청소를 했다. 롯데도 신세계도 아니고, 동네에 있던 미도파 백화점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강남의 고급 백화점이라 그런지, 물탱크는 유난히 크고, 깨끗하였다. 막 색칠을 끝낸 것처럼 표면이 지나치게 새하얗게 살아 있었고, 소독약 냄새를 풍기는 병원의 물탱크가 떠올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쓱싹쓱싹 청소한 날이었다. 청소부한테 깨끗한 곳 청소는 더할 나위 없다.


수차례 서울 곳곳을 돌며 작업하던 어느 날이었다. 왕십리 쪽 한 아파트에서 정화조 청소를 하려고 봉고차에서 도구들을 꺼내 정화조 한쪽 귀퉁이에 내려놓고 있던 순간, 갑자기 한쪽에서 불꽃이 튀며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함께 온 정직원이 말 한마디 없이, 미동도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감전이 되었다. 정직원 주위에 물이 고여 있고, 몸에 전깃줄이 닿아 있다. 콘센트에서 전깃줄을 분리해야 한다. 선배가 있는 힘껏 발로 전깃줄을 패대기 치니 신발과 함께 전원선이 저 멀리 날아갔다. 콘센트에서 완전히 빠져서 분리가 되었다. 정직원 얼굴을 보니 입에서 거품이 나고 있다. 선배는 쓰러진 그를 급히 둘러업고 출구를 향해 달려간다. 나는 앞서 뛰어나가 지나가던 차를 붙잡는다. 다행히 바로 택시를 잡았고,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회사에서 사람이 오고 가족도 도착하면서 한숨을 돌리는데, 선배는 그때서야 한쪽 신발만 신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응급 처치가 끝나자 의사가 얘기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요. 다행히 심장이 없는 오른팔 쪽으로 감전이 되어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후, 우리는 그 회사를 다시 찾지 않았고, 일당은 전화로 정산했다.


그날의 일을 겪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TV 특보로 강남의 한 백화점이 붕괴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화면에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비쳤는데, 순간 알아차렸다. 한 달 전쯤에 물탱크를 청소하던 바로 그 백화점이었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순백의 깨끗한 물탱크를 갖춘 고급 백화점. 그곳이 무너졌고, 수백 명이 그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면 속 폐허처럼 남은 외벽과 기억 속 새하얀 물탱크가 겹쳐 보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자로 내몰리고, 발전소에서, 전철역에서, 물류창고에서, 조선소에서, 건설현장에서, 제빵회사에서, 반도체 공장에서 아직도 죽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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