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세대를 발가 벗기고 싶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덧칠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지울 수가 없다. 자식 세대한테도 벌써 덧칠이 시작되고 있는데, 성인이 되면 본격적으로 덧칠을 하려고 사회 곳곳에서 붓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 사회 불평등 구조의 부당함을 말하면서 상위 20%에 들기 위해 노력하기
⦁ 교육 기회의 평등을 외치면서 좋은 학원에 보내고 과외시키기
⦁ 노력을 강조하면서 성적으로 판단하고 비교하기
⦁ 공정 경쟁을 외치면서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기
⦁ 우정을 말하면서 이해득실을 따지기
⦁ 지구 온난화와 환경을 강조하면서 경유 SUV 선호하고 아무 데나 침 뱉기
⦁ 전쟁을 비난하면서, 무기와 작전에는 관심을 보이기
⦁ 노동의 존엄을 말하면서 비대면 상담사한테 날 선 어휘와 공격적으로 몰아 치기
⦁ 성소수자를 이해한다면서 정작 가까워지는 것은 피하기
⦁ 장애인이 쟁취한 사회의 안전장치에 고마워하면서, 쟁취 과정에는 거리감을 두기
⦁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가사 책임을 자연스럽게 여성에 기대하기
⦁ 이웃사촌이라고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이웃이 있어도 모른 척 하기
⦁ 효도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고 하면서 통화를 월중 행사로 하기
1.
'스스로한테 당당해야 한다', '돈은 땀 흘려 일해서 벌어야 한다',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는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덧칠되어서 우리 가족만을 위한 윤택한 삶을 만든다.
부모는 회사와 집에서 본업의 시간에 아주 은밀하게 주식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사고팔 수 있는 능력 부족으로 몇 개 종목을 수년동안 장기 보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현재가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보면서 상승/하락에 일희일비한다. 주가가 오르락내리락 변동성이 큰 날이나 거래량이 갑자기 많아지면 주식창만 쳐다봐도 지루하지 않고, 스릴 만점이다. 다행히 보유 주식의 변동성은 1년에 손꼽을 정도이다.
자리에서 메일을 쓰거나 자료를 만들다가도 주식창을 틈틈이 본다. 가끔 자리에서 주식창을 본 후에 스마트폰을 엎어 내려놓거나 화면 잠금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어 먹을 경우, 폰이 '나봐라' 하면서 주식창 노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상위 조직책임자나 동료가 자리로 오면 난감하다. 대화 중에, 어느 순간 책상 위 폰에서 밝게 비추고 있는 주식창을 보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대화 초반이면 재빠르게 폰을 뒤집는데, 이미 볼 거 다 봤으면 도저히 자리에 있기 민망해서 차를 권하면서 휴게실이나 비어 있는 회의실로 이동한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는 대로 폰 설정에 디스플레이 화면 자동 꺼짐 시간을 최단시간인 15초로 설정한다.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보다는 주식창 때문에 15초로 설정한다. 아니 귀가할 때까지 주식창을 보기 위해서 배터리 소모도 최소화해야 한다. NXT(넥스트트레이드) 도입으로 프리마켓이 아침 8시부터 열리고, 애프터마켓이 저녁 8시에 닫히면서 주식창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회의를 하다가도 안건에 따라 옆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식창을 본다. 직속상사 보고나 임원 보고도 마찬가지다. 정기 오프라인 대면회의는 옆에 의자가 없는 자리에 착석하고, 온라인 비대면 회의 시간이 되면 비어 있는 1인용 통화 박스를 찾아 나선다. 온라인 회의가 늘어날수록 심심할 겨를이 없다. 구내식당에서 다 함께 점심을 먹을 때에도 맛보다는 주식창이 좋고, 휴게실에 아무리 재미난 잡담이라도 주식창이 흥미롭다. 다 함께 주식 얘기를 하면 더할 나위 없다.
손과 눈은 노트북에 있다가도 틈만 생기면 스마트폰에 가 있다.
집에서도 주식 보는 것은 이어진다. 아내가 공감과 소통을 더 잘해 달라는 요청을 할 때도, 둘째가 자기하고 주식 중에 무엇이 좋냐는 답정너 질문에도 주식을 본다. 소파에 널브러져 좋아하는 TV를 보는데도 틈틈이 주식을 본다. 그중에 첫째는 몇 년 전 가족들한테 증여해 준 주식이 -80% 이상의 폭락을 알고 있기에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불속에서 뉴스, 블로그, 카페, 유튜브 등에서 보유주식을 언급한 게 있는지 훑어보고, 거래원들을 살펴보면서 외국인, 기관 매매 동향, 프로그램매매, 공매도 현황도 점검해 본다. 매일매일 보고 또 보며, 휴일도 예외는 없다.
방학 때 재택근무하면 아이들한테 일상이 들통난다. 이불속에서 스마트폰의 주식 창과 함께 꼼지락 거리다가 아침 8시 20분에 후다닥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책상에서 아침식사와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은 옆에서 환하게 비추고 있다. 점심때 다 함께 음식을 꼭꼭 씹으면서 슬쩍 폰을 보고, 식사하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질 때도 폰은 함께 한다. 화면 없는 화상회의 중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서로 놀란다. 아이들은 본인 얼굴이 나올까 부끄럽고, 아빠는 주식 창 때문에 창피하다.
2.
자식은 성인에 가까워질수록,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덧칠을 강요당하기 시작한다.
자식은 진로를 음악으로 정했다. 중학교 때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악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고등학교 1학년부터 학원에 다니면서, 점점 고교 고과과정을 멀리하고, 이제는 음악에만 집중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 어제 자기 전에 샤워를 했기에 순식간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면서 머리를 쓰윽 넘긴다. 아침은 마시는 걸로 때우거나 건너 띄고, 학교 로고가 등판에 끔찍하게 박혀 있는 후드 집업을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을 나선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으면 좋다. 하나둘씩 자리가 채워지는 느낌도 좋다. 수업시간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없는 과목에는 잡다한 생각을 하거나 졸음에 빠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새벽 늦게까지 눈이 떠져 있을수록 졸음으로 빠져드는 날이 많아진다. 휴식시간에는 친구들과 학업, 게임, 다른 반의 사건/사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해 수다 삼매경이다. 유독 범생이들이 많기에 짤, 게임, 음악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커진다. 점심시간에 급식을 맛있게 먹고 오후 수업을 하는데, 오전과 별다를 게 없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이제 내가 음악 쪽으로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수업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몇몇 선생님들은 학생의 본분을 강조하면서 수업에 충실할 것을 강요한다.
자식은 하교 후에, 음악 학원에 수업이 있으면 그리로 향하고 그렇지 않으면 작업실로 향한다. 음악 공부를 하기에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1년 전에 작업실을 구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단독주택의 반지하를 여러 개 방으로 개조하고 방음처리 한 곳이 있어서 매일 그곳에서 지낸다. 커다란 책상이 정중앙에 있고, 양옆에 스피커가 배치되어 있다. 책상 위에는 전자 건반, 맥북, 마우스, 키보드가 깔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을 하면서 친구들과 대면 시간이 줄어들어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데, 여기서는 집에서 감히 못하는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다. 그래서 매 주말 밤마다 친구들과의 온라인 게임을 하면 뻥 뚫리고 시원하다. 그리고 가끔 허기가 지면 배달음식도 시켜 먹고 간혹 새우잠도 잔다. 그동안 불어나기만 했던 몸도 작업실에 있으면서 대체로 하루 한 끼 간헐적 단식으로 인해서 살도 빠졌다. 오래 머물고 싶지만 부모님의 강제 통금 시간이 앞당겨져서 이제 밤 12시를 넘으면 귀가한다.
부모님한테 작업실에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가끔 아빠가 카톡이나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불쑥 나타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난번에는 하필 게임하는 중에 와서는 딴짓한다고 윈도우 데스크톱을 가져가 버렸고, 얼마 전에는 통금 시간이 한참 지난 상태에서 들어와서 작업실을 빼버리겠다고 성질을 내고 가버렸다.
이제 도저히 설득은 안되고 다양하게 덧칠하는 방법 밖에 없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전날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자마자 씻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강제 통금 때문에 집에 온 것이라, 말똥말똥하다 보니 디지털기기를 만지작거리다 잠이 든다. 부모님이 깨우지 않으면 정오를 넘기는데, 가끔 자유로운 규칙 생활을 지켜보기 힘드시면 깨워서 덧칠을 강요한다. 입시가 다가올수록 부모는 초조해지고 수위가 높아지지만, 그래도 끼니에 채워진 반찬은 좋아진다.
"상위권 대학 갈 수 있게 음악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니?"
"남들보다 몇 배 공부해야 하는 거야"
"늦게까지 뭐 하다가, 깨워야 일어나니?"
"집에 와서 핸드폰만 쳐다보지 말고, 생각 좀 해라. 책도 읽고."
이제 작업실은 부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다. 먹고 자는 것은 집이 편하지만, 그 외 나머지는 이곳이 편하다. 입시가 끝나도 영원히 지키고 싶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은 동물 입장에서 본능이고, 인간입장에서 의무인데, 그것을 권력으로 휘두르고 있다.
자식은 성장하는 것이 동물 입장에서 본능이고, 인간 입장에서 권리인데, 그것을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강요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