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선택 -② 한국은 왜 이렇게 빨라졌을까?

by 에퀴티

빠름은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은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 동물로는 치타, 사자, 송골매가 있는데, 대부분 육식동물이고, 남들한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피해를 준다. 인간은 속도면에서 중간이지만 초고속사회를 만들었다.


한국은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상태에서 국가 재건을 시작했고, 자본은 풍부한 노동력을 그냥 두지 않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과 근면 정신으로 더 많이 일하게 하였고, 서구 선진국이 100년~200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를 따라잡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일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파는 양적성장은 소비가 더 이상 충분히 늘어나지 않자 한계에 도달했고, 생산성 증가는 둔화되었고 노동비용 또한 더 이상 크게 깎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1997년 11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정부 주도의 빅딜을 통해 대기업 간의 중복사업이 정리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정리해고가 명문화되었다. 그리고 굴뚝 산업에서 IT로 산업구조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초고속정보통신기반이 구축되면서 혁신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초고속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집단 적응 훈련이었다.

가정까지 초고속인터넷 보급으로 속도가 경쟁력이 되면서, '기다림'이 비정상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PC방과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소유뿐만 아니라 접속과 체류도 상품이 되고, 시간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휴대폰의 보급으로 노동의 경계가 붕괴되고, 노동 대기 상태가 일상이 되고, 즉각 응답이 사회적 규범으로 정착되었고, 닷컴과 벤터 붐은 빨리 성장해서 빨리 성공하는 기류를 만들어, 단기 성과 중심 문화의 확산과 실패의 위험은 개인 몫으로 치부하는 경험을 하였다. 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온라인 접수와 전산처리를 통해 속도가 효율의 기준이 되도록 하여, 느린 절차는 비효율로 낙인 시켰다.


지속적인 이윤창출을 하는 자본은 플랫폼과 결합하여 같은 돈으로 더 자주 이윤을 발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것이 초고속사회이다. 플랫폼의 등장으로 중개 비용은 최소화되었고, 기다림 없는 24시간 쇼핑이 가능해졌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실시간 주문과 결제를 가능하게 하여 생산 이전에 판매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들었고, 물류 혁신은 당일 배송과 새벽 배송을 일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제 자본은 그동안 인간의 시간과 몸을 쪼개어 초고속사회를 멈추지 않고 회전하게 하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AI를 선택하였다. 정부, 기업, 학교, 개인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을 AI로 빨아들이고 있다. 생각하고 말하는 ChatGPT가 나타나더니, 2026년 1월 CES에서 (공장, 자율주행, 의료, 물류 분야에서) 카메라로 인지하고, 학습으로 판단하여, 행동으로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AI가 핵심이 되었고, 곧 제조 공정에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덜 다치게 생산하기 위한 제조AI로 확장될 것이다.




1.

1990년 중반에는 이공계 취업생이라면 취업을 할 때, 정보통신 관련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국룰이었다. 현재의 AI처럼 '정보통신' 붐이었기에, 대부분의 대기업은 정보통신 관련 자회사나 조직을 만들었고, 롯데정보통신, 쌍용정보통신, LG정보통신처럼 아예 노골적으로 회사 이름 끝에 '정보통신'을 붙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면접 뛰러 간다고 하였고, 하루에 2개를 뛴 날에는 회사에서 사례로 준 면접비로 후배들과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삶의 목표인 '열심히 일해 자아성취하고, 월급을 받아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을 당시에 가장 핫한 정보통신 회사에서 이루기로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IMF가 터졌다.

그러나 자본은 초고속사회 구축을 위한 투자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독려를 하였기에 초고속정보통신기반에 돈이 몰렸다. 특히 기간통신사업을 독점했던 한국통신과 데이콤 외에 신규 사업자 허가를 확대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가 한창이었다. 회식자리에서 통신 장비 계약을 얼마까지 했는지 자랑을 하는데, 3천억짜리 계약서를 홀로 마무리한 선배는 자리에서 손을 번쩍 든다. 게다가 통신 장비 이익률은 현재 기준으로 상상초월이다. 국가에 돈이 없다는 데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흘러왔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 당시 4대 통신 제조사는 서비스 사업자한테 통신 장비를 판매 및 설치를 해주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어서, 회사 이익은 피크였지만, IMF 여파로 위기인 계열사와 국가적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 위한 지주사 눈치 때문에, 합당한 성과급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괴소문과 함께 아무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다.


당시는 통신 투자는 유선 설비와 무선 설비로 나누는데, 유선은 광 케이블과 광 전송장비가 핵심이었고, 무선 통신은 핸드폰을 위한 기지국 설치였는데, 모두 전 지역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를 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하면서, 경기 및 지방 대도시에 구축하였고, 그리고 지방 소도시로 확장하였다. 유선 투자는 나중에 가정까지 전화선을 이용한 ADSL과 동축 케이블을 이용한 케이블 모뎀을 통해서 초고속인터넷 보급으로 확장되고, 무선 투자는 나중에 어디서든 노동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핸드폰 접속 불가 지역이 없도록 촘촘하게 확장한다. 기지국을 구축하는 동안에 통신 장비 메모리가 분실되는 사고가 지속 발생하더라도 초고속사회를 만드는 데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되기에, 메모리 여분을 확보하고, 범인을 찾는다.


자본은 고도성장사회의 '빨리 빨리' 정신을 계승하고 가속화시켜 인터넷 경쟁부터는 세계 1위를 고수하기 시작하더니, 광대역 통신 1위, LTE 세계 최초에 이어서 4G, 5G까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2.

2000년대부터 회사도 초고속사회로 변화기 시작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슬로건은 '삶이 좋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변하면서, '순간'의 경험과 감동에 더 집중하였다. 2~3% 수준만 되어도 양호하다는 가전 영업이익률을 8~10%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만들었다.


제품의 제조 원가를 '1원 단위'까지 분석하고 깎아내는 극한의 비용 절감 원단위 활동은 업무 시간을 초(Second) 단위로 쪼개어 낭비하는 시간을 제거하고, 창의적인 일에 투입하라고 한다. 모여서 웅성웅성한다. 이메일 읽는 시간, 티 타임, 화장실 가는 시간, 사업장 또는 회의실 이동하는 시간, 통화하는 시간, 동료가 문의하고 답하는 시간 등을 얼마로 계산할지 서로 눈치를 본다. 개인별 시간이 모여서 팀 시간이 모여지더니, 꼭 필요한 일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계산을 한다. 생산 라인에 투입되어 제품을 조립하는 경험과 맞물리면서 필요한 노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지고 인원 조정(축소)으로 이어진다. 이제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노동은 계속 지속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수익을 극대화하고 품질 향상을 위해 제품의 플랫폼화(Platforming)를 만든다. 제품의 핵심 부품(엔진, 모터, 제어판 등)과 기본 골격(섀시)을 공통부로 공용화/표준화하고, 디자인(외관), 용량, 부가 기능을 변동부로 만들어 살짝 바꿔서 수십 가지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똑같은 부품을 대량으로 주문하니 단가가 낮아지고, 플랫폼을 완벽하게 만들면 모든 제품의 불량률이 한꺼번에 줄어들며, 제품 출시 속도가 빨라진다. 뼈대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 껍데기만 디자인하고 개발하면 생산 기간도 짧아져서 남들보다 훨씬 빨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고객이 주문한 후에 생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정부와 변동부 구성 품목에 대해 영업은 유연성을, 생산은 더 많은 고정부를 외치면서 대립하고, 플랫폼에 품질 이슈가 출시 후 몇 년 후에 생겨서 품질 비용이 줄줄이 사탕이다. 책임자들은 이미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였고, 초도 출시 때 받은 성과급도 아무도 토해 내지 않는다. 설거지는 남아 있는 이들의 몫인데, 감당하기 어렵다.


아는 것은 10%이고 실행하는 것이 90%를 강조한다. 초고속사회에서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서 누구나 알고, 완벽히 이해하고 나서 움직이면 이미 늦기에 즉시 실행이 중요하고, 한 번 해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고 굴리는 것이고, 처음부터 맞게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실행하면서 계속 고치고 바꾸는 것이다. 머리로만 하는 것을 경계하고, 강한 실행력을 강조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단순해서 좋기는 한데, 조직이 기계화되고 있다.


현장과 실천을 강조하며 4박 5일 동안 합숙 훈련을 하는 혁신학교가 있다. 입소하는 순간 모든 직책과 계급장을 떼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4박 5일 동안 전체 취침 시간은 몇 시간만 허락할 정도로 강도가 높다. 공장 출근시간에 맞추어 아침 7시 공장 정문에서 구호를 외치고, 지저분한 화장실을 손으로 직접 닦으면서 밑바닥부터 자신을 낮추는 훈련을 하고, 가전제품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현장 사원들과 똑같이 제품 조립을 통해 현장의 고충과 비효율을 직접 체험하고, 개선해야 할 항목을 2시간 안에 100가지 찾아낸다(옆사람 거 보고 써도 100개 적기 어렵다). 그리고 피날레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40km에 가까운 거리를 걷는 야간 산악 행군이다. 중도에 포기하면 무조건 재입소해야 한다. 건강 때문에 야간 산행 중에 이탈하더라도 재입소는 마찬가지다.

사내 중요성과는 별개로 어느 누구도 혁신학교 입소를 싫어하기에 미룰 수 있다면 마지막 차수를 선호하였고, 최초 차수는 조직을 이동하게 되면 떠밀려서 하게 되다. 그래도 아직도 행군 마치고, 처음 경험한 새벽 탄산수 목욕과 초당 옥수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초고속사회 변두리로 남아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가사 노동 제로가 목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가사 노동은 월 수백만 원 가치다. 구독 상품으로 가사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면 엄청난 시장이다. 앞으로 로봇이 주인공인 삼시 세끼 프로그램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복잡하다. 노동에 귀천이 있는 건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노동인데, 노동이 점점 줄어들면 어떻게 될 건지 궁금하다.


3.

지금은 사라졌지만 스마트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구성원들이 프로젝트 시작부터 종료까지 하나의 공간에 모여 전담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 8시간을 작동하더니, 어느 날부터 하루 24시간을 주말/공휴일 없이 수일 ~ 몇 개월 동안 생활하게 했다.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눈에 밟히는 어린 자식이 있어도 열외가 없다. 스마트원에는 오로지 프로젝트 전담 구성원만 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개인이 아닌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책임 회피를 원천 차단하고, 프로젝트 전담 업무를 통해서 몰입을 할 수 있게 만든다. 프로젝트는 24시간 풀가동을 하면서, 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시킨다. 구성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지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탈출하면 다른 사람이 대체되어 들어온다. 야근 수당이 있고, 간식거리가 준비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 때문에 입소하지는 않는다. 스마트원에 회의로 방문하는 구성원만 간식거리에 눈독 들이고 가방에 채우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와 다르면서 비슷하다. 스마트원은 프로젝트로 장기적 고용 관계인 내부 사람을 묶는데, 플랫폼 노동자는 조직 외부 개인이고, 단기 또는 건별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은 사람을 분리한다. 그러나 둘 다 느리게 일하는 방식은 허용하지 않고, 안정보다 성과가 우선이며, 노동의 시간 밀도와 정서적 소모가 매우 높고, 실패의 여지는 좁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을 상시 작동 상태로 만든다.




초고속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물까지 아주 빠르게 살게 해서 고기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한다.

- 돼지 : 야생(10 ~ 15년), 사육( 5 ~ 6개월)

- 닭 : 야생( 5 ~ 10년), 사육(30 ~ 45일)

- 소 : 야생(20 ~ 25년), 사육(24 ~ 3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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