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은 혀의 맛보다 먼저 목구멍이나 가슴이 반응하기도 한다.
1. 얼음과자
우리 집도 얼음을 먹을 수 있는 냉장고가 들어왔다. 그동안 김치, 반찬류들을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는데 이제 쓸모없게 되었다. 엄마가 주문하러 갈 때마다 놓치지 않았던 활기찬 얼음창고 광경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무시무시한 얼음송곳으로 얼음을 힘차게 내리꽂아서 창고에서 빼내고, 기다란 톱으로 얼음 파편을 사방으로 튀기면서 자르고, 다시 얼음송곳으로 얼음을 찍어서 자전거, 손수레로 재빠르게 나르는 모습들은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시원했다.
이제 얼음을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 그동안 간절히 소망했던 얼음을 입안 한가득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얼음틀이 하나밖에 없다. 이거 가지고 누나, 형과 나누면, 한번 먹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삼 남매는 머리를 맞대더니, 신통방통하지 않은, 그릇에 물을 담아서 넣기로 한다. 밥그릇 포함해서 각종 그릇을 냉동고에 넣어보고 최적의 그릇으로 밥그릇을 찾아낸다. 그리고 우리만의 얼음 제조 비법을 시행한다. 엄마 몰래 설탕을 듬뿍 탄다.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달디 단 얼음을 먹을 수 있다.
얼마 후에 얼음틀에 있는 얼음으로 입가심을 하고, 그릇에 있는 얼음을 먹으려고 한다. 젓가락, 가위, 칼 등 온갖 도구들을 사용해서 얼음을 그릇에서 떼어내거나 먹을 수 있게 쪼개려고 하지만 고사리 손과 식탐만으로는 어렵다. 시간만 계속 지나간다. 얼음송곳과 얼음톱이 생각났지만 구할 방법도 없다. 그저 얼음이 녹아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질 때까지 자린고비처럼 쳐다보기만 한다. 도저히 참기 어려워 밥그릇을 입으로 가져가 혓바닥으로 핥으려고 하면 누나랑 형이 그릇을 빼앗아 째려본다.
어느 한여름 종례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자 뜀박질이 빨라진다.
'냉동고를 열고 얼음틀의 얼음이 있는지 확인한다'
'얼음을 밥그릇에 모두 담아낸 후에, 얼음틀에 물을 다시 담아서 냉동고에 다시 넣는다'
'얼음을 입안 가득 넣는다'
몇 개 넣지 않았는데, 입안 가득이다. 입을 힘껏 벌리고 얼음 하나를 밀어 넣는데, 공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순식간에 얼음 하나가 목에 걸려 버린다. '헉'하고 목이 반응하더니, 목이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입 안에 있던 아까운 얼음들이 마루 위로 쏟아진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러다가 숨이 막혀서 죽을 거 같다. 머릿속은 살기 위해 풀가동 되어 방법을 찾는다. 수돗가로 가서 수도꼭지를 최대한 돌려서 개방하니, 수도호수로 물이 콸콸 쏟아진다. 호수를 입 안에 넣는다. 물이 자꾸 입 밖으로 나오니까 누워서 호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신다. 숨이 막힌 상태에서 물까지 들어가니 고통스럽다. 얼음이 녹을 때까지 마셔야 하는데..... 이제 너무 많이 마셔서 더 이상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얼음 먹다가 죽기에는 억울한데, 숨이 막힌다. 죽을 거 같다. 손이 저절로 목으로 가서 살려달라고 목을 붙잡는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제 끝인가 보다. 손이 마지막 발악으로 멱살을 잡는데, 얼음이 입 밖으로 쏙 튀어나온다. 그동안 참았던 숨이 세차게 몰아친다. 살았다. 기적처럼 얼음이 나와서 살았다. 눈에서 눈물이 호수처럼 주르륵 떨어지고, 오줌보는 팽팽하다.
그 뒤로 얼음을 한 조각씩만 먹는다. 그것마저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목구멍이 놀라서 경계를 한다. 안전해져야 아삭하고 상쾌한 얼음 맛을 느낀다.
2. 마른오징어 간장 조림
엄마가 생계까지 책임지셨기에, 가사까지 완벽하게 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화장품 외판원이어서, 구루마를 끌고 하루 종일 걸었기에 육체적 노동이 강해서 그런지, 식성이 좋았다. 다양한 반찬을 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김치, 찌개와 추가 반찬 한두 개만 있어도 밥 한 공기가 후딱 이었다. 삼 남매도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들어와서 따끈따끈한 밥에 생계란 또는 빠다(저렴한 버터)에 간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그러나 도시락 반찬은 거의 똑같았다. 대부분 김치와 계란 후란이가 세트 반찬이었고, 가끔 입맛 짧은 막내가 투정을 하면 소시지나 참기름 김이 추가되었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은 선생님과 함께 먹어서 중고등학교처럼 난장판은 아니었다. 선생님 식사예절의 정도에 따라 질서가 다르긴 했지만, 그마저도 아이들 식욕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보기에도 좋은 음식이 맛도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보이면서 늑대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경동시장에서 일하는 부모들은 아이들한테 시그니처 반찬을 싸서 보냈다. 건어물가게의 오징어볶음, 계란가게의 계란말이, 어묵가게의 오뎅조림, 정육점가게의 불고기와 장조림이 인기를 끌었다. 선생님 반찬까지 가져온 친구도 있었고, 역으로 선생님이 아이들 반찬을 맛있다고 먹기도 했다.
점심은 신기하게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도시락을 배불러서 그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두 먹어서 멈추어야 했다. 막내가 자기 도시락 반찬보다는 친구 반찬을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듯이, 그때까지 선생님이 막내 도시락 반찬을 먹은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이미 저녁을 먹었는데, 요리를 하고 있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보니 마른오징어를 잘게 잘라서 간장, 설탕과 함께 약한 불에 졸여서 만든 마른오징어 간장 조림이다. 엄마가 요리를 마치자 삼 남매한테 말한다.
"얘들아, 내일 도시락 반찬은 오징어 조림이니까 잘 챙겨가"
삼 남매는 부엌으로 몰려와서 도시락 반찬 그릇에 담긴 오징어 조림을 확인하고, 엄마 멋지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막내는 유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도시락을 가방에 넣는데 어깨가 으슥하고 벌써부터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점심 종소리가 울리자, 자랑스럽게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고 반찬을 연다. 옆의 짝꿍이 웬일로 반찬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길래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 앉은 친구도, 뒤에 앉은 친구도 젓가락으로 반찬을 가져간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선생님이 책상 사이로 지나가더니 내 책상 옆에 멈추어 선다.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맛있어 보이는데, 선생님이 먹어봐도 될까?"
"네"
조그맣고 쑥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가슴이 더욱 숨 가쁘게 쿵쿵 쾅쾅 쿵쿵 쾅쾅 뛰고, 얼굴은 벌게지는데 기분은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다. 선생님이 한입 먹더니, 맛있다고 하면서 한입 더 먹는다. 황홀할 지경이다. 남은 도시락을 먹는데,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슴으로 들어간다. 아무 맛도 나지 않고 가슴만 계속 뛴다. 그래도 어느새 도시락이 비워졌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 내내 오징어 조림을 반찬으로 가져갔다. 3일째부터 오징어 조림을 노리는 친구들은 사라졌고, 4일째부터는 친구들 반찬을 더 많이 먹었다. 일주일 후에 결국 엄마한테 반찬 투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도시락 반찬은 다시 김치와 계란프라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