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한 명절

by 에퀴티

결혼을 하고 나니 부모님을 중심으로 시댁과 처가가 생겼다. 시댁은 서울 도심에 있고, 처가는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다. 도시는 효율과 개인을 중시하며 빠르게 간소화되어 왔고, 시골은 여전히 공동체와 전통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도시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공간이고, 시골은 마당과 텃밭이 딸린 넓은 공간이다. 이 공간의 차이는 명절을 보내는 방식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1.

시댁은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여자 어른들은 권사, 남자 어른들은 장로이고, 조카들은 활달한 성격의 젊은 크리스천들이다. 처음 맞이한 시댁의 명절은 홍동백서, 어동육서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절 이틀 전, 늦어도 전날에는 모두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예를 갖추었다.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 자식들, 며느리들, 사위들은 입을 모아 명절의 간소화를 외쳤다. 어머님도 자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소싯적 고생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족의 화목과,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온 명절 가사 노동을 줄이자는 대의명분은 설득력이 있었다.

손이 많이 가지만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음식부터 명절 밥상에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온 집안을 기름냄새로 가득 채우던 전의 종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광장시장에서 녹두 재료를 사다 직접 부치던 녹두전은, 어느새 사다 데우기만 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다 ‘전은 바로 부쳤을 때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에 밀려, 결국 전 자체가 명절 밥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제 남은 명절 음식은 어머님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LA갈비, 말린 생선, 나물, 생김치와 물김치. 명절 이틀 전이나 전날부터 시댁에 갈 이유도 사라졌다. 자식들은 각자의 휴일을 즐긴다.

송구한 마음에 명절 음식을 나누어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 손맛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 속에서 몇 번의 시도 끝에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 결국 명절 밥상의 획기적인 대안이 등장한다. 식당에 가는 것이다. 명절 당일, 브런치 시간에 문을 여는 괜찮은 식당만 찾으면 된다. 1년에 두 번이니 민망하지도 않고,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뷔페라면 더할 나위 없다.


‘명절에 먹을 게 없다’는 탄식은 각자의 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꿀꺽 삼킨다.


명절 절차도 간소해졌다. 전날 모여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니, 명절 당일 오전에 장남네 집에 모인다. 안부를 묻고 아이들 근황을 나누며 잠시 시끌벅적해진다. 집안의 허브로서 자식과 손주, 친척과 동네 대소사를 꿰차고 있는 어머님은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입가에 침이 마를 틈이 없다.

모두 모이면 교회에서 제공한 명절용 주보를 나눠 들고 예배를 드린다. 이제 비기독교인들도 명절마다 듣게 되는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오며’를 함께 부를 수 있고 쑥스러우면 입술이라도 벙긋거린다. 오랜 시간 성가대에서 다듬어진 화음이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이어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잘되기를 비는 기도가 이어진다. 언급되는 구성원 얼굴을 쳐다보다가, 조카들과 우리 가족 차례가 되면 눈이 마주쳐 웃는다.

주기도문으로 예배가 끝나면 식당으로 향한다. 자리 배치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과일을 먹으며 못다 한 말을 이어간다. 오후 한때가 가까워지면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처가로 이동해야 할 때는 조금 더 일찍 자리를 뜬다. 서운해하는 어머님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고, 어머님이 혼자 준비한 음식을 챙겨 나온다.


효용성과 간소화 속에서, 명절이 아무리 길어도 어머님의 행복은 반나절만 허락된다. 남은 연휴의 몫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로 넘어간다.


2.

처가는 지리산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여전히 전통을 따른다. 어머님은 명절 며칠 전부터 고기와 과일, 생선 같은 제사 음식 재료를 준비한다. 연휴가 시작되면 자식들은 일찌감치 출발하거나 시댁을 거쳐 하나둘 모여든다. 명절 정체 속에서 ‘몇 시에 도착이냐’, ‘이제 어디쯤이냐’는 통화를 몇 차례 주고받고 나서야 도착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날에 모두 모이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명절 전에 다녀가기도 하고, 귀성·귀경 정체를 감내하면서까지 당일치기를 선택하기도 하며, 아예 도시에 머물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제 과반수가 모이는 날을 손꼽을 정도다.

처가의 명절 음식은 주로 어머님과 아들 가족이 함께 준비한다. 특히 명절 전날에는 제사 음식의 하이라이트인 육전과 산적, 호박전, 동그랑땡, 생선전, 고추전 등 각종 전을 부친다. 어머님 손이 크기는 하지만, 이제 여섯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만큼 부칠 필요는 없기에, 이 틈을 타 자식들은 하나같이 간소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머님은 귀뚱으로도 듣지 않는다.

“염병할,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

“그런 걸 왜 돈으로 사?”

“그게 맛이 나니?”

“김서방은 고추전 좋아하고, 첫째는 육전 좋아하니 얼른 부쳐라.”

“내가 부칠 동안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거니?”

손이 빠른 어머님이 대부분의 음식을 해내고 자식들은 거들뿐이다. 전을 부치는 자식들 손을 모두 합쳐도 어머님 손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자식들은 가족 근황과 작년에 침수됐던 마을 다리 이야기에 추임새까지 얹느라 손이 더뎌지지만, 어머님 앞 소쿠리는 벌써 가득 찼다. 집안에 기름냄새로 가득 찰 때까지 전을 부치고 또 부친다.

명절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님의 진두지휘 아래 차례를 준비한다. 시댁에서는 볼 수 없던 병풍과 지방, 하늘과 사람을 잇는 다리인 향로가 제단에 놓인다.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에 따라 차려진 제수 음식 앞에서, 조상 대대로 구술로 전해진 절차를 따른다. 돌아가며 절을 하고 마지막 합배를 마친 뒤, 음복으로 곶감을 먹을지 대추를 먹을지 정종을 마실지 정한다. 뭐니 뭐니 해도 생밤이 제일이다.

차례가 끝나면 음식 준비팀과 제기 정리팀으로 나뉘어 신속히 마무리하고 식사를 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노동의 노곤함을 오수로 달랜다.

예전에는 명절 다음 날 시댁에 들렀다 오던 자식들까지 합류해 하루 종일 먹고 떠들었다. 한 마디씩만 보태도 밤늦도록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고, 밤이 되면 각자 자리를 찾아 잠들었다. 이불과 베개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고, 아이들이 달라고 하면 어른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귀경할 날이 되면 아침부터 부산하다. 쌀과 장이 떨어진 자식들은 창고와 장독대를 오가며 차에 쌀포대와 큰 유리병을 싣는다. 어머님은 제사 음식을 자식 수대로 똑같이 나누고, 자식들은 옆에서 거들며 자기 몫을 챙긴다.

“엄마, 참기름 떨어졌어요. 두 병만 가져갈게요.”

“엄마, 육전은 우리 문서방이랑 애들이 좋아하더라.”

“엄마, 우리는 나물 먹을 사람 없으니까 다른 집에 주세요.”


어머님은 모든 자식에게 기름진 명절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지만, 명절 때 오진 못한 자식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쓰인다. 정작 자식들은 외식도 귀찮아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시댁과 처가 모두 어머님을 중심으로 명절이 돌아간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어머님 모두 변함없이 자식들을 존중하고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명절에 자식들이 오지 못하면 탓하거나 이유를 묻기보다 걱정을 먼저 한다. 감정의 기복 없이, 그저 자식들이 잘 지내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아직도 명절이 기다려지고, 지나면 어머니들한테 미안하다.

이전 13화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