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

대표작 <시계태엽 오렌지>, 1971년 作

by 윤자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얀색'하면 순결, 청렴 등 매우 긍정적이며 고결한 이미지의 색으로 인식을 하고 있지만 큐브릭의 71년 작 <시계태엽 오렌지>에서의 하얀색은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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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을 보면 하얀색을 활용하는 용도를 대표적으로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하얀색을 통해 다른 색들과의 대비를 이룸으로서 다른 색깔의 물체 혹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을 시각적으로 부각하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우주선 내부에 위치한 로비다. 매우 깔끔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고 넓은 이 로비 공간에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은 곳곳에 배치된 자홍색 의자들이다. 물론 자홍색 자체가 원래도 눈에 잘 띄는 색이긴 하지만 배경이 온통 하얀 덕분에 의자들이 더욱 돋보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 두 번째 용도가 더욱 흥미롭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얀색'하면 순결, 고결, 깨끗함 등의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되는데, 큐브릭은 역시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마저 비틀고 싶었던 듯하다. 그의 71년 작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면 하얀색이 가장 많이, 아니, 거의 하얀색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영상미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순수함'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타락함과 신랄함이 가득한 이 영화 덕분에 '하얀색이 정말로 순수하기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며 기존 고정관념에 혼란이 생길 지경이다. 주인공인 알렉스와 그의 친구들(정확히는 부하들)의 복장, 마약이 든 우유, 야하다 못해 상당히 외설적인 조형물들... 모두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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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호텔 로비.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배경에 돋보이는 자홍색 의자들은 매우 미래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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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 든 우유를 마시고 있는 알렉스와 친구들. 흰색이 메인 컬러지만 전혀 순수함이나 고결함과 같은 개념보다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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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적이다 못 해 굉장히 외설적인 비주얼의 조형물들 모두 하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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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가 절도를 위해 침입한 집에 있는 남성의 성기 모양 조형물도 하얀색. <시계태엽 오렌지> 덕분에 '하얀색=순수함'이란 인식에 혼란이 생겼다.


white.jpg <스탠리 큐브릭 - 하양>, 297x420mm, 디지털 드로잉, 2020


필자가 작업한 7장의 포스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다. 최소한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시계태엽 오렌지>만의 특유 아우라, 포스터 속 오브제들의 균형미,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등 모두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작업할 때 신경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요소들이다. 전반적으로 오브제들이 하얗기 때문에 강한 대비를 위해 배경을 검정으로 잡았다. 필자는 알렉스에게 천사 고리, 후광, 날개 등과 같이 '천사'의 스테레오 타입적인 요소들을 입혔다. 스탠리 큐브릭이 하얀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틀어 미장센을 연출했듯이, 필자는 거기서 한 단계 더 생각해서 '천사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마찬가지로 비틀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이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시계태엽 오렌지>에 하얀색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순수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이 포스터에서도 알렉스가 '천사'가 가지고 있을 법한 요소들을 겉으로 띄고 있다고 해서 고결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알렉스의 대표적인 외양 특징 중 하나인 가짜 속눈썹을 일러스트로 약간 과장 표현하여 삽입하여 재미있게 꾸며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