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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r 23. 2022

어느 육교

2013년, 해외 어딘가

  유독 기억에 남는 육교가 하나 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육교였는데, 새벽이 아니고서야 항상 온갖 종류의 차들이 아래로 쌩- 쌩- 하며 지나갔기 때문에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만큼은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 육교를 지나는 행인은 거의 없었다. 소리지르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이곳에 살면서 참 많은 불만이 있었다. SNS가 안돼서 한국 친구들과 연락 단절되었던 것도 그렇고(VPN이 있긴 했지만 원활하진 않았다), 나 같은 외지인들(조금 더 정확히는 비백인들. 지들도 아시안이었으면서...)을 꼬라보는 다수 현지인들의 띠꺼운 시선들과 불친절함, 재미없는 걸 넘어 무익했던 학교 생활, 자정은 되어야 끝나는 입시 학원 생활, 전혀 은혜롭지 않았던 한인 교회 공동체까지... 어쨌든 한 마디로 그냥 모든 게 좆같았다. 이 시궁창에서 고립되어 살았던 게......

어느 밤 육교에서 © 윤기환, 2022

  이렇게 억눌려 살았던 나에게 그 육교는 일시적으로나마 나의 안식처이자 해소의 창구가 되어주었다. 내가 얼마나 큰 소리로 허공을 향해 쌍욕을 하며 포효를 해도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지는 아우성. 그렇게 기가 빨리도록 소리를 지르고 나면 비로소 정신이 들어 눈앞의 풍경이 보인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차들. 승용차, 화물차, 트럭, 버스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칙칙한 하늘에 무심하게 떠 있는 해와 달, 그리고 구름. 거기에 텁텁하고 습한 지역 특유의 공기가 주는 찝찝함까지... 그렇게 시간은 안 가는 듯 흘러간다.


  씨발, 내 그 개 같은 곳엔 두 번 다시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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