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문화 아이'의 이야기
나는 TCK(Third Culture Kids)다. 'TCK'란 한국어로는 '제3문화 아이들'로 성장기 동안 최소 2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국내도 요즘에는 더 많아진 듯하고 과거부터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주로 영어권 국가에 장기간 유학을 경험한 TCK분들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나 같은 케이스는 좀 많이 드문 것 같았다.
한국 제외, 10년 동안 스위스, 홍콩, 중국 상해에서 자라왔다. 우리 집안이 '금수저'여서는 절대 아니고 항공사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좋든 싫든 가족 다 같이 따라 나가 살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TCK치고도 정체성 혼란이 심한 편이다. 불과 2개 국가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혼란을 겪는데... 나라고 오죽할까......
일단 나는 성격부터 INFP다(MBTI 잘 아는 분들껜 말 다했다고 봐도 될 듯). 극도로 내성적이고 낯선 환경에 적응할 때 굉장히 오래 걸리는 성격 탓에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4 ~ 6살엔 스위스에서 로컬 유치원을 다녔는데 나 홀로 동양인이라 인종 차별을 겪었고, 홍콩에선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영어를 못해서 따돌림을 당했고(그래도 다행히 2년 만에 왕따 탈출해서 잘 적응했음), 중3 때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도 왕따 생활을 했는데,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그냥 '달라서'였던 듯 하다.
성장 배경이 이렇다보니 한국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어쩌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해외 거주 유무를 알려주면 거의 열의 아홉하고 반의 반은 '해외 여기저기 많이 살아봐서 부럽다'고 반응하는데... 물론, 무경험자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당연한 반응인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난 솔직히 좀 많이 짜증난다.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오니 지겹고 지치기도 하고......
그래도 이런 성장 배경 덕분에 얻은 좋은 부분은 자연스러운 영어 구사 외에도 타 문화나 가치관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고(강요만 아님 일단은 다 들어줌), 타문화 감수성이 발달한 덕분에 현재 대학 전공(시각디자인)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