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800년 12월 2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프랑크 왕국의 왕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의 대관식은 서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이날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 대제에게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주었고, 이는 서유럽에 새로운 '로마 제국'이 탄생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인 의식이었습니다. 훗날 **'신성 로마 제국(Sacrum Romanum Imperium)'**으로 불리게 될 이 새로운 제국의 등장은 중세 유럽의 정치, 종교, 문화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건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로마 황제'는 오직 동쪽에 있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고도 보편적인 칭호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서유럽의 한 왕이 '로마 황제'를 자처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독점하고 있던 '로마적 정체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서유럽이 동로마 제국과 대등한, 나아가 그를 능가하는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만천하에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카롤루스 대제는 왜 '로마 황제'가 되고자 했을까요? 그의 대관식은 단순히 개인의 권력욕이나 명예욕의 발로였을까요? 아니면, 서유럽의 새로운 정치 질서 형성과 관련된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제국 이념', 즉 그가 꿈꾸었던 '제국'의 이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그를 둘러싼 인물들, 특히 알퀸과 같은 당대 지식인들이 '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교황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800년 대관식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 이념'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가 대관식에서 내세운 **'임페라토르와 아우구스투스(imperator et augustus)'**라는 칭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우구스투스, 네로, 트라야누스 등 고대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들이 사용하던 칭호입니다. 카롤루스 대제가 이 칭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단순히 프랑크 왕국의 왕을 넘어, '로마 황제'로서의 보편적 권위를 통해 서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 이념'은 단순히 고대 로마 제국을 부활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적 정체성'**과 더불어 **'기독교적 정체성'**을 결합한 새로운 제국을 꿈꾸었습니다. 즉, 그의 제국은 '보편 제국'이라는 로마 제국의 이상과 '하나의 신앙 아래 모든 기독교인을 통합하고 보호한다'는 기독교의 보편성이 결합된 **'기독교 제국'**이었던 것입니다.
카롤루스 대제가 꿈꾼 '로마 제국의 부활'은 단순히 이념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효율적인 행정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 대부분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했으며,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임페라토르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의 사용은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동로마 제국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서유럽에서 독자적인 '로마 황제'로서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기독교 세계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통해 이교도들을 개종시켰으며, 교회 조직을 정비하고 성직자들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힘썼습니다.
이러한 카롤루스 대제의 '기독교 제국' 이념은 그를 보좌했던 알퀸과 같은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알퀸은 카롤루스 대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강조하며, 가톨릭 신앙 수호, 이단 박멸, 그리고 '기독교 세계'의 확장을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