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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로마(10)

-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by 글쓰는 인문학도

4. 학자들의 엇갈린 해석: '로마 제국의 부활'인가, '기독교 제국의 탄생'인가? - 두 가지 관점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과 그가 세운 제국의 의미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크게 **'로마 제국의 부활'**을 강조하는 관점과 **'기독교 제국의 탄생'**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4.1.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로마 제국의 부활' - 세속적 권력과 영토적 관점


영국의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제임스 브라이스는 자신의 저서 **『신성 로마 제국(The Holy Roman Empire)』(1864)**에서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을 고대 로마 제국의 부활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이 광대한 영토, 효율적인 행정 조직, 강력한 군사력 등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고, 그가 '임페라토르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 자체가 로마 제국의 계승을 선언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브라이스는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을 세속적 권력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즉,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약화되었던 서유럽의 세속 권력이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을 통해 부활했으며, 이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4.2. 크리스토퍼 도슨(Christopher Dawson): '기독교 제국의 탄생' - 종교적 사명과 신앙의 관점


반면, 20세기 영국의 저명한 가톨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도슨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 문화의 형성(The Formation of Christendom)』(1967) 등에서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을 '기독교 제국'의 탄생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카롤루스 대제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기독교 세계를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고 보았습니다.

도슨은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을 종교적 사명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즉, 카롤루스 대제에게 '로마 황제'라는 칭호는 기독교 세계의 최고 수호자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단이었으며, 그의 제국은 **신앙을 통해 통합된 '기독교 공동체'**를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5. '신성 로마 제국': '로마'와 '기독교'의 유산이 결합된 새로운 제국 - 두 가지 이상의 종합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은 단순히 고대 로마 제국의 부활도, 그렇다고 순수한 기독교 제국도 아니었습니다. 이 제국은 '로마'라는 보편 제국의 유산'기독교'라는 보편 종교의 이념이 결합되어 탄생한 **'신성 로마 제국(Sacrum Romanum Imperium)'**이었습니다. 즉, '로마적 정체성'과 '기독교적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이었던 것입니다.


5.1. '신성성(Sacrum)'의 의미: 세속 권력과 종교적 권위의 결합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에서 **'신성(Sacrum)'**이라는 단어는 이 제국의 독특한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신성'이라는 표현은 세속적인 로마 제국의 권위에 더해 종교적 권위, 즉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로서의 사명이 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이 단순히 정치적, 군사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사명을 지닌 제국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5.2. '로마(Romanum)'의 의미: 보편 제국의 이상과 '로마적 정체성'의 계승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에서 **'로마(Romanum)'**라는 단어는 이 제국이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자처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로마'라는 이름은 보편 제국의 이상, 즉 전 세계를 하나의 법과 질서 아래 통합하고자 했던 로마 제국의 이념을 상징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이러한 '로마적 정체성'을 계승함으로써, 서유럽에서 독자적인 '로마 황제'의 권위를 확립하고, 동로마 제국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5.3. '제국(Imperium)'의 의미: 서유럽의 새로운 정치 질서 주도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호에서 **'제국(Imperium)'**이라는 단어는 이 제국이 서유럽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주도하는 중심 세력임을 나타냅니다. '제국'이라는 칭호는 단순히 한 왕국을 넘어, 여러 왕국과 공국들을 아우르는 상위의 정치적 실체임을 의미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이러한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통해, 서유럽의 정치 질서에 개입하고, 교황과의 협력 또는 경쟁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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