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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로마(2)

-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by 글쓰는 인문학도

1. 서론: '로마적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중세 유럽


이 글은 중세 유럽의 주요 정치 세력이었던 동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 교황령 국가가 공유했던 '로마적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중세 유럽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 세 정치 공동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로마'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보편 제국'의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상은 현실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고, '로마적 정체성'은 점차 쇠퇴했지만, 그것이 중세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이 글은 각 정치 공동체의 '로마적 정체성'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쇠퇴 과정을 개별적으로 살펴본 후, 이를 종합하여 중세 유럽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특히, 각 국가의 기원에 대한 학계의 논쟁과 '보편 제국'의 실존 여부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중세 유럽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동로마 제국: '새로운 로마'와 '로마 황제'의 영속


- 기원과 '로마적 정체성'의 형성: 콘스탄티노플 천도(330년)와 그에 대한 논쟁


동로마 제국의 '로마적 정체성'은 330년 콘스탄티노플 천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이를 '새로운 로마'로 명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도를 이전하는 것을 넘어, 로마 제국의 중심축이 동방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천도는 동로마 제국이 고대 로마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스스로를 고대 로마 제국의 직접적인 계승자로 인식하며, '로마 황제'의 정통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330년 콘스탄티노플 천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콘스탄티노플 천도를 동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는 콘스탄티노플이 '새로운 로마'로서 동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395년 로마 제국의 동서 분할: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395년을 동로마 제국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제국의 공식적인 분할이 동로마 제국의 독자적인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혁(284년)을 통해 제정 로마가 부활했고, 이를 동로마 제국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이 제국의 행정, 군사 체제를 재편하고 황제 숭배를 강화하는 등 후기 로마 제국의 특징을 확립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8세기 또는 9세기 기원설: 8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과 이탈리아 지역 상실, 그리고 9세기 이후 그리스 문화의 발전 등을 근거로, 이 시기를 동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8세기 이전의 동로마 제국을 '후기 로마 제국'으로 간주하며, 이후에야 진정한 의미의 '동로마(혹은 비잔틴) 제국'이 성립되었다고 봅니다.



이처럼 동로마 제국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견해는 '로마적 정체성'의 연속성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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