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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로마(3)

-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by 글쓰는 인문학도

신성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의 부활'과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




-기원과 '로마적 정체성'의 형성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적 정체성'은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황 레오 3세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카롤루스 대제에게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주었습니다. 이는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로마 황제가 탄생한 사건이며, 서유럽이 동로마 제국과 대등한 기독교 세계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상징합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자처했고, 그의 제국은 이후 '신성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국내 학계에서는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을 신성로마제국의 출발점으로 보려는 입장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해외 학계의 견해는 조금 다릅니다. 해외 학계에서는 오토 대제의 대관이라는 사건만큼이나 ‘800년 카롤루스 마그누스의 대관’ 또한, 신성 로마 제국의 시작점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처럼 신성 로마 제국의 기원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을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는 서유럽에 '로마 황제'가 부활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이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선언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 오토 1세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은 962년을 신성 로마 제국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오토 1세의 대관식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명칭과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오토 1세 이후 황제-교황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고, 이를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의 '신성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 카롤루스 왕조오토 왕조의 연속성 부정: 카롤루스 대제의 제국과 오토 1세의 제국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들은 두 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가 크게 달랐으며, '로마 제국'이라는 이념 역시 다르게 해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중요한점은 이 제국의 정식 명칭인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는 콘라트 4세(1254년)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신성제국(Sacrum Imperium)’이란 용어는 1157년 제국의 상서원(Imperial Chancery)에 의해 채택되었다. 1174년부터 통용되기 시작했고, 1184년에는 ‘신성로마제국(Sacrum Romanum Imperium)’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즉, 그 이전의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800년), 오토 1세의 대관(962년)에서는 모두 고대 로마 황제들이 사용하던 “존엄한 황제(Imperator Augustus)”라는 칭호가 부여되었으며, 공문서에서도 신성로마 제국이 아니라, 그저 “로마제국(Romanum imperiu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두 사건에서 카롤루스 대제와 오토 1세 모두 자신들의 제국을 “로마제국”이라고 자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1세의 제국이 카롤루스 대의 제국을 상당 부분 모방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본고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점을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으로 규정짓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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