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교황령 국가(라틴어 단어 ‘Status Pontificius’와 영어 단어 ‘papal state’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주로 ‘교황령’입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Status Pontificius’라는 정치체를 동로마제국이나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정치체와 동일한 선상에 놓고 살펴보고자 하기 때문에, ‘Status Pontificius’라는 단어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라틴어 단어 ‘Status Pontificius’에 대한 한국어 번역어로 ‘교황령 국가’라는 단어를 채용하고자 합니다.)의 '로마적 정체성'은 '로마 주교', 즉 교황의 권위에서 비롯됩니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이자 '로마 주교'로서 로마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계의 영적 지도자라는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로마'와의 연관성은 교황권의 형성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황령 국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증(Donation of Constantine): 전통적으로 8세기 중반에 작성된 위조 문서인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에 근거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에게 로마와 이탈리아 서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 문서는 교황의 세속적 권위를 정당화하는 데 오랫동안 이용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위조 문서임이 밝혀졌습니다.
피핀의 기증(Donation of Pepin, 756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빼앗은 라벤나와 중부 이탈리아 지역을 교황에게 기증한 사건(756년)을 교황령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는 교황령의 영토적 기반이 마련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이 기증을 통해 교황은 단순히 '로마 주교'를 넘어, 중부 이탈리아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는 '세속 군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피핀의 기증은 교황이 로마 제국 황제의 신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주권을 가진 통치자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점진적 발전: 특정 사건보다는 로마 주교의 권위가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그에 따라 교황의 세속적 지배 영역이 확대된 결과로 교황령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교회가 로마 제국 내에서 종교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속적 권력도 획득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이탈리아 지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로마 주교는 행정, 사법, 군사 등의 세속적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교황령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