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신문에서 극단 학전이 운영난으로 내년에 닫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는 마지막으로 <지하철 1호선>(이하 지철)을 운행한다는 내용도 같이 실려있었다. 아, 내 20대 청춘과 함께했던 학전이 문을 닫다니! 극단 학전이 나우누리에서 동호회를 운영할 때 내가 부시삽으로 있으면서 학전 기획실 분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동호회 모임도 수차례 주관하며 지철 관람 및 회식도 하고 배우들과 MT도 다녀왔을 정도로 추억이 가득했던 곳인데.....
학전에 지인들과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의형제> 등 공연도 숱하게 보러 가고 이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진구는 게임 중>, <분홍병사> 등도 보러 자주 갔는데 이제 헤어져야 한다니... 더구나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다니 정말 너무너무 아쉬웠다. 이런 극단은 정부에서 지원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아동극만 해도 대학로에서 희곡, 음악, 무대 등 학전 아동극 수준을 따라올 작품이 별로 없는데...
스무 번도 넘게 본 지철이지만 이대로 보낼 수가 없어 소식을 듣자마자 일찌감치 예약했다. 큰애는 남친이랑 보라고 24일에, 나랑 둘째애랑 남편은 25일로 예매해서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라 차 막힐까봐 일찍 출발해 명동에서 내려 하동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명동교자 가려다가 줄이 어마어마해서 포기. 하동관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입장했다. 보통 3개를 시켰는데 이곳 국밥은 아예 밥이 말아져 나왔다. 근데 밥 양이 적다. 남자들은 무조건 특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리도 공깃밥 1개를 추가해서 나눠먹고 국물도 더 달라고 해서 말아먹었다. 국물 맛은 깔끔하고 김치도 맛있었으나 가격에 비해서 좀 배고픈 감이 남는다는 게 단점. 쓰고 보니 큰 단점인듯. ㅎㅎ
하동관 옆 옆 건물 1층 신세계 떡볶이에 사람들이 많아서 입가심용으로 떡볶이 1인분과 어묵 1인분을 먹었다. 어머! 여기 떡볶이 맛집이네. 내 입맛에는 정말 맛있었는데 둘째 취향은 아니라고. ㅎㅎ 하동관에서 못채운 배를 여기서 채움. ^^ 암튼 여기는 나중에 명동 가면 또 들러서 먹어야겠다.
혜화동에 도착. 월요일은 쉰다고 알고 왔으나 크리스마스니까 혹시나 열었을까 싶어서 돌쇠 아저씨네도 들러보았다. 울 애들과 공원파와, 애들 친구들과 진짜 자주 왔던 곳이라 추억의 맛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역시 한결같은 돌쇠 아저씨답게 문을 닫았네. 담에 다시 올게요.
학전가서 표를 받고 잠시 극장 안에 들어가서 기존 배우들의 공연 사진과 오늘 캐스팅 배우들 사진을 찍고
극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시간 40여 분의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의 커튼콜 장면에선 혼자 울컥해다. 1998년 11월부터 달렸던 <지하철 1호선>이 이제는 운행을 완전히 멈춘다는 사실에 다시금 마음이 짠해졌다. 이번 공연은 예전처럼 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여전했지만 바이올린이 합류해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 주로 젊은 배우 배우들이 연기한지라 약간 어색하기도 했고 가사 전달력도 아쉬움이 있었지만(자막이 있으면 좋았을듯) 그런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각별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맨 앞에 앉았기에 크게 따라 부르면 배우에게 방해가 될까봐 입만 방긋거리며 노래하고 배우 노래가 끝나면 가장 격렬하게 박수도 치면서 공연에 몰입했는데 결국 '울 때조차도 아름다운 너'를 들을 때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렇게 소중한 공연과 이제 안녕이라니. 헤어지기 싫었다. 김민기 선생님이 극중에서 풍자하던 사회 현상은 2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달라진 바 없음도 서글펐다.
공연을 보고 내가 무척 허전해하자 남편이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해서 이태리 음식점 '디 마떼오'로 갔다. 사실 여기 맛집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격이 좀 있어서(내 기준) 대학로를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한 번도 못가봤던 곳이다. 바로 찬성!
디 마떼오 피자와 해산물 크림 파스타, 로제 파스타를 시켰는데 음식이 다 맛있었다. 여기는 나폴리 방식이라 피클 제공안한다고 했는데 도우가 살짝 짠맛이 있어서 그런지 딱히 피클 생각이 안나긴했다. 도우가 쫄깃쫄깃했는데 정말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이태리 나폴리에서 도우가 얇고 토핑이 거의 없어 혼자 라지 사이즈 피자 한판 다 먹었는데 여기도 그럴 수 있을듯싶었다. 예전에 개그맨이었던 이원승씨가 여전히 화덕 앞에서 피자를 굽고 있었다. 대단했다. 사장님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 맛이 유지되나 보다. 디마떼오 이벤트에 당첨돼 즉석 사진도 찍었다.
내겐 <지하철 1호선>과 영영 이별했던 잊지 못할 시간이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했던 2023년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