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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약속장소서 기사 쓰고 보내

by 유창엽

[2023년 8월 23일(수)]

기사 쓰느라 바쁜 날이었다. '종합' 기사를 포함해 총 9건. 7월 21일 뉴델리에 도착한 이후 가장 많은 건수였다.

뉴델리 도심의 '그린파크' 부근에 있는 한국식당 점심약속 때문에 집에서 낮 12시쯤 출발했다. 식당에 도착할 즈음 개톡이 왔다. 본사 데스크가 인도에서 사고가 나 10명이 숨졌다는 내용을 한번 봐달라는 거였다. 써달라는 것의 완곡한 표현이다.

인도에서 한국인들은 대부분 점심 약속 시간을 낮 12시30분에 잡는다. 현지인들이 식사를 늦게 하고 일도 늦게 시작하는 점 등을 감안해서다. 현지인들은 대개 아침식사를 오전 8시 전후로 한다. 점심은 오후 1시 전후, 저녁은 7시에서 8시에 한다. 물론 점심이나 저녁을 더 늦은 시간에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식당에서 취재원 2명과 점심을 먹으면서 기사를 송고했다. 휴대해온 노트북을 통해 보낸 기사는 '인도 북동부 미조람주에서 건설 중이던 교량 붕괴사고로 10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잔해에 파묻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취재원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고 불편했다.

하지만 인도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점심 먹으며 기사를 쓰는 경우가 몇번이나 있겠는가라고 되물으며 스스로 위로했다.

식판에 놓인 인도 음식.png 필자가 한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현지 음식

점심 후 올라로 택시를 불러 귀가했다. 귀가한 뒤 사고 기사의 내용을 추가해서 종합 기사로 보내고, 남아공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한 발언도 처리했다.

그러는 도중 본사 데스크가 또 인도 달 탐사선이 몇시간 뒤 달 남극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의 외신 한 줄을 개톡으로 보내왔다. 내용을 보니 찬드라얀 3호가 인도 현지시간으로 오후 6시 4분에 달 남극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도착하면 인도가 달 남극에 착륙한 최초 국가가 된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내용이었다.

찬드라얀 3호 기사의 경우 인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최근 떠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으로 간주하고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배달된 인도 신문 1면 톱으로도 해당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1보도 보내고 '종합2보' 기사까지 처리했다.

[2023년 8월 24일(목)]

오늘은 뉴델리 현지의 한국 물류업체에 이삿짐 통관 서류 일체를 건넸다.

사실 업체 사장이 어제 이삿짐 관련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는데 하지 않아 마음이 좀 언찮은 편이었다. 아침에 와츠앱 계정을 통해 업체 사장에게 항의성 문의를 했다.

그랬더니 현지인 직원이 연락해와 "어제 이메일로 해당 내용을 내게 보냈다"고 했다.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도착한 게 없었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다시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와츠앱 사용하는지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와츠앱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제 이메일이 온 게 아니고 오늘 이메일을 보내왔다. 와츠앱을 통해 보내온 내용과 동일했다. 통관에 필요한 서류 7가지를 출력해 앞장 오른쪽 아래에 서명한 뒤 자기에게 연락을 주면 동료를 보내 이들 서류와 여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간디의 마지막 발자국.png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저격되기 전 남긴 발자국

서류 4개는 이메일에서 그냥 출력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머지 3가지는 내가 컴퓨터에 보관중인 것을 출력했다. 이들 3가지는 특파원 임명 레터, FRRO 등록 서류, 팩킹 리스트였다.

비자연장 과정에 있기에 FRRO 서류가 없으니 ePAN 카드로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니 가능하다고 했다. ePAN카드가 이처럼 요긴하게 쓰였다.

자료를 완비한 뒤 그 직원에게 연락해 오늘 오후 중 동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늘 오후에 안 오면 내일 오겠지'라는 심정으로 일을 하면서 기다렸다. 웬일인지 오후에 업체 직원이 와서 준비해놓은 서류를 챙겨갔다. 현지인 직원들이 한국인 사장에게서 한국인의 일하는 방식을 배운 듯했다.

호텔 로비에서 서류를 건넨 뒤 방으로 돌아왔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권도 달라는 것이었다. 이메일 상으로는, 여권을 만든 지 1년이 되지 않아 구여권도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구여권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이랬다저랬다 헷갈린 뿐이다. 신여권만 건넸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은 24일 인도 뉴델리에 도착했고, 통관 후 집(호텔)에는 29일이나 30일쯤 도착한다고 업체 측은 말했다.

기사를 쓰다가 다른 일을 처리하다가 보면 자꾸 깜빡 잊는 현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여권을 깜빡 잊은 것처럼. 아내는 알코올성 치매 아니냐고 조심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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