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9일(화)]
이삿짐이 마침내 도착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 사이라더니 이 시간대에 업체에서 실제로 짐을 갖고 왔다. 업체 직원 4명이 17개 박스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7층으로 옮겼다.
나는 사전에 호텔 프런트 오피스 매니저에게 오늘 이삿짐이 오니 협력해달라고 했다. 짐이 17개 제대로 왔는지는 아내가 체크했다. 짐이 금세 방으로 모두 도착했다. 책임자급 되는 사람이 이삿짐 인수 서류에 서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피트백 작성을 부탁했다. 다들 보는 앞에서 잘 했느니 못했으니 평가하는 피드백을 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짐이 도착하니 이제야 호텔 방이 내 집같이 느껴졌다. 아내는 계속 짐을 풀었고, 나도 기사를 마무리한 뒤 합류했다.
나는 이케아에서 구입한 기구 조립도 하게 됐다. 물건을 담아 옮길 수 있는, 바퀴 달린 기구였다. 조그마한 드라이버가 필요해 7층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목수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일이 커졌다.
목수는 조립도의 첫 장에 나와있던 완성품만 보고 바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함께 온 직원은 조수 역할을 했다. 20여분만에 조립을 완료했다. 조립에 서툰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팁 대신 음료수 한 캔씩 건네며 고마움을 표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안방에 있는 전화기로 전화가 걸려왔다. 로비에 내려갔더니 아마존에 주문한 정수기 필터가 도착해 있었다. 배달 담당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이 담당자는 호텔 매니저를 불러 소통했다.
페이티엠(Paytm)과 유피아이(UPI) 결제는 외국인인 내가 할 수 없고 직불(debit)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고 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페이티엠은 인도 최대 핀테크 기업이자 세계 3대 전자결제 기업으로, 모바일 결제, 금융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결제 플랫폼이다. 유피아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계좌 간 즉시 송금과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답답했다. 인도에 엄청난 규모의 젊은 인력이 있는데 대다수가 이처럼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고 봐야할 것 같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개 배달원이나 운전사, 노점상, 음식점 종업원 등으로 일하는 것같다. 외국인으로서 뉴델리에 사는 이들 상당 수는 이처럼 영어를 잘 못하는 인도인과 매일 접하며 소통상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2023년 8월 31일(목)]
뉴델리 도심에 있는 한식당에서 오후 6시 저녁 약속이 있었다. 인도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의 홍보 담당자들과 만나러 오후 5시 20분쯤 집에서 출발했다.
한식당에 도착할 무렵 어디선가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거래하는 현지 한국계 은행 뉴델리 지점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비자연장 신청과 관련한 서류를 또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자기네 감사실에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몇번이나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인지 짜증이 확 났다. 이야기를 해도 소통이 되지도 않았다. 그 직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서류를 요구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질 못했다.
몇 차례 같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서 곧장 한국인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인도 중앙은행 규정도 잘 알겠고, PAN 카드도 보내줬는데, 감사실에서 왜 서류 요구를 하는지 따지듯 물었다.
관료주의 병폐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중앙은행이건 거래은행 지점이건 일을 자기네 편의대로 일하는 것 같았다. 고객 편의는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일하는 직원들이야 업무이니 무엇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나무랄 수도 없다. 결국 윗사람이 잘해야 한다. 이런 부조리를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도에 살면서 이런 일을 자주 당하면 화가 난다.
지점장과 10여분 동안 통화하다보니 약속시간인 오후 6시가 됐다. 식당에 들어가니 이미 모두 와 있었다. 2시간 30분가량 족발 등을 안주 삼아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인도에 와서 겪은 황당한 일이나 인도 외 다른 나라에서 생활한 경험 등을 나누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 3명은 모두 델리와 인접한 하리아나주 구루그람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도 구루그람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구루그람은 우리로 치면 분당 신도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