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3일(월)]
디왈리 날 밤에 폭죽을 많이 쏜 탓인지 오늘 아침 공기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나쁜 것 같았다. 하지만 앱상으로는 공기질지수(AQI)가 100 이하로 나와 밖에서 조깅했다. 일부 나무들은 낙엽이 지고 있어 가을 분위기마저 났다. 호텔 인근 소하천의 찌린내는 여전히 코를 찔렀다. 소하천 물은 시꺼먼 색깔이어서 혐오스러웠다.
소와 개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여전했다. 아스팔트가 깔리기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에도 소와 개들이 이렇게 돌아다녔을 것이다. 이들 동물은 공기가 나빠도 온전히 들이마시고 있다.
오전에 방글라데시 매체를 모니터하다가 러시아 해군 함대가 50여년만에 치타그람(옛 치타공)항을 친선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다. 확인해보니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도 짧게 보도했다. 방글라데시 일간 데일리스타는 상세하게 소식을 전했다.
1971년 3월 시작된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 전쟁 당시 방글라데시 편을 든 소련이 1971년 12월 방글라데시가 독립한 이후인 1972년부터 3년간 치타그람항에 해군 함대를 보내 항구에 설치돼 있던 기뢰를 제거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소련 후신인 러시아가 51년 만에 해군 함대를 다시 치타그람항에 보낸 것이다.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었다. 당시 냉전시대에 현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으로, 미국과 가까웠다. 서파키스탄에서 독립하려는 동파키스탄을 소련과 인도가 도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방글라데시는 지금도 러시아, 인도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기사에 반영해 송고했다.
저녁 무렵에는 지난 8월 인도 내무부 산하 언론공보국(PIB)에 신청 완료한 기자증이 언제 나올지 알아봤다. 지난달 25일 PIB를 찾아가 PIB 직원 소개로 인도 외무부 관계자도 만났다.
그날 PIB에서 보내온 메일을 통해 신청서류도 보완했다. 그런데도 여태껏 아무런 소식이 없다. 외교부 직원에게 전달받은 PIB 담당자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무응답이었다. 조금 지나서 누군가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힌디어로 몇마디 하다가 끊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문자로 기자증이 언제 나올지 알고 싶다는 내용을 보냈지만 무응답이었다. 이렇게 일하는 게 인도식이다.
[2023년 11월 14일(화)]
인디라간디 국립오픈대학(IGNOU.이그노우) 홈피에 나오는 온라인 프로그램 중 하나를 수강하려고 코디네이터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수강 신청을 하려면 어떤 서류를 준비해 어디서 제출해야 하느냐는 문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메일 답신이 빨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답신이 왔다. 'F block, maidan garhi, new delhi'로 가든가 웹사이트를 참고하라는 게 전부였다.
내가 코디네이터에 이메일을 보낸 것은 웹사이트를 다 둘러보고도 그런 부분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무성의한 답변이 왔다. 코디네이터는 내가 웹사이트도 제대로 안보고 이메일 문의를 한 것으로 생각했든가 아니면 자신이 웹사이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든가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이그노우 홈페이지에 나오는 온라인 프로그램 담당부서 이메일로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그노우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는 전화번호로 통화도 했으나 무응답이었다.
내친 김에 언론공보국(PIB)에 지난 8월 신청한 기자증을 아직도 받지 못한 상태라고 인도 외무부 관계자에게 메일도 보냈다. 지난 10월 25일 PIB에 찾아갔을 때 소개받은 외무부 관계자에게 상세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게 보낸 메일에는 '10월 25일 당신이 내게 명함을 건네면서 명함 뒤편에 써준 PIB 담당자 핸드폰 번호로 오늘(14일) 전화했으나 응답하지 않았고, 몇분 뒤에 그 담당자가 내게 전화해와 힌디어로 몇마디 하고는 끊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예의를 갖춘 추상적 표현의 이메일로는 상황 전달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