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한 명 있다. 우리는 랜덤 채팅에서 처음 만났고, 대화하다 보니 어쩌다 취미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나의 취미가 소설 쓰기라 대답했고, 그는 자신도 소설을 써보는 것이 목표라면서 나에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내가 그를 가르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내가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여러 꿀팁들을 알려주면 그는 우선 그를 적용하여 아무렇게나 일단 써본다. 그러고 나면 내가 그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 첨삭해 주어 메일로 보내주는 식이다.
그런데 몇 주 전, 갑자기 제자의 필력이 급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습작이 내게 보내졌다. 나는 기뻤다. 내 제자가 많이 성장했구나, 하고. 그런데 내가 칭찬을 늘어놓자 제자는 퇴고를 챗 GPT에게 부탁해서 평소보다 잘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챗 GPT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적절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가 다음 습작을 보내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제자가 다시 습작을 보냈고 그제야 챗 GPT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떠올랐다.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실제론 아닐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AI 개발이 활발해졌다. 그림 그리는 AI, 글 써주는 AI, 대화하는 AI 등등... 슬슬 사람들의 삶에 AI가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인간의 질문에 대답을 내놓던 수준의 AI는 이제 인간의 질문에 답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창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쓰고, 작곡도 하고, 시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AI가 내놓는 창작의 결과물은 퀄리티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에 위협을 느끼는 창작자들과 예술가들도 많다. 몇몇 사람들은 몇십 년, 아니 몇 년만 지나면 인간이 더 이상 창작을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아주 완벽한 착각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AI가 극한으로 발전된다면 창작계에서 칭송받는 사람들보다 AI가 더욱 완벽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으니, 그럼 사람들은 AI의 창작물만 보고 듣고 살 것이다.
다소 배부르고 건방진 소리처럼 들릴 순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창작은 향유하는 이들이 아닌 창작을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만든 창작의 결과물을 좋아해 주면 기쁜 거고, 그전에 창작자들은 자신이 창작을 함으로써 기쁨과 고통을 느껴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무언가를 한다'라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향유하는 이들은 AI와 인간이 만든 결과물의 경지가 같다면 무엇을 봐도 상관이 없겠지만 창작자는 자신이 시간을 들여 피땀눈물을 흘리며 만들어낸 결과물의 가치를 안다. 그 가치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창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창작 과정을 전부 해낸 것만을 '나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의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그것이 진정한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를 거친 것은 '나만의 것'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거기다 그러한 '나만의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이 창작과 예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AI는 사람이 아니다. AI는 오로지 학습된 자료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만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온 창작물과 중복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도 없다. 고로, 나는 창작에 AI가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