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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y 10. 2023

월화月華

달은 기울다 차오르는 것처럼

길에서 밥을 먹는다. 매연이 밥보다 먼저 숟가락에 오른다. 행인들이 가격을 물을 때마다 대답하느라 도로에 펼친 밥상을 쉬이 거두지 못한다. 손님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한 수저 푹 뜬다. 사래가 든 것인지 아니면 목이 메는지 캑캑거리며 급하게 물을 들이켜느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본다. 


밥상이라야 겨우 목욕탕 의자다. 온종일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파도 다듬고 마늘도 까고 총각무도 손질하던 것이다. 그 밥상 위에 찬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밥그릇을 들고 도로에서 먹는 점심이다. 점심 한 끼는 오후 내내 햇볕과 바람과 시끄러움을 견뎌내고 무탈하게 보낼 수 있는 에너지다. 사실 점심을 제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본다. 그리 많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은 점심 한 끼마저도 편히 주지 않는 건조한 곳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촉촉하게 살아가고자 나름대로 애쓴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자 자리를 털고 굼뜨게 일어난다. 가게 문을 닫고 자물쇠도 잠그지 않은 채 풀 죽은 것들을 주섬주섬 리어카에 싣는다. 할머니의 둥근 등 위로 동그마한 달이 머뭇머뭇 고개 내민다. 달빛에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아슴하다. 열무 스무 단을 이고 오일장에 간 어머니.


희붐하게 날이 밝으면 어머니는 사립문을 나섰다.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도착하여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휘모리장단에 맞추어 걸었다. 뛰는 속도다. 짚으로 묶은 열무 단 사이사이에 애호박이며 가지며 풋고추를 끼워 넣고 길바닥에서 온종일 앉은뱅이로 있었다. 점심은 제때 먹었을까. 


어둑어둑해진 시각, 집집이 불이 켜지고 외양간의 소는 여물을 되새김질하고 마루 밑 강아지는 두 귀를 동구 밖으로 쭉 빼고 짖어대었다. 골목길에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나는 쪼르르 달려가 품에 안겼다. 어머니에게서 묻어나던 시장 냄새는 지금도 아릿하다.


큰 양푼을 옆구리에 끼고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머리에 두른 수건으로 온몸을 패대며 하루치 고단함을 털었다. 시골길을 때로는 환하게, 때로는 어슴푸레하게 비춰주던 달이 내려와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거렸고, 사랑채 지붕에 벙근 박꽃을 어루만졌다. 


달빛을 깔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버지는 엄마 맞은편에, 나는 어머니 옆에 바투 앉았다. 양푼 안에는 늘 알사탕이 제집 인양 벌러덩 누워 있고 막걸리 한 주전자가 다보록하게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주전자 뚜껑을 열고 새끼손가락을 푹 담가 휘휘 저으셨다. 시큼한 냄새가 허공에 부딪혔다. 안다미로 그릇에 따랐다. 깊숙한 술잔에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두 분은 안주와 짝도 맞추지 않고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달도 삼켰다. 달은 하늘에서는 별을 보듬고 있고, 입안을 지나 목울대로 넘긴 달은 부모님 얼굴을 복사꽃처럼 붉게 물들였다. 알사탕을 입에 물었던 달달함에 푹 빠진 내게 들어온 달은 지금도 온몸을 훑고 다닌다. 비워야 채울 수 있으며, 삶의 모서리가 세찬 비바람에 닳고 닳아야 둥글둥글해진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돌아보면 부모님에게 달은 든든한 자식 같은 존재이었을지도 모른다. 달은 구름에 가리어 빛 한 점 내주지 않으며 몸을 숨기었다가도 나 보란 듯 온몸을 드러내며 세상을 환하게 비추었다. 달은 기울다 차오르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님에게 기쁨이었다가 서운함이었을 것이다. 


식탁에 둥근달처럼 환한 조명을 켜놓고 하루가 기우뚱 저무는 시각에 베란다 문을 연다. 도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바람결에 도시의 먼지에 가려져 희미한 월화月華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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