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시혼을 품고 자박자박 건너오는 바람이 가수원 뜰을 채운다.
보물이 묻혀 있다는 보문산 사정공원에는 시비가 여럿 있다. 1965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된 보문산은 일상에서 자연과 함께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다. 천혜의 자연에 시를 입혀 문화공간으로도 주목받는다. 시인의 시혼을 비석 하나에 오롯이 담지는 못하여도, 시비를 통하여 일반인들은 시인의 문학적인 삶을 헤아려보며 귀한 시간을 갖는다. 문학비가 갖는 긍정적인 힘이다.
임강빈 시비 앞이다. 시 세계가 고요하고 단정한 시인의 이미지를 최종태 조각가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형상화하여 화강암에 절절하게 새겼다. 시인은 무엇을 기도하며 살았을까, 조용히 묻고 싶다. 외로울 때 시가 된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에게 시는 필요하다고 시인이 말해왔듯이 아마도 시가 아니었을까. 시비에 새긴 시 <마을>을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조심 읽어본다.
시인은 중학교 무렵 난전에서 <문장>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털어서 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뛰어서 집으로 돌아와 읽고 또 읽은 시가 문학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그 후 틈만 나면 금강 가를 거닐거나 공산성에 올라가 잔디밭에 드러누워 시 구절을 외우며 시심을 키웠다. 그 후 교사로 근무할 때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항아리>, <새>, <코스모스>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이어왔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시인 박용래, 한성기, 임강빈을 대전의 삼가三家라 한다. 특별히 박용래와는 호형호제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막역한 친구였다.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문학을 논했고 구석진 사회 곳곳을 들추며 양지의 따듯함을 시로 담았다. 서로 먼저 죽으면 시비를 세워주기로 하였는데 정말 박용래 시인의 시비 건립추진위원장이 임강빈 시인이었다. 더구나 박용래와 임강빈의 시비는 현재 이웃하고 있다. 박용래 시 <저녁 눈> 에 나오는‘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와 임강빈 시 <마을> 에서‘서로가 다독거리며 사는 민들레라는 따스한 마을이 있다’는 마치 한 장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시속에서도 서로 이웃으로 다독거리는 문우이었다.
몇 해 전 600쪽이 넘는 <임강빈 시전집> 책을 원로 문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1969년 발간한 첫 시집 <당신의 손>을 시작으로 유고 시집 <나는 왜 눈물이 없을까>까지 시가 들어있다. 서정적인 시를 고집하였던 그의 시혼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으로 다가와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듯 따스하다.
을사년 새해가 시작되고 임강빈 시인을 깊은 마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시인의 시극을 위한 작업을 내가 맡았다. 내가 속한 수정시낭송아카데미는 매년 대전 시민을 위한 시 낭송 공연을 해왔다. 올해는 특별히 임강빈 시인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짰다. 성품이 맑고 순수하며 너그럽고 곧아서 단아한 충청도 선비를 연상하게 하는 시인, 그의 문학적 삶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혼란과 아픔이 혼재하는 현실을 치유하고 따뜻한 공동체로의 사회를 만드는 기획이다.
시극 준비를 하면서 그와 관련하여 이것저것 수집하였다. 생전에 인연이 없었기에 전해지는 이야기만을 모았다. 인터넷 기사를 탐독하고 물어물어 대전에서 오랫동안 문학 활동을 한 작가를 찾아 나섰다. 무조건 그에 관한 일화를 물으며 메모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대부분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그 와중에 그의 문학적인 삶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황희순 시인을 만났다.
그녀는 임강빈 시인의 손과 발이었다. 황 시인은 1997년부터 임강빈의 육필 원고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정리하고 교정을 보는 동안 첫 독자로 설렜다고 한다. 작은 체구에 언변은 당차 보이고 눈매는 한없이 따스하다. 그녀는 시인을 이야기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시를 읽으면서도 울컥한다. 시인을 향한 정성은 세월에도 시들지 않아 보인다. 그의 유작을 정리하여 유고 시집을 발간하고 시비를 세우는 일에 앞장선 마음이 참으로 깊고도 융숭하다. 나는 문학으로 만난 어느 도반을 위하여 이토록 정성을 다한 적이 있는지 돌아본다.
그녀가 건네준 폭넓은 자료와 소소한 일화 덕분으로 극본을 쓸 수 있었다. 한 번도 희곡 공부를 하지 않고 문어체에 익숙한 내가 구어체를 구사하는 게 어려웠다. 매우 부족하지만, 고치고 또 고치니 단조롭지 않고 입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갓 말문을 튼 어린 아가가 오물거리는 단어로 문장을 이야기한 것처럼 서툴다 하더라도 시인의 맑은 시 세계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이제는 출연진들의 몸짓에서 그의 시혼이 관객에게 닿는 일만 숙제로 남았다.
앞으로 시인 임강빈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펼쳐지면 그의 시는 유형의 자산으로 살아 움직일 것이다. 세속에 물듦이 없는 그의 서정시는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비 같은 울림이다. 시를 통하여 세상사의 깨우침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수행이며 바른길이다.
평생 시를 쓰며 살아온 임강빈 시인은 살아생전 애송시 하나 없어 허무하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글의 변죽만 울리는 나는 어떠한가. 좀 더 성찰하는 삶을 통하여 글의 숙성을 기다려야겠다. 이제 겨우 연둣빛 싹이 올라오는 것을 마치 초록이 무성한 것으로 착각하여 녹음을 자랑한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본다.
행운은 예고 없이 훅 들어온다. 임강빈 시인이 소파에 앉아 시를 쓰던 그 자리에서 하늘과 구름을 볼 수 있었다. 막힘없이 탁 트인 거실에서 시인은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시 속에 사셨다고 유족들은 회상에 젖는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번/이 가을하늘 쳐다보세요.’라고 했던 하늘이 그대로 창으로 들어오는 시인의 집, 곳곳이 시혼으로 꽉 차 있다.
시인은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 대전 서구 도마동 126-2번지 주택에서 살았다. 이곳은 넓은 마당에 푸른 잔디가 있고 감나무가 자랐다. 대전의 중심지 오류동에 살던 박용래 시인이 와서는 대뜸 ‘야, 네 집하고 내 집하고 바꾸자.’라고 하였다. 비록 논밭 가운데 있는 시골집이어도 단정한 시인의 성품이 묻어나고 올곧은 선비처럼 집의 구조가 단단하였나 보다. 문인들이 드나들던 집의 감나무가 사라진 것처럼 이곳의 하늘도 발걸음을 멈추는 날이 곧 오겠지. 아파트 난간 어디에라도 시인이 살던 공간이라는 표지 하나 영구히 만들어지면 좋겠다. 며느리가 예쁘게 깎아 한입 크기로 내온 멜론을 오물오물 드시는 이석희 여사의 얼굴이 맑다.
시인의 삶은 시로 남아 향토문학의 크고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그 기둥을 지지대로 삼고 정진하는 다양한 문인의 미래를 그려본다. 우봉又峯 임강빈林剛彬 시인의 맑은 시혼을 품고 자박자박 건너오는 바람이 가수원 뜰을 채운다.
*대전문학114호 (2025년10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