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걸어둔 고립의 문을 열었다
전화벨은 울리는데 계속 받지 않는다. 귀를 바짝 대고 집안의 동태를 살펴보지만, 어떠한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이 방전되지 않고 신호가 간다는 것은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다.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고 벨을 누르고 고함을 질러도 방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사람들이 놀라서 걱정의 눈빛으로 말한다. 뭔 일이냐고?
경찰관이 건물 바깥으로 나가 틈을 살핀다. 겨울이라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다행히 화장실의 작은 창문이 방범창 사이로 쌓인 먼지를 밀치며 삐거덕 열린다. 그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간 손전등이 온몸을 오그린 채 속옷 바람으로 변기 옆에 자빠져 있는 남자를 비춘다. 현관문을 따는 열쇠 수리공의 손이 벌벌 떨린다.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숭숭 들어와 가슴이 얼얼하고 입술은 타들어 간다.
빗장 걸어둔 고립의 문을 열었다. 직감적으로 생명의 불씨를 본 경찰관은 구둣발로 들어가 쓰러진 남자를 안아서 구겨진 이불 위에 비스듬히 앉힌다. 구급대원이 체온을 재고 혈압을 측정하며 문진하자 남자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반응을 보인다. 방은 냉골이고 술병은 나뒹굴고 컵라면에 달라붙은 뻘건 국물이 말라비틀어져 있다. 그간 남자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이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남자가 오들오들 몸을 웅크리며 주위를 살피는 멍한 눈빛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누군지 아는지 모르는지 금방 눈길을 거둔다. 남자는 구급차를 타고 갔다.
주택가 좁은 도로에 부산하게 찍힌 발자국 위로 눈발이 세차게 날린다. 세상은 온통 흩날리는 눈송이로 회색빛이다. 올해 들어 제일 추운 날이라고 며칠 전부터 예보했었다. 이렇게 꽁꽁 언 날, 그래도 남자가 병원으로 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하루 이틀 그냥 방치되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집을 사고팔고 하면서 나와는 인연이 닿았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고향 집을 팔고 아파트를 샀다. 농사철에는 농사꾼으로, 농한기에는 막노동꾼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보통 사람이었다. 여자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노모를 살뜰히 보살핀다는 이웃들의 칭찬이 간간이 들렸다. 남자는 가끔 갓 따온 호박이며 가지를 사무실에 가지고 왔다. 역전 시장에 내다 팔고 남은 것이라며 수줍게 건넸다. 그럴 때마다 차 한 잔하고 가시라고 하면 대답보다 먼저 몸이 출입문을 열었다. 공짜로 얻어먹은 채소 비용을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다.
건강하게 일하면서 대출금도 갚고 별 어려움 없이 잘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노모는 몇 해 전 먼 길 떠났다. 그들은 살던 집을 팔고 남남이 되었다. 여자는 타지로 가고 남자는 동네에 남았다. 잠시 거처하려던 방에서 오 년을 혼자 지냈다. 남자는 예전대로 농사짓고 막노동하며 그럭저럭 지내는 것 같았다. 흙 묻은 바지를 걷어붙인 채 비틀거리며 지인들과 걸어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비록 술친구라 하여도 혼자가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다. 임대인이 오면 으레 그의 안부를 물었다.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낸다고 하여 잘살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꽁꽁 얼어붙어 오가는 사람이 없는 날, 건물주가 와서 말한다. 최근 남자가 많이 핼쑥하고 아픈 듯한데 병원에는 안 가고 집에만 있다고. 오늘이 임대료를 내는 날이라서 전화를 여러 번 했더니 안 받는다며.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불안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어디 나갔거니, 하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건강한 사람도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었다. 집주인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가 현장 확인 후 경찰서에 신고하여 생명을 살렸다. 잘나거나 못나거나 누구에게든 생명의 끝이 사람과 닿아 있으면 좋겠다.
세상으로 향하는 현관문이 잠긴 곳이 많다. 농경시대 같으면 얕은 담 너머로 집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사립문은 누구나 쉽게 열고 들어갔기에 고립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는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으면 바로 고립이다. 이러한 현상은 노인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확대된 지 오래다. 최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취약계층을 돌보고는 있다. 하지만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 남자가 그랬다.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웃은 일상생활에서 위험 징후를 발견하기 쉽고 고립감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고립의 시대에 그 공백을 채울 새로운 관계가 이웃이 되면 좋겠다. 물론 스스로가 이웃의 손길을 생활 개입이라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는 열린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피붙이는 아니더라도 소외된 이웃이 잘살고 있는지, 서로서로 살피며 소통하는 나눔 문화가 이루어지는 따뜻한 사회이길 바란다.
이제 눈은 조용히 내린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먼 산에는 이미 눈꽃이 만발하였다. 쌓인 눈이 다 녹으면 세상은 봄빛 속에서 맘껏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리라. 살아있는 것들의 숨결이 혹한의 모서리에서 기죽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하루가 비로소 저문다. 집집이 안부를 밝히는 불이 켜지고 모두가 때를 거르지 않고 밥상에 앉아 수저를 드는 저녁 풍경을 그린다.
며칠 후 남자의 동생이 와서 짐을 정리했다. 옷가지 몇 개만 가져가고 살림살이를 몽땅 버렸다. 폐기물 수거장에는 한동안 그 남자의 삶 일부가 가림막 하나 없이 드러난 채 추위에 떨었다. 남자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혹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겨울을 혼자서도 거뜬히 헤쳐나가리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며 살았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독거노인이 겪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했다.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리다가 이내 곧 묻혔다. 남자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가 살던 1층 방에는 외국인 산업 연수생 3명이 입주했다. 이 작은 원룸이 그들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둣돌 같은 공간이면 좋겠다. 지금은 소통이 잘 되지 않지만, 조만간 이웃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으리라. 설날을 앞두고 그들에게 가래떡을 건네며 떡국 끓이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설날 아침에 머나먼 타국에서 뜨끈한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장수와 재물 복을 바라는 소망으로 한 해를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에게 촘촘한 관계망이 혹여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날, 함박눈이 또 내린다. 정월에 내리는 눈은 풍년을 예고한다고 했던가. 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돌고 돌아 생명수가 된다. 사람 사이에도 온정이라는 순환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사회가 개인주의로 변하면서 고리는 헐거워졌지만, 다시 단단히 조여 매는 이는 바로 공동체의 중심인 나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수필과비평 2026.1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