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3년 일한 직장을 떠나며..
2011년 12월 11일, 백수에서 벗어난 날.
2024년 12월 14일, 다시 백수로 돌아가는 날.
나를 백수에서 건져내 준 이 조직에 몸담은지 13년..
웃을 일도 많았지만, 지긋지긋하게 징한 일도 많았던 이 조직에서 탈출해 백수가 된다.
이제 영원히 백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 뭐 영원히 백수가 되면 뭐 어때, 내 주변 친구들도 잘만 사는걸, 아니야, 나는 살림을 너무 못하잖아. 설거지보다는 출퇴근이 낫지. 그래, 넌 아무리 생각해도 워킹맘과야.
내면의 지킬앤하이드가 되어 하루에도 수천번씩 백수가 된 삶을 상상했다가 도리도리 손사레를 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미국 대학교에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사실은 지난 번 편지가 마지막이랍시고 눈물날리며 적어 보냈는데, 마이클과 하딜이 비자인터뷰를 한번 더 보면 어떻겠냐, 필요한 DS-2019 서류는 얼마든지 재수정 작업해주겠다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시 답장을 해와서,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재인터뷰 보지 않을 것이며, 진심어린 조언 감사하다고, 이제 진짜 안녕, 하고 회신을 했다.
이제 정말 나는 미국 유학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 어떤 직장도 다니지 않는 사람, 손이 하얀,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진정한 백수의 날로 접어든다.
엄마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지칭할까봐 걱정이다. 나는 피곤한 워킹맘이니까라는 핑계로 쌓아뒀던 설거지와 청소와 정리와 애들돌보기와 요리와 기타 등등의 모든 일이 나에게 쏟아질까봐 걱정이다. 아무도 나에게 쏟아붓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침에 눈뜨고 애들 겨우 학교보내고 다시 침대로 들어가 눕는 생활을 반복하다 우울증에 시달릴까 걱정이다.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장한 일인데, 어떤 재화든, 어떤 의미든 생산해내지 못하면 인간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내 삶이 무의미하다고 여길까 걱정이다. 이제는 남편카드로 결제하며 쓸데없는 부채의식에 짓눌릴까 걱정이다. 출퇴근과 직장일에 빼앗기던 에너지를 이제는 애들 학업성취에 몰두하는 뻘짓을 할까봐 걱정이다. 안그래도 안꾸미는 난데, 여기서 더 나아가 외모가 완전히 망가지게 될까봐, 그냥 나를 온전히 놓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이제 겨우 만42년을 살았는데, 백수로 앞으로의 나날 42년을 더 살 수도 있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 대책은 무슨 대책이 있어, 마음이나 잡아 매, 백수의 삶이 널 힘들게 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 받아 들여, 누군가는 그런 삶을 평생 살았을텐데 너만 특별할 것도 없어, 그 삶도 소중하고 너는 잘 해낼거야. 라고 스스로 해피엔딩을 맺어본다.
자아분열이 일어나려고 한다.
으아아악
누가 나를 좀 붙잡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