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아침 7시, 어느 백화점에서 본 풍경
어느 날, 백화점 뒷문 현관에서 보았던 오픈런 고객들의 대기장소가 지하로 옮겨온 것 같다. 대략 70-80명즘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왜 거기에 줄을 서고 있을까. '오늘이 제일 싼'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늦기 전에 사려는 고객일까, 좀 더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 판매상일까. 비싼 가방이 관심 없는 사람에게 낯선 광경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하에서 빠져나와 백화점 밖으로 돌아가는데 김밥 파는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다. 편의점에서나 볼 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 위에 놓인 파란 아이스박스. 그기에는 여러 가지 김밥의 종류를 써 놓은 글씨가 보였다. 아주머니는 주변을 운동하듯 걸으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품(또는 사치품)을 파는 백화점 후문 주차장입구에 2-3천 원짜리 김밥을 파는 광경이 무엇인가 어색하게 보였다.
수백만 원짜리 '에.루.샤' 사치품을 사는 사람은 과연 김밥을 먹을까. 그것도 집에서 '수제'로 만든 김밥을. 사치품을 사러 온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가 아니라면 주머니가 얇은 고객이 그 대상일까. 의문이 들면서도 그 아주머니의 일생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젊을 때 열심히 살지 않아서 이렇게 더운 여름날, 그것도 백화점 밖에서 김밥 파는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 저분을 무더운 여름에도 노점을 꾸리게 만들었을까. 그러면서 어머니와 나를 동시에 떠올렸다.
어머니도 시장 주변, 도로모퉁이, 심지어 내가 다닌 학교 주변에서 액세서리, 화초 그리고 저렴한 그림을 팔았다. 생계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를 통학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학교를 마칠 때쯤에서야 어머니도 노전을 정리해 퇴근하셨다. 이처럼 어머니도 김밥 아주머니처럼 열심히 사신분이다. 나는 어떤가? 노점까지 하신 가난한 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미국 유학에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나 역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만큼 보상을 받았는가?
열심히 산 것과 보상(여기서 보상은 경제적인 부유함이라 하겠다.)은 별개인 것 같다. 적어도 위에 언급한 세명의 모습에서는 말이다.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저 세명은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몰라서일 수도 있다. 비단 세명만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환경에 숨을 쉬고 살아가는 대부분이 비슷하다. 노동은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 가치가 반드시 1:1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세상이다. 만약 노동=가치가 비례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노동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은가.
사치품은 자본주의의 결정체이다. 자본으로 쌓아 올린 자산가들이 타인과 구분하기 위해 소유하는 것이 사치품, 좋게 말하면 명품이다. 사치품은 종류에는 슈퍼카, 보석, 그림, 요트, 별장 및 각종 회원권도 있고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고가아파트도 여기에 속한다. 사치품에는 희소성의 원리에 의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비싸지는 것도 있다. 자본주의를 이해한 자산가들이 부를 더욱 늘리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노동은 신성하지만 신성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처럼 맹목적이 될 수 있다. 똑똑한 노동이 필요한 때다.
2024.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