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행사같은 것"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햇살이 차오르는 하지의 새벽이면 그나마 낫지만 밖이 추운 겨울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불속의 달콤함이 너무 크다. 이리저리 뒹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토요일의 자유시간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서야 이불속을 빠져나오게 된다. 주섬주섬 챙겨 입는 것도 번거롭다. 두꺼운 롱패딩에 몸을 끼워 넣고 현관문을 열고서야 나갈 마음의 준비도 끝이 난다.
언제나 그렇듯, 밖을 나와 찬바람에 잠이 깨면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항상 걷는 집 주변이 너무나 익숙해서 무작정 버스를 탄다. 마음 내키는 대로 버스를 내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이다. 오늘은 광안리 방향으로 버스를 탔고 양정역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한창 아파트 공사중일 때는 거리가 어수선하더니 입주가 가까워오니 말끔히 정리가 되어간다. 오전 6시도 안 된 시각.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큰길로 내려오니 차량이동도 많아졌다. 거리를 따라 걸어본다.
새벽의 거리풍경은 낮의 그것과 다르다. 주광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상가가 정겹다. 정리가 잘 된 카페는 눈길을 잠시 잡아둔다. 낮에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가는 것은 따스하게 보이는 조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가 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전자담배 파는 곳, 무인탁구장, 맞춤형 정장, 기타 드럼을 파는 악기상가, 오픈을 준비 중인 마트를 보니 나 여기에 있다고 부르는 것 같다.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조명보다 상가에서 나오는 불빛이 더 정겨운 이유이다. 다가오는 아침이면 문을 연다는 희망도 정겨움을 더한다.
송상현 광장을 지나 서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밤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잠시 쉴 시간임을 말해주듯, 여흥을 아쉬워하는 청춘들이 삼삼오오 길거리에 서성이고 있다. 역시 청춘은 화려하다. 갑자기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났다. 뉴욕의 새벽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젊음의 외침이 들린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모범생처럼 살아 일탈을 좀 더 하지 못함에 아쉬움도 밀려온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젊음의 특권을 발산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청춘의 외침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때즘, 다시 고요해지는 거리가 마음을 텅 비게 한다. 다시 돌아가 볼까 하다 머쓱해서 그냥 가던 길을 간다. 문현동 국제금융센터로 들어설때즘에서야 텅 빈 아쉬움은 다시 희망으로 바뀐다. 어둠이 저만치 가서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여의도에 견줄만한 금융센터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연휴를 앞둔 일요일에까지 작업이 한창인 공사현장이 보인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공기를 맞춰야 하나?
대연고개를 너머 상가거리와 경성대 상권으로 진입할때즘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거리가 어둠에서 완전히 벗어나서인가. 이제는 빌딩 위층에까지 눈에 들어온다. 병원도 많이 보인다. 전체 상가 중 병원이 그 반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병원은 1층에 자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일까. 카페, 편의점, 아이들 학원보다 훨씬 많이 보인다. 병원이 우리의 미래인가. 씁쓸하다. 경성대역에서 광안리까지 좀 더 걸어볼까 하다 오늘은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17,000보를 걸었으니 충분했다.
2025년 설날 연휴를 앞둔 토요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