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에서 벡스코로 내려오는 등산로. 그 길에, 어느 할아버지가 힘없이 손짓하는 것을 보고 잠시 멈췄다. 아침 7시경.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교회 가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해서 그냥 가려다, 뭐라고 하시는 것 같아 길을 멈췄다. 마스크를 콧등에 걸쳐있게 쓰시고는 힘없는 눈을 응시하던 모습이라 새벽 골목길에서 얼른 피하기 어려웠다. 거동이 불편해서인지 느릿느릿 다가오면서 속삭이듯 작은 말로 뭐라 하셨다. 집에 보일러가 작동이 안 되는지 봐달라는 것이다. 다행히 바로 집 앞 1층이어서 따라 들어섰다.
티브이가 있어선지 방이 아닌 거실에 침대가 보이고, 바닥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바닥에 여러 개 모여있었다. 보일러 리모컨이 안방에 있어선지 문을 열고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실내'라고 표시된 등에는 녹색불로 점등이 되었고, 전체전원도 켜져 있었다. 그런데도 방바닥도 미지근해서 무슨 문제 일까 생각했다. 이내 보일러가 설치된 베란다로 안내하였고 기계음으로 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불이 '확' 점화되는 소리가 나지 않아 고장인 것이 아닌지 의심하셨다. 그런데 주변 이웃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이른 시간이라 밖에 나와서 지나가는 '젊은 사람'에게 한 번 봐달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그분에게 나는 젊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뻘 또는 큰 아버지뻘 정도 되는 분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여든 정도 되시는 나이에 외진 곳에 사시는, 소위말하는 독거노인이시다. 방은 두 개였는데 나머지 방은 보여주시지 않았다. 홀로 사시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밖으로 나서는 길에 고맙다며 두유를 주셨다. 아까, 갈까 말까 망설인 마음 때문에 괜찮다며 사양하려 했으나, 할아버지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거절하기 싫어 꾸벅 인사하고는 문을 밀고 나왔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드는 경험이었다.
살면서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받는 일도 많지 않거니와 요즘은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는 일도 많지 않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주신 낯선 할아버지의 두유도 맛볼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는 일중의 하나는 독거노인의 삶을 우연하게 보게 되고 이런 모습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에 있다. 가까운 데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러했고, 조만간 우리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는 정리하고 낡고 쓰지 않는 물건은 기꺼이 버리자고...
그런데 아버지도, 그 할아버지도 몰라서 그러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몸 안팎으로 삶의 때가 자리 잡는 것처럼 우리 주변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지금껏 살면서 그 정도는 알지 않았던가. 최근 겪은 일중에 진한 울림으로 남게 된 것은,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가능성 높은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분명 다가올 수밖에 없는 미래. 그렇다고 대비하더라도 딱히 피하기도 어려운 30-40년 뒤의 모습. 오래전,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살다 가시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