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20. 공정별 시공단 기선 제압

by 한승재

## 승부수를 띄울 때


신설학교 업무추진 계획서에 겸임교장선생님 결재가 되었으니, 마침내 날개를 달았다. 물품구입 계획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이제 진짜 승부수를 띄울 시간이었다. 바로 공정별 시공단 기선 제압이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공정별 대표나 소장들은 말 그대로 베테랑급이었다. 수많은 현장을 거쳐온 그들에게 행정실은 그저 '서류나 처리하는 곳' 정도로 여겨지기 쉬웠다. 심지어 때로는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교육시설과 총괄담당 주무관만큼이나 현장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깊이 알고 있어야 했다.


## 선제공격의 시작


1기 신설학교 경험이 있던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교육시설과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무관님, 시공단 소장님들과 협의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날짜를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전화 너머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담당 주무관은 예상치 못한 요청에 당황하는 듯했다. 당연했다. 7월 1일 자 정식 발령도 받기 전인 6월 초, 아직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이런 요청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참석 범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육청 담당 주무관님들은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핵심 공정인 건축, 전기, 소방, 설비, 통신 소장님들만 참석하게 해 주세요."

나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주무관도 바로 날짜를 정하지는 못했다. 결국 6월 중순경으로 협의 날짜가 정해졌다.

## 기선 제압을 위한 준비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일 회의장에서 처음 만날 소장님들에게 "우리 학교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인사나 드리면 될까? 절대 아니다.

기선 제압이 필요했다. 그들이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내가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문제점들까지 꿰뚫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아, 이 행정실장은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시설 문제점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1기 때는 운 좋게 귀인을 만나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 스스로 해내야 했다.


하지만 전혀 문제없었다. 이미 1기 학교 구축 시 작성해 둔 하자 리스트가 있었고, 현재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했다. 이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부족한 부분은 현재 거래하고 있는 용역업체들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정보기기 유지보수업체, 정수기 설치업체를 미리 시공 중인 신설학교로 보내 현재 상태와 문제점을 파악해 달라고 지시했다.

용역업체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일을 주면 오히려 고마워하며 열심히 현장을 파악하고 수시로 문제점을 보고해 줬다. '문제점 파악하기, 생각보다 쉽네?'


## 치명적인 발견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로 공정별 관리 리스트를 작성하던 중, 정수기 설치업체로부터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다.

"실장님, 이거 대형 사고입니다. 정수기를 복도에 설치해야 하는데 급수 배관이 복도에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각 학년 협의실은 물론이고, 교장실조차 배관이 없어요!"

머리가 띵했다. 이런 현상이 왜 발생했을까? 설계업체나 교육청에서는 학교 운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 보니 사전 설계 시 필수 배관들을 누락한 것이었다.


'아직 시공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겸임 실장으로 발령받은 시점에는 이미 시공이 80% 이상 완료된 상태였다. 향후 추가 시공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현장에 수차례 방문하여 최종 확인을 마쳤다. 배치도를 보며 실별로 누락된 곳이 정확한지, 만약 시공을 해야 한다면 어느 위치에 설치할 것인지까지 미리 파악해 뒀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진짜 승부를 볼 시간이었다.


21-1.png 공정별 협조 요청 내용 건축 일부


## 완벽한 준비의 결실


문제점 파악을 마치고 상세한 리스트를 작성한 후, 나는 겸임교장선생님께 최종 보고를 드렸다. 교장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언제 이렇게 자세히 파악하셨어요?"

놀라움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우선 제가 공정별 소장님들을 만나고 협의하고 오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여성인 겸임교장선생님을 먼지투성이 공사장에 모시고 다닐 수는 없었다. 지금은 내가 전면에 나서서 모든 것을 정리할 때였다.


## D-Day, 시공단 협의회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나는 이번에도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내 사비를 털어 커피 14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미리 캐스팅해 둔 시설관리 주무관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모든 진행상황을 나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장 소장님들은 단순히 간단한 협의회 정도만 생각하고 온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건 신설학교 2회 차 행정실장이었다. 현장에는 공정별 소장님뿐만 아니라 감리단장님들도 함께 참석해 주셨다. 나는 커피를 한 분씩 건네드리며 인사를 시작했다.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를 위해 고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준비한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 치밀한 전략의 실행


나는 공정별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리 작성해 둔 상세한 리스트를 바탕으로, 마치 현장을 매일 드나든 전문가처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했다.

먼저 건축 분야부터 시작했다. "옥상 방수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콘크리트 마감 후 보완재, 우레탄 시공 순서로 진행되어야 하고, 특히 옥상 실외기와 건물 연결관 부분의 마감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는 부분을 강조했다. "2층 식당 아래가 유치원인데, 누수가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됩니다.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옆 배수로 방수도 반드시 확인해 주세요."


전기 분야로 넘어가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당직실에 대기전력 차단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지금 시공 중에 설치하면 간단하지만, 완료 후에는 별도 전기공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실용적인 부분들도 놓치지 않았다. "각 교실과 특별실에 상시전원 콘센트가 확보되어야 하고, CCTV 전원이 상시전원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돌봄 교실 앞 CCTV는 아이들 안전을 위해 꼭 설치되어야 합니다."


설비 분야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제기했다. "교외 수전에 Y자 연결관 설치가 필요합니다. 개교 전 조경업체의 초목 관리를 위해서는 수전당 최소 2개 정도의 연결관이 설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를 마지막에 언급했다. "각 층 정수기 위치와 배관 추가 설치가 시급합니다. 교장실, 교사연구실, 복도 여유공간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소장님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단순한 협의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 결정적 한 방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을 마지막에 강조했다.

"현재 시공상 가장 큰 문제는 설비 배관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정수기 설치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설계도면대로 진행했기에 시공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설계대로 했으니 시공업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순간이 겸임 행정실장의 진가를 발휘할 때였다.

"현장 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는 설계상의 문제이므로 교육청 교육시설과 담당 공업주무관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설계 부분 보완을 정중히 요청드리겠습니다."


## 마지막 카드, 교장선생님의 등장


하지만 시일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찬스를 써야 할 때였다. 나는 교장선생님께 현장 방문을 요청드렸다. 첫 방문이었다.

교육청에서도 겸임교장선생님의 첫 현장 방문에는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전에 방문 일정을 정확히 체크하고, 시설팀장과 주무관들이 모두 현장에 나와 주셨다. 교장선생님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준비된 대사를 말씀해 주셨다.

"고생들 많으십니다. 행정실장 이야기로는 정수기 설치를 위한 배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학교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니 설치 부탁드립니다."

그 뒤 결과는? 모든 복도에 배관 및 전기시설을 추가하기로 결정되었고, 학년 협의실과 교장실에도 배관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시설 관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각 층별 수도 배관을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각 층별 천장 배관 위치를 확인하고, 연결 가능성을 검토하며, 급수 및 배수관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 대공사였다. 만약 나중에 발견되었다면 학기 중 공사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개교 전에 2~5층 전 구간과 특별실에 정수기 설치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승리가 되고,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는 그냥 지나간다." 기선제압 완료. 이제 진짜 협상이 시작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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