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임발령의 필요성
신설학교 공모 합격 공문이 업무포털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저 혼자 지원, 저 혼자 합격'이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없었다. 내가 원해서 들어온 곳이니까.
처음 지원 동기는 가족을 위해서였지만, 이제부터는 기왕 시작한 것 최선을 다해 인천에서 최고의 신설학교 전문 행정실장이 되어보자고 다짐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신설학교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우리 교육청 홈페이지에 『신설학교 업무추진 편람』이라는 좋은 자료가 있어서 출력 후 스프링 제본까지 해서 계속해서 정독했다.
편람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스템 구축 내용 위주로 작성되어 있어, 실제 물품을 어떻게 구입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실무 위주의 내용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계약실무 능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실무 노하우들을 누군가는 정리해둬야 할 텐데...'
그때는 몰랐지만, 이런 생각이 훗날 나만의 실무 매뉴얼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며칠 후 교육청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담당자도 신설학교를 잘 모르겠다면서 겸임 발령이 필요한지 물어왔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소 속학교에 있으면서 아직 생기지도 않은 학교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겸임발령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청에서 바로 겸임발령을 내주어서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때서야 원래 소속 실장님도 "열심히 해보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겸임실장 발령과 더불어 겸임 교장도 발령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장선생님과의 첫 만남
교장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러 겸 인교장 발령교 초등학교를 찾아갔는데, 시골 마을 분위기가 나는 학교라서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교장선생님은 전혀 시골스럽지 않은 분이셨다. 인사를 드리면서 제 경력을 구차하게 말씀드리지 않고, "아직 정식 실장은 처음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실장 경험이 처음인데 신설학교를 할 수가 있겠어요? “
정말 걱정스러운 표정이셨다. 나도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래서 그냥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나중에 신설이 끝난 후 교장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 한 실장하고 또 같이 근무하고 싶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뿌듯한 일이었다.
##업체 선정의 현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은 업체를 선정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신다는 점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첫마디도 "업체를 미리 정하면 안 되고 같이 상의해서 결정하자"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계신 업체가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장선생님께서 마음에 두신 업체들은 이미 신설학교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있는 곳 들이었다. 나 역시 업체를 이리저리 알아보지 않고 빨리 진행할 수 있어서 교장선생님의 업체 선정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며칠 후 겸임교사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교무부장님, 연구부장님, 교사 1명, 영양교사 1명도 나처럼 해든초등학교를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온 분들이었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놀라운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각자의 확실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신설학교를 선택하신 분들이었다. 단순히 발령받아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 아니라, 나처럼 신설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서 직접 지원한 분들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겸임업무 목적은 명확했다. 모든 비품들을 빨리 결정하고 여름방학 기간에 조금이라도 휴가를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쉴 틈 없이 달려 나갔다. 여기서 만난 영양교사는 2년 뒤 나와 함께 2회 연속 같은 신설학교로 공모하게 되는 중요한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혼자서 모든 업무를
겸임근무 기간 동안 다른 신설학교는 업무분장을 통해 각자 할 일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업무분장에 있는 모든 업무를 혼자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본 소속교 업무와 신설학교 겸임 업무까지. 내가 조금이라도 업무를 더 해야만 곧 신설학교로 발령받을 직원분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업무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갔다.
##6월의 강행군
6월 3일, 임시 고유번호증 발급을 위해 교장선생님 신분증을 미리 복사해 뒀고, 임시 행정실에 설치할 컴퓨터와 복합기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다음 날인 6월 4일부터 본격적인 겸임 업무가 시작되었다. 모든 공문은 행정실장인 내가 담당자로 처리하고, 교장과 교감선생님께서 공람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신설학교 개교업무 편람서를 참고하여 세부 업무를 추진해 나갔는데, 공인 관련 업무부터 인증서 신청, 나이스와 에듀파인 개통, 학교회계 금고 계약, 법인카드 신청, 조달 시스템 개통까지 한꺼번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6월 11일에는 조달 수요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물품들을 파악했다. 특히 책걸상을 친환경 제품으로 구매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샘플을 겸임 교장실로 가져와 검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일주일 후인 6월 18일에는 컴퓨터 유지보수 업체를 선정했다. 학내망 설치를 위해 미리 학교 구조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배치도 작업도 병행해야 했다.
6월 21일에는 겸임교장, 겸임교감과 함께 1차 협의회를 가졌다. 가구 업체 선정이 주요 안건이었는데, 기존 개교 학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업체를 결정했다.
6월 24일에는 드디어 책걸상 물품구입 내부결재를 완료했다. 학생용 책상과 걸상 총 630개를 나라장터로 발주하는 순간이었다.
6월 25일, 인천해든초등학교 개교 업무추진단 2차 협의에서는 교사들도 참여했다. 물품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내가 간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기존에 작성해 둔 배치도를 바탕으로 구축 범위를 결정하고, 실별 물품과 소모품 수량을 파악했다. 7월 둘째, 셋째 주까지 모든 비품 발주를 목표로 업무를 추진하기로 했다.
6월 28일에는 신설학교 행정직원 2명이 발령 나고, 다음 날인 6월 29일에는 이분들과 함께 인천은 송초등학교에서 신설학교 행정직원 연수를 받았다.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이었지만, 조금씩 체계가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신설학교의 현실
검단신도시에는 매년 신설학교들이 계속 개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옆 신설학교 빈 교실을 활용하여 겸임사무실을 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해든초에 근무하면서 2개 학교에 임시사무실을 제공해 드렸다. 그런데 내가 공모한 학교는 인천검단신도시 첫 개교학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겸임교장선생님 학교에서 임시사무실을 꾸리게 되었다. 회의용 탁자 몇 개를 연결하고 컴퓨터, 프린터만 구축한 상황이었다. 아직 예산이 교부 전이라 컴퓨터 및 복사기는 구두 계약을 통해 사전에 구입하고, 구입비용은 7월 이후 지급하기로 협의했다. 해든초등학교 임시사무실로 발령받은 2명의 여 주무관님들은 인사 발령 소식에 많이 울었다고 하며,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신설학교를 보내나" 한참을 한탄했다고 한다. 신설학교는 이런 곳이다.
그렇지만 업무 분장 결과 신설업무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좋아해 보이는 눈치였다. 두 분은 일상적인 지출, 물품 업무를 담당하게 했고, 신설에 대한 모든 업무는 내가 담당했다.
##현장과의 거리
다른 건 크게 불편한 사항은 없었지만 현장과의 거리가 30분 정도 떨어져 있어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공사 현장은 이틀에 한 번씩 가는 것으로 했다. 큰 골조는 설계대로 하지만 벽지 색깔, 바닥 장판, 펜스 모양, 학교문, 학교 명패, 바닥 그레이팅, 방송설비 위치, 싱크대 설치 장소, 놀이시설 등 선택해야 할 사항이 생기면 교장선생님과 현장에서 협의 후 결정했다.
##첫 공사 현장 방문
안전모를 쓰고 첫 공사 현장을 방문했을 때, 층별로 교실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이 저곳 같고, 공사장 먼지만 자욱해서 무엇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현장을 자주 방문하더라도 "아, 오늘은 땅을 파는구나", "오늘은 바닥 대리석을 설치하네!" 정도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정말 숨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평소 현장을 드나들면서 건축소장님과 시공사 담당자가 말다툼하는 걸 종종 지켜보게 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공사 담당자에게 나는 인사를 잘하고 다녔다. 그 담당자도 내게 인사하더니 학교 혁신공간 인테리어를 맡고 있는 대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인천해든초는 설계대로 진행되다가 준공 한 달 전 갑자기 혁신공간을 추가하라는 오더가 내려와, 시공사도 난감한 상황에서 인테리어 업체에게 다시 재하청을 준 상황이었다. 이 문제로 항상 다툼이 잦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