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4. 좌충우돌 공사 현장

by 한승재

##늪에 빠진 공사 일정


"혁신공간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책을 읽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왜 하필 두 곳의 신설학교 중 해든초등학교만 이 실험의 무대가 되어야 했을까? 운명은 때로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혁신공간 공사는 마치 늪과 같았다. 개교일이 다가와도 끝나지 않아 개교를 해야 하는 9월까지 질질 끌렸고, 모든 관계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혁신공간 시공업체 대표님과 쌓아온 신뢰였다. 학기 중 공사라는 비상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마찰 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늦어도 괜찮으니, 하자만은 발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부탁뿐이었다. 과연 이게 협상인가, 굴복인가?


##예상치 못한 내부고발자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항상 학교를 올 때마다 대표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고 인사를 드리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수확을 얻게 되었다. 물론 건축소장님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말이다! 우연히, 혁신공간 시공업체 대표에게 던진 가벼운 질문 하나가 모든 걸 바꿨다. "학교가 워낙 커서 전체적인 파악이 어려운데, 혁신공간 외 학교 건축 시공상 문제점은 없을까요?"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동안 원청업체에 대해 쌓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설계상 하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진정한 협력자를 만난 순간이었다. 공사가 한창인 혁신공간. 아름다운 설계 뒤에 숨겨진 관리의 함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설계의 치명적 결함


시공상 문제점에 대한 위한 공방이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점들을 하나씩 기록하면서 깨달은 건, 시공업체만을 탓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단지 도면대로 성실히 일했을 뿐이다. "우리는 설계대로 했습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방어막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교육시설과에 항의하기 전, 건축 총괄 감독관과(건축담당주무관)과 먼저 시공상 문제사항에 대화부터 시작했다. 경험이 알려주는 순서였다. 성급한 공문은 분노만 사고, 대화는 이해를 만든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군요. 팀장님과 협의해 보고, 건축소장님께도 문의해 보겠습니다." 예상보다 수월한 반응이었다.

"관련 내용은 공문으로도 정식 요청드리겠습니다."

쐐기를 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장선생님의 격려가 이어졌다. 비록 내가 발견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설계 결함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디자인과 현실 사이의 깊은 골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자'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설계대로 시공했으니 기술적으론 문제없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혁신공간은 오직 시각적 아름다움만 추구했다. 3층부터 5층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계단식 구조, 눈을 사로잡는 웅장한 공간감. 하지만 그 아름다운 설계 속에 관리의 악몽이 숨어있었다.

5층 천장의 전기·소방·통신시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3층에서 5층까지 비계를 설치해야만 접근 가능한 구조였다. 일 년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점검, 수시로 교체해야 하는 감지기, 예고 없이 고장 나는 각종 설비들...

건축소장과 현장을 돌며 슬쩍 물었다.

"이 부분은 향후 어떻게 관리하시겠어요?"

"글쎄요... 걱정되긴 하지만 설계대로 시공하고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예측 가능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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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워크 설치 전후 사진



답은 하나였다. 스카이워크 설치.

왼쪽 벽 인테리어 공사를 즉시 중단시키고, 교육청과 시공업체에 강력히 요구했다. "설치되지 않으면 학교관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협상이란 때로 이런 각오를 요구한다. 다행히 타이밍이 완벽했다. 인테리어 마감 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마감 후였다면? 용접 불꽃이 벽면을 훼손했을 것이고, 스카이워크 설치는 영원히 꿈으로 남았을 것이다.


##시간과의 마지막 승부


해든초의 운명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반이 온통 암반이어서 기초공사부터 지연됐고, 전체 일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개교추진단장이(서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얼굴이 어두워졌다.

"옆 학교는 다 마무리되어 가는데, 여긴 왜 이 모양입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내 속도 타들어갔다. 교육감 보고회를 앞두고 학교가 여전히 공사판이라니.

설상가상으로 스카이워크 공사 때문에 혁신공간 마감은 더욱 늦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의 편의보다 미래의 안전이 중요했으니까.


##기적 같은 밤


교육감 보고회 전날 밤. 3층 시청각실에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후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청소를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마이크 점검과 회의장 정리가 이어졌다. 당일 아침까지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사히 보고회 완료!


현장보고회.png 전날 밤까지 이어진 작업의 결실 현장보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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