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5. 참기름의 마법

by 한승재

## 모든 것이 내 어깨에


"시작도 '인사' 끝도 '인사' 안 되는 일 없습니다." (만화책 '미생' 중에서)

공사 현장은 작은 생태계와 같았다. 공정별 대표님과 소장님들이 상주하며, 매일 자체 협의를 하고 진행사업을 공유했다. 학교 건설의 핵심 순서는 명확했다: 건축, 설비, 소방, 전기, 이 분들이 거의 모든 공정의 심장부였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진짜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새로 짓는 것보다 향후 관리와 유지보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시공업체와의 유대관계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처럼 "빨리 와서 고쳐라"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던 시대는 지났다. 근래 개교한 신설학교들에서는 하자보수를 요청해도 업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곳이 많다고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설학교 임시사무실에서 맞이한 첫 명절. 말이 명절이지, 차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전화벨이 끊이지 않았다. 각 시공업체는 물론 관급자재 업체까지, 모든 사람이 나에게 모든 걸 물어봤다. 그때 깨달았다.

'아, 교육시설과는 뼈대만! 알맹이는 모두 것은 행정실장 책임이구나!'

나도 잘 모르는데 말이다!


심지어 동기부여와 성취감이 최고 수준인 영양교사마저 나에게 전화를 자주 했다. 급식실 이런저런 부분 때문에 진행이 힘들다고 하면, 내가 해당 시공업체 소장님들에게 부탁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 영양교사는 정말 중요한 사항만 전화하고, 그 외는 모든 걸 자체 해결해 주셨다. 지구상 모든 영양교사 중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항상 건축도면을 들고 다니며, 설비와 전기까지 모두 총괄하여 진행할 정도였다. 나는 업체 전문직원이 파견 나온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특히 이분은 취미가 산악 마라토너여서 해외 대회도 본인 경비로 참가하시는 어마무시한 분이셨다. 훗날 다음 신설학교에도 함께 공모하여 근무하게 되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 작은 투자, 큰 마법


명절 동안 장모님께 부탁드렸다.

"좋은 참깨를 구해서 참기름 4병 정도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인천으로 복귀한 후, 4병을 예쁘게 포장하여 건축 소장님께 선물로 드리기 위함이다. 명절이 끝난 후, 현장사무실로 찾아가 소장님께 드리니,

"뭐냐"라고 물으시기에, 거짓말을 조금 보탰다.

"장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참깨로 짠 참기름입니다. 선물로 드릴 테니 가족들과 함께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장님이 너무나 감동받으셨는지 벌떡 일어서시더니,

"이 귀한 걸 제가 받아도 되나요?" 물어보신다.

"소장님은 우리 학교에 정말 귀하신 분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책임져주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 이후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시공상 변경하거나 추가해야 할 부분이 생기면, 소장님께 부탁드리기만 하면 되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실장님이 말씀하시니까 특별히 해드립니다."

매번 부탁할 때마다 하신 말씀이었다. 그 '매번'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했다는 게 포인트였다.


##참기름의 힘은 상당히 오래갔다.


참기름을 짤 때 장모님께 20만 원 정도를 드린 기억이 난다. 물론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미리 마음을 써두면 나중에 혹시 모를 문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질 수 있고, 그때마다 시공사와 신경전을 벌이며 스트레스받느니, 지금 미리 관계를 좋게 만들어두자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겼을 때, 이런 작은 배려들이 큰 도움이 되곤 했다. 공사가 학교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단순히 계약서, 설계도면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배려가 있어야 진짜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만 원으로 몇 달간의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물을 주고도 얻는 게 없다면 허탈했겠지만, 귀한 참기름의 힘은 그 무엇도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언제라도 시골의 귀한 참기름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설비소장님과의 지혜로운 타협


건축 다음으로 중요한 건 설비였다. 교내 누수의 대부분은 설비와 관련되어 있었다. 배관에서 물이 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과학실에 비상샤워기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센스 없게도 과학실 상단에 설치되어 교사 업무 공간이 부족했다. 이전 설치가 가능한지 여쭤보았다.

며칠을 고민하시더니, 이전 설치를 하려면 해체 비용이 수반되어 돈이 많이 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교와 협의 없이 설치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할 이야기가 있었지만, 순간 판단했다.

'중요하지 않은 건 하나를 버리고, 나중에 부탁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걸 걸고 푸시하자.'

"비용이 많이 든다면 괜찮습니다. 그냥 한 번 써보겠습니다."

너무나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셨다.


얼마나 돈이 드는지 모르지만, 공정별 핵심 이익 발생 구간은 비용 절감이다. 조그마한 것일지라도 무리하게 업체에게 요구하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는? 향후 설비 대표님은 정말 고마운 분 중 한분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전화 한 통만 하면 본인이 직접 달려와서 A/S를 해주시는 것이다. 작은 배려가 만들어낸 신뢰 관계였다.

심지어 내가 인사발령으로 옆 신설학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사까지 하러 와주셨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 또한 너무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정말 나란 사람 대단하지?


## 전기소장님과의 특별한 관계


설비 다음으로 중요한 게 전기 시공업체였다. 전기 시공업체 대표는 상주하지 않고, 인상 좋은 소장님만 항상 현장에 있었다. 당시 누가 소장이고 대표인지 몰라서, 항상 소장님에게 "대표님! 대표님!" 하고 말씀드리며 부탁드렸다. 본인도 너무 민망하신지 말씀하셨다.

"실장님, 저 대표 아닙니다. 현장 소장입니다."

그렇지만 내 답변은 확고했다.

"저에게는 항상 같이 일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소장님이 대표님입니다."

어깨가 으쓱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 파트너십의 철학


이 외에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시공업체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견지한 원칙이 있었다. 학교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 주었다.

특히 시범급식 기간 2일 동안, 우리 학교를 위해 고생해 준 모든 시공단 대표 및 직원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해 드렸다. 교장선생님이 첫 번째가 아닌 그분들이 먼저 식사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그리고 옆에서 잊지 않고 인사했다.

"그동안 학교를 위해 공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 넓은 급식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참기름 4병으로 시작된 작은 마법이 이런 아름다운 공간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6편_compressed.jpg 모든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완성된 급식실. 오렌지색 의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작품 같다




이전 05화Phase 4. 좌충우돌 공사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