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

박여범 시인

by 박여범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


박여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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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대학교 전업강사 시절의 아픈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공과대학 7호관에서 강의에 열중이던 나에게 애처롭게 울어대던 친구가 있었다. 바로 ‘삐삐’(무선호출기)라 불리던 그 기계음이 나를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3시간 수업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했다. ‘8282’(빨리빨리)가 얼마나 많이 적혀 있던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고생만 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한 변변한 효도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 버리셨다. 그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어, 사진을 보며 아픔을 대신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계기가 되어 다시 한번 읽게 된 책이 있다. 지난 1주일 동안 가방에 넣고 학교를 오가며 읽어 내려간 책을 공부방 책상 위에 꺼내 놓는다. 구효서 외 17명 ‘나에게 남겨진 生이 3일밖에 없다면’이다.

이 책은 소설가, 시인, 평론가 그 밖의 문화 인사들-구효서(소설가), 김영수(출판 평론가), 신현림(시인, 사진작가), 장석주(시인, 문학 평론가) 외-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각자의 생각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쓰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슬그머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행복이 먼 곳에 있지도, 미래에 있지도 않다. 그래서 죽음을 가까이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란 ‘나 아닌’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나 아닌’ 것들의 변화에 따라 ‘나’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무정체의 정체’라고 여기고 있던 안중익 씨였다. 그러니 거기엔 생성도 소멸도 없는 것이라고, 그것은 관념일 뿐이라고, 그럼 나는 어째서 오늘 시제를 지내는 것일까. 안중익 씨는 속으로 모르겠다, 중얼거렸다. 다만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지는 오늘을, 오늘로써 살뿐.……”(구효서, ‘오늘은 오늘 아닌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위의 책, 18쪽.)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오늘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삶은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가 힘겹다. ‘오늘은 오늘 아닌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제목처럼, 어느 특정 다수에게 3일의 生이 주어진다면 어디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자아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래도 감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논리적인 인간에 가까운 것 같다. 남겨진 시간이 사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하거나 눈물이 핑 돌기는커녕, 머릿속에서 경우의 수를 보여주는 수형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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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만 사흘이 남겨지는 경우일까? 그렇다면 그 사흘은 내가 팔팔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말기 암 환자처럼 병원 침실에 누워 있는 상태일까?


혹시 내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 가족 모두에게 사흘이 주어지는 경우일까? 더 나아가 지구 전체가 사흘 안에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기간은 영화 아마겟돈이나 딤임펙트처럼 지구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종말을 모르고 평온하게 살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김지룡, ‘마지막 남은 시간’, 위의 책, 27~28쪽.)


‘마지막 남은 시간’이 주어지면, 나 자신도 이 시간의 사용 초점을 누구에게 맞추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단 3일이라면,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활용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시간을 3 등분하여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결론은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 해 오던 그대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사흘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두고 죽음을 향해 달리기라도 하듯 빠르게 지나갈 그 순간순간이다.……(중략)……내가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인 최초의 사건은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태산과 같은 존재였던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을 때였다.


5년 전 정초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물론 연세가 드시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막상 내게 현실로 다가오자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받는 것처럼 당황스러웠다.”(김영수, ‘진심으로 두려운 것은’, 위의 책, 37~38쪽.)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준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누구나 일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소중한 ‘시간’의 흐름은 어찌 우리가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순간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라, 다 그만두자. 나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보고 싶은 사람들 한 번 더 보고 죽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산 좋고 물 좋은 곳, 꼭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 많지만, 어느 세월에 거길 다 둘러보나?……(중략)……다 그만두자. 그냥 떠나자. 무조건 떠나자.……(중략)……가서 그냥 혼자 시간을 지내자. 지나온 삶을 돌아보자. 혹시 생각나는 구절이 있으면 종이에 끄적거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조용히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자.”(정관용, ‘예정된 시간, 마지막 사흘’, 위의 책,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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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과 공생을 하며 살아간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무계획적’으로,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내일은 없다’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나마의 시간들도 헛되게 ‘공중분해’되지 않을까. 적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주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인생의 막바지에 자신의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2002년 3월, 대학교 전업강사 시절의 공과대학 7호관 강의실, ‘삐삐’(무선호출기)라 불리던 그 기계음, ‘8282’(빨리빨리),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읽어 보게 된 책, ‘나에게 남겨진 生이 3일밖에 없다면’을 통해 시간의 소중함과 평상시 관심의 중요한 대상에서 밀려 있는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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