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츠비키의 발견과 베라 루빈의 검증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암흑물질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물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건축가이자, 생명의 역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암흑물질과 중력의 관계, 초기 우주에서의 결정적 역할,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의 "물리학 여신" 리사 랜들이 제시한 놀라운 가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암흑물질의 가장 독특한 특성은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 중 중력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과는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력장을 만들어내고 중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츠비키와 루빈이 각각 은하단과 은하에서 "보이지 않는 질량"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별이나 가스처럼 빛을 내거나 흡수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중력 효과는 명확하게 관측됩니다.
암흑물질은 초기 우주에서 중력의 영향으로 거대한 필라멘트들로 점차 모여들며, 복사압에 의해 붕괴가 느려지지 않기 때문에 일반 물질보다 빠르게 붕괴합니다. 이는 우주 구조 형성에서 암흑물질이 "선발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 물질은 광자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 쉽게 뭉칠 수 없었지만, 암흑물질은 그런 제약 없이 먼저 중력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리온은 광자와 분리된 후 충분히 성장한 암흑물질의 밀도요동에 이끌려 밀도요동이 빠르게 성장해서 따라잡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우주의 평균 밀도는 1m³당 양성자 6개 정도로 극도로 희박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밀도는 1g/cm³ 정도로, 우주 평균보다 약 10²⁹배나 높습니다. 이는 암흑물질이 만든 중력 구조 덕분에 가능했던 놀라운 집중 현상입니다.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시점을 알아야 합니다:
재결합 시기 (빅뱅 후 38만 년) 온도가 충분히 낮아져 원자핵 주위를 정처없이 떠돌던 전자가 원자핵과 결합하여 원자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광자가 전자에 계속 부딪혀 우주가 안개처럼 뿌옇고 불투명했지만, 원자 형성 이후 광자가 직진할 수 있게 되면서 우주가 투명해졌습니다.
우주의 암흑시대 재결합 이후 최초의 별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기를 우주의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도 암흑물질은 계속해서 중력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암흑물질은 처음에 은하들이 형성되고 또한 나중 단계에서는 은하단들이 형성되는 상향식 구조의 형성을 이끕니다. 이는 작은 구조부터 시작해서 점점 큰 구조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암흑물질이 일반 물질보다 먼저 구조를 만들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자와의 결합 없음: 일반 물질은 초기 우주에서 광자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 복사압 때문에 쉽게 뭉칠 수 없었습니다.
중력만의 상호작용: 암흑물질은 오직 중력을 통해서만 상호작용하므로 복사압의 방해 없이 중력 수축이 가능했습니다.
압도적인 질량: ΛCDM 모형에 따르면, 물질 지배 시기의 우주 물질은 약 84.5%가 차가운 암흑물질이고 15.5%가 "일반" 물질입니다.
암흑물질이 없는 우주를 상상해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만약 우주에 물질이 바리온만 있었다면 밀도요동의 성장이 너무 늦게 시작돼 현재 관찰되는 정도로 구조물을 만들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암흑물질 없이는 현재와 같은 은하, 별, 그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균일하고 밋밋한 상태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리사 랜들(Lisa Randall, 1962-)은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물리학계의 혁명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녀의 재능은 일찍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놀라운 성취 리사 랜들은 명문 공립 영재학교인 스타이브센트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흥미롭게도 동창생 중에는 후에 『우아한 우주』로 유명해진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이 있었습니다. 18세의 나이로 1980년 웨스팅하우스 과학 재능 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지도교수와의 흥미로운 갈등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그녀의 지도교수 하워드 조자이(Howard Georgi)에게는 특이한 금기사항이 있었습니다. 조자이는 자신의 학생들이 'S' 자로 시작하는 연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나 초대칭(Supersymmetry)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혐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사 랜들은 지도교수 몰래 이런 'S' 자로 시작하는 이론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조자이의 연구가 이런 이론들에 큰 영향을 끼쳤고, 현재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는 초끈 이론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리사 랜들의 성취는 과학적 발견뿐만 아니라 성평등 측면에서도 역사적입니다.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처음 종신교원이 된 여성이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교원 된 여성 이론물리학자였습니다.
정치계의 찬사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1세기는 리사 랜들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했으며,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리사 랜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1999년 라만 선드럼과 함께 발표한 랜들-선드럼(RS) 이론은 여분 차원에 관한 혁신적인 모델로 물리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2004년까지 5년간 가장 자주 인용된 이론물리학자가 되었습니다.
2015년 리사 랜들이 출간한 『암흑물질과 공룡(Dark Matter and the Dinosaurs)』은 과학계에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 은하 원반면은 이중으로 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암흑물질로 구성돼 있으며, 태양계가 은하계를 공전하며 이중 원반을 3200만년 정도 주기로 지나갈 때마다 암흑물질의 영향으로 태양계가 교란된다는 것입니다.
메커니즘의 세부 과정
태양계가 은하 원반을 주기적으로 관통합니다
암흑물질 디스크의 중력이 태양계 외곽의 오르트 구름(Oort Cloud)을 교란합니다
이로 인해 혜성들이 원래 궤도에서 이탈하여 태양계 내부로 날아듭니다
6600만 년 전, 그 중 하나가 지구와 충돌하여 공룡을 멸종시켰습니다
관측적 증거들 그 결과 3000만년에서 3500만년 주기로 지구에 대형 유성체 충돌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이 6600만년 전의 공룡 멸종을 야기한 칙술루브 충돌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구 역사상 대멸종 사건들이 어느 정도 주기성을 보인다는 관찰이 이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가설의 장점 특히 암흑물질 중에는 중력 상호 작용만 하는 것도 있지만 소수이기는 해도 중력이나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힘이 아니라 모종의 다른 힘으로 상호작용하는 암흑물질 종류가 있다는 가설입니다. 랜들은 암흑물질들 사이에서만 작용하는 '제5의 힘'(암흑빛, dark light)의 존재까지 제시했습니다.
과학적 한계 아직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도,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가 확립된 개념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 그리고 종종 정당한 — 비판이 세를 얻습니다. 랜들 자신도 이를 인정하며 과학적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랜들 교수는 "사실 이 책의 부제인 '우주의 상호 연계성'이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그녀의 가설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의 겸손한 자세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소수의 과학자들은 그냥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애씁니다. 자신이 볼 때 좀 더 깔끔하거나 경제적인 어떤 이론을 선호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일의 최종 심판자인 데이터가 가능성의 문을 열거나 닫기 전에는 무엇이 옳다고 결정하지 않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암흑물질을 직접 탐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하 실험실에서의 직접 탐지, 우주에서의 간접 탐지, 가속기에서의 생성 실험 등 다각도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암흑물질 가설에 도전하는 이론들도 계속 제시되고 있습니다. 수정 뉴턴 역학(MOND) 이론은 중력 법칙 자체를 수정하여 암흑물질 없이도 관측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최근 세종대 채규현 교수 등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는 150개 은하에서 외부 중력장 효과를 발견하여 MOND 이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암흑물질 가설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프리츠 츠비키의 유명한 독설 "spherical bastards"는 물리학계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각도에서 봐도 개자식들"이라는 뜻으로, 그가 동료 천문학자들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괴팍한 성격이었지만 그의 통찰력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합니다.
베라 루빈이 생후 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학회에 참석했던 일화나, 여성 화장실이 없는 관측소에서 직접 "여성 화장실"이라고 써 붙였던 이야기는 과학계의 성차별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리사 랜들 역시 지도교수의 연구 금지령을 몰래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믿는 연구를 계속한 것은 과학자의 열정과 신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브라이언 그린과 리사 랜들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사실이나, 두 사람 모두 물리학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흥미로운 일치입니다. 같은 영재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학생들이 각각 끈 이론과 여분 차원 이론의 대가가 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주 구조의 건축가이자, 우리 존재의 전제조건이며, 어쩌면 지구 생명사의 편집자일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프리츠 츠비키가 "dunkle Materie"라고 명명한 이 신비로운 물질은 베라 루빈의 정밀한 관측을 통해 과학의 주류로 편입되었고, 리사 랜들 같은 현대 물리학자들에 의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삶과 연결될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주 질량의 27%를 차지하면서도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암흑물질. 그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는 날, 우리는 우주와 우리 자신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과학자들의 탐구는 계속될 것이며, 츠비키의 직관, 루빈의 정밀함, 랜들의 상상력을 계승한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이 이 위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 역설적 진실이야말로,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깨달음 중 하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