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만 따뜻해 #1
골목 끝 헌책방 옆에 이상한 가게가 생긴 건 지난주 화요일이었다. 간판도 없고 쇼윈도에는 먼지만 쌓여있는데, 문에는 '잃어버린 시간 삽니다'라고 손글씨로 쓰여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누가 장난으로 써놓은 거겠거니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문구는 그대로였고, 어느 날 퇴근길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밀었다.
종이 딸랑거리며 울렸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선반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녹슨 시계, 바래진 사진, 찢어진 달력...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카운터 뒤에 앉아있었다. 그는 내 나이를 물었다. "서른여섯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낡은 장부를 꺼냈다. 안경을 고쳐 쓰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의 총량은 4년 7개월 23일입니다. 주로 스마트폰 보느라 흘려보낸 시간이네요. 의미 없는 스크롤이 2년 3개월, 보지도 않을 영상 시청이 1년 8개월, SNS에서 남의 인생 구경하기 11개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설마 제 폰을 해킹이라도..." "여기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인은 장부의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 정말로 내 이름과 함께 세세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허비했는지.
"이게... 대체 뭔가요?" "잃어버린 시간의 기록입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 여기 있어요. 원하시면 되살릴 수 있습니다. 대신 미래의 시간을 담보로 맡기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2년치 시간을 되돌리고 싶으시면, 미래의 2년을 저당 잡히는 겁니다." "미래를 저당 잡힌다는 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수명에서 2년이 차감됩니다."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4년 7개월.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닌 시간보다 길었다. 그 시간이 있었다면 뭘 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었을까, 여행을 갔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해보고 올게요." 나는 거절하고 나왔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그 자리에 가보니 가게는 사라지고 하얀 벽만 남아있었다. 벽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번엔 좀 더 신중하게 시간을 쓰세요.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스마트폰을 멀리했다. 대신 오래전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을 펼쳤다. 1페이지를 넘기는데 이상하게 뿌듯했다. 시간을 되찾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