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찾는 자기 사랑
요즘 부쩍 입맛이 없다며 세상천지 먹고 싶은 게 없다는 지인을 만났다. 우울감에 빠진 그녀는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며 고개를 떨궜다. 평소 밝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채, 지친 얼굴로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릴 적, 늘 겸손하라는 부모님의 훈육 속에서 자라왔다고 하였다. 겸손은 분명히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표현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결국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억압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고도 했다.
우리는 종종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自己愛)를 부정적으로만 본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시시즘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과도한 자존감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자기애는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요소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태도는 우리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타인을 이해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겸손의 가치로 인해 자신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강요받아온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애로 타인뿐만 아니라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태도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시스(Narcissus)는 맑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국 연못 속으로 빠져버렸다. 이 이야기는 흔히 자기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사용되지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나르시스가 연못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그 순간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차린 첫 번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문제는 그 사랑이 오로지 자신만을 향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태도가 중요한 동시에 그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르시시즘적인 태도를 내 삶에서도 찾아보았다. 매일 글을 쓰고, 그 글을 브런치에 올리며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이 행위가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자기 노출처럼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연결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였다. 글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며,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위로가 되는 순간 글쓰기의 진정한 힘을 느꼈다.
매일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는 행위는 단순한 자기 노출이 아니다. 글이라는 연못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 타인과 연결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느끼는 그 존재감은 굉장한 선물이다. 이 과정은 나르시시즘의 긍정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도 건강한 자기애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여겨진다. 자기애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를 이루게 한다. 글쓰기는 이 자기애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도구다. 글을 쓰며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재발견한다.
지인에게 글쓰기를 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쓰기는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며,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글이 세상 속에서 타인과 연결될 때, 우리는 더욱 큰 행복을 느낀다. 나르시시즘은 더 이상 이기적인 고립이 아니라 성장의 통로가 된다.
결국, 나르시시즘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글쓰기는 나르시시즘을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키는 가장 창조적인 여정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그 사랑을 세상과 연결시킬 때, 나르시시즘은 더 이상 이기적 고립이 아닌 삶의 가치를 높이는 빛나는 도구가 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사랑할 자격이 있으며, 그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