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방학은 짧다.
본과 3학년 겨울 방학은 4주인데 일반 대학들 방학이 보통 2달이 조금 넘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4주 중에서 2주는 선택 실습을 해야 한다.
2주 동안 실습을 해보고 싶은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것인데 보통 2 부류로 나눠진다.
첫 번째는 선배들에게 물어봐서 '어디 실습을 갔는데 출석도 안 하고 2주 동안 그냥 놀게 해 주더라'를 듣고 수소문해서 그런 병원들을 찾아가는 경우다.
두 번째는 어차피 다른 병원에 가볼 기회가 많지도 않은데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외국에 있는 의대에 미리 연락을 해서 준비를 차근차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국내 대학을 알아보았다.
대기번호를 받고 같이 들어온 친구 3명과 함께 실습을 하기로 하였다.
각자 실습 돌고 싶은 과 3개를 정해서 공통된 과로 정하기로 하였다.
다양한 곳이 나왔지만 모두가 적은 곳은 내과와 이비인후과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배운 것이 내과이다 보니 관심이 갔을 것이고
이비인후과는 아직 배우지는 않았지만 수술도 하고 개원했을 때도 인기가 많다 보니 관심이 갔던 것이다.
내과는 1년 동안 실습을 돌았기에 이비인후과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이제 어느 병원을 갈지가 고민이었다.
아무래도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처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가는 것이 좋을 텐데 문제는 친구들 사는 지역이 전부 다르다는 거였다.
그래서 모두가 환승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올 수 있는 서울성모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교수님들 연락처를 확인하였고 구구절절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요약하자면 '이비인후과를 꿈꾸고 의대를 들어왔지만 지방대이다 보니 심각한 질환이면 환자들이 서울로 전부 올라가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아직 학생 신분이지만 미리 체험하면서 꿈을 더 키우고 싶다'였다. 그리고 선택 실습을 환영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실습은 본과 3학년 때와 같이 교수님들과 함께 외래, 수술을 참관하는 구조였다. 아직 이비인후과에 대해 강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갖고 연락을 드렸고 실습의 기회를 주신만큼 미리 교과서를 짧게라고 읽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아직 배우지도 않았음에도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교수님들이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얼마나 이비인후과 질환에 대해 전체적으로 아는 게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점심을 사주면서 궁금한 점이 없냐고 물었고 "이비인후과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은 어떤 환자들인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비인후과는 코피 말고는 응급실 환자 없을 거 같죠? 나중에 봐요 엄청 다양해요."라고 했다.
매일 혼나는 레지던트 1년 차 선생님을 볼 때마다 저 멀리서 괜히 불편해졌던 거 외에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두경부외과 교수님이 해외연수를 떠나서 귀와 코 수술만 참여했다는 것이다. 1달 동안 교수님들께서 많이 챙겨주고 해서 이비인후과에 대한 좋은 추억이 생겼다.
의미 있는 겨울 방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