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4학년은 의대 생활을 꽃이다.
1년에 47학점을 듣다 36학점을 듣는 것만으로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데 듣는 과목의 부담감도 감소하게 된다.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의사국가고시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메이저(major)라 불리는 내과, 외과와 같은 핵심 과목에서 벗어나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는 피부과, 이비인후과와 같은 마이너(minor) 과목을 공부하게 된다. 마이너 과목을 전공하게 될 학생의 숫자가 워낙 적다 보니 (내과 의사 수는 많지만 비뇨기과, 영상의학과, 피부과 의사 수가 적다는 걸 생각해보면 된다.) 교수님들도 시험에 자주 나오는 부분 위주로 설명만 하고 끝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부담감이 적고 실습도 볼 여유롭게 '우리 과는 이런 걸 주로 한다.'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시험도 변별력이 떨어지게 되고 (변명으로 봐도 좋다.) 학점도 떨어지게 되었다. 4.3만 점에 4.18
본과 4학년까지 끝난 후 의사국가고시 시험을 치르게 되고 합격을 하면 의사가 된다.
이후 과정은 전적으로 자유다.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아서 전문의가 될 수도 있고, 개원을 할 수도 있고, 의학전문 기자, 제약회사 취직 등 다양한 길이 열려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의사의 79%가 전문의 일정도로 비율이 높고,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않으면 "그럼 너는 뭐하게?"라는 반응이 나온다.
의사 말고 다른 할 일이 없던 나는 당연히 전문의 과정을 밟아야 했는데 문제는 어느 병원, 어느 과를 지원하냐였다.
과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 우선 나는 수술은 재미가 없었다. 수술방 특유의 긴장감도 싫었고 오래 서서 수술을 한다는 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배우기도 했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내과, 마이너 과목에서 인기를 끄는 피부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가 관심이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형외과와 이비인후과가 얼마나 수술을 하는지 몰랐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어느 병원을 가고 싶은지는 따로 없었으나 유명 대학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가장 대표적인 큰 병원은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이 있는데 업무야 다 같이 힘드니까 원하는 과를 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지원해야 했다.
피부과는 워낙 인기가 많고 큰 대학병원이어도 1년에 1명 정도만 뽑으니 내가 아무리 내신이 좋아도 서울 유명 대학에서 내신이 좋은 사람이 지원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합격을 위해서는 내가 나온 강원도 대학병원에 지원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가고 싶으니 패스.
정형외과는 '개원의 왕자'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도 많고, 개원을 하면 돈벌이도 짭짤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최소한 그때는) 분위기가 좋지 못하고 폭력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맞으면서까지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패스.
내과는 레지던트를 많이 뽑는 만큼 어느 병원이나 합격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비인후과는 수술도 하고 외래도 많이 보고 개원도 가능하니 좋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과와 이비인후과를 관심 과로 정했다.
본과 4학년 2학기는 더더욱 꽃을 피우게 되는데 특히 내가 나온 학교는 수업과 실습이 있었던 1학기와 다르게 2학기는 수업도 실습도 모두 없었다.
그저 1주일에 1번가량 그동안 배운 과목들을 기초로 필기시험을 쳐서 성적에 따라 학점이 나오는 과목들 위주였다.
이렇다 보니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아돌았고 이 기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각자의 선택이었다.
여행을 다니는 친구, 연애하는 친구, 공부하는 친구 등등
참고로 대학병원을 지원할 때는 학교 내신과 의사국가고시 성적이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워낙 내신 점수가 좋았기에 국가고시는 어느 정도 이상만 나오면 충분히 유명 대학에도 붙을 수 있었다.
인턴 레지던트를 지원할 때는 학교 내신과 인턴 성적이 들어간다. 반대로 말하면 국가고시 점수는 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 비중을 낮추고 개인 시간을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학업에 집중한다고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기에 평일 아침 6시~8시까지 운동을 하고,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도 먹고, 영화도 많이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루 7시간은 공부하면서 조금 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주말은 서울로 올라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한 학기를 보냈다.
이렇게 나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본과 4학년 2학기에 기출문제집을 4번 완독 하였고 (남들은 몇 번 봤는지 모르겠는데 보통 2번 정도 아닐까!?)
국가고시 시험도 잘 치르게 되어 개인 최고 성적을 세우고 나는 의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