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2)

장편소설

by 김기현

2

나는 퇴근 후에 전투복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건조대에 걸려 있는 전투복을 다림질했다. 요 며칠간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장례식장에 있었기에 달리기도 하지 못했고 맥주도 마시지 못했다. 나는 다림질을 마치고서, 나이키 반바지에 PCC-772가 새겨진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아트 블래키가 연주한 《Caravan》을 재생했다. 대학생 때 영화 《위플래쉬》를 본 이후로 꾸준히 찾아 듣던 음악인데, 이 음악은 특히 달릴 때 리듬이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나는 들숨과 날숨으로 리듬을 잡으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코와 입으로 두 차례 들이마신 뒤 입으로 길게 내뱉으며, 들숨에 두 걸음, 날숨에 두 걸음을 딛는다. 그러나 달리려고 보니 며칠간 나의 내부 깊은 곳에 달라붙어 나를 죄던 문제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당사자가 문을 닫고 나가버린 상황에서 나 혼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속력을 높일 땐 리듬은 유지한 채 보폭을 넓힌다. 심박수가 안정되고 리듬이 몸에 익기 시작하면 의식은 점차 눈을 감는다. 깊은 바다에 잠겨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때처럼, 오직 나의 호흡 소리만이 나의 귀에 들려온다.

계단을 내려가 호프의 문을 열자, 내게는 늘 비슷하게 들리지만 아마 조금씩 다를 것임이 분명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한 테이블에는 남녀 한 쌍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 보고 앉아 나초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불 앞에서 소시지를 굽던 K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다소 놀라기도 하면서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카운터석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핸드폰을 보니 수영에게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 발인은 잘했어?

― 응, 그렇지만 당장 다음 주에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아.

― 왜?

―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어.

― 복잡한 일이구나.

― 응. 쉬는 날 통화하자.

K는 손님에게 소시지를 내준 후 내게 생맥주를 내려주었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여 고마움을 표하고 맥주를 단번에 절반 가까이 비웠다. 부드럽고 시원한 맥주가 식도를 지나 위에 낙하하여 손끝과 발끝까지 전달되었다.

“호주로 가버린 줄 알았어.” K가 말했다.

“일이 있었어요.”

“어떤?”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병사가 죽었어요. 빈소를 지켜야 했죠.”

“……그랬군.”

K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가 새삼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곧 생맥주를 모두 비우고 생맥주 한 잔과 마카다미아를 부탁했다. 저녁을 먹지 않은 탓에 맥주가 더욱 맛있게 느껴지긴 했지만, 경험에 의하면 배고픔을 진작에 달래지 않으면, 배고픔이 매우 격렬해지고 맥주 따위는 맛이 없어진다.

K는 생맥주를 먼저 주었고, 이내 오렌지를 손질하여 마카다미아와 함께 주었다. 오렌지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제철이라는 개념이 없는 이 오렌지를, 그는 잔뜩 사서 보관해 두었다가 때에 따라 손님에게 서비스로 내어 준다. 마카다미아는 매번 먹을 때마다 놀라울 만큼 고소했고, 오렌지는 달콤하며 과즙이 가득했다. 그는 나와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가 재즈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재즈에 집중할 때면 희미하게 머리를 흔들어 리듬을 맞추는 버릇이 있었다.

“병사가 자살했어요.”

K는 내게 시선을 둔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런 일이 있는 거군. 전역이 다소 미루어진 건가?”

“네. 아마 일주일쯤요. 병사가 죽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전역입니다, 하고 문을 닫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K는 “그렇겠지”하고 읊조렸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쯤 수영의 옆에 있었을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호주에 가서 무슨 일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트에서 물품을 정리하든, 식당에서 설거지하든, 일거리가 없진 않으리라. 어차피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함이고, 하루의 리듬을 잡기 위함이니까. 무슨 일이라도 일단 잡아서 시작한다면, 그다음 스텝을 내밀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살할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자살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분명 자살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인간은 이토록 알 수 없는 건가요?”

나는 맥주 두 잔을 다 비우고서 물었다. K는 곰곰이 생각하며 새로운 생맥주를 받아서는 내게 주었다.

“적어도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역시 그렇겠죠.”

새로운 손님이 오자, K는 그들을 맞이했다. 나는 재즈를 들으면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고소한 마카마디아와 달콤한 오렌지를 먹었다. 그리고 목을 매는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내 무게를 지탱하는 의자를 밀쳐내고 내 목이 내 체중을 다 받아내는 순간에 인간이 느끼는 건 고통일까, 해방감일까? 나는 석 잔째의 맥주를 비운 뒤 계산하고서 집까지 달렸다. 마치 러너스 하이를 느낄 때처럼 몸이 가벼웠다. 나는 집에 도착하여 옷을 벗고 대충 샤워기로 땀을 훑어낸 뒤 양치하고 누웠다. 알코올과 달리기로 인해 맥박이 빨라졌다. 흥분 상태. 그러나 몸은 수면을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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