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3
내가 수영을 알게 된 해, 그러니까 우리가 중학교 삼 학년이었던 해, 그녀는 우리 반의 반장이었다. 그녀는 반에서 이삼 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고,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예컨대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그런 종류의 학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꼭 이상적인 인간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그녀를 동경했다. 나는 어땠던가. 나는 학교 수업은 집중해서 들었지만, 학원에는 다니지 않았고, 시험 일주일 전을 제외하면 방과 후나 주말에는 공부랄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학교 성적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물론 학생에게 하나의 중요한 부분임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주에 다섯 번 예닐곱 시간씩 수업을 듣고 있는데, 그 이상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내게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예컨대 아무리 위대한 스포츠 선수라도 하루 열 시간씩 운동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대신 잠을 충분히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잤고, 흥미에 이끌리는 것들을 만족스럽게 해치웠다. 그해에는 자습 시간이 주어지면 책가방에서 추리소설을 꺼내어 읽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와 요코미조 세이시, 미야베 미유키, 그 외에도 프랑스 등지의 다양한 국적에서 발간한 추리소설을 탐독했다. 물론 그건 그냥 한때의 취미였다. 그 전해에는 축구 게임에 빠져 온종일 축구 생각에 빠져 있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실제 축구에 재미가 들려 공 차는 일에 열중했듯이, 그 한 해에는 추리소설을 읽는 일에 빠졌던 것뿐이다. 그러나 그 한 해에는 분명히 많은 시간을 독서에 쏟았고, 나중에 세어 봤을 때는 팔십 권에 달하는 소설을 읽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수영은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다가와, “그건 어떤 책이야?”하고 다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녀가 내게 숙제나 청소 당번 같은 공적인 영역이 아닌,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 질문해 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갈등의 요점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이야기했지만, 소설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을 조금도 표현할 수 없는, 정말이지 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수준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바뀔 때면, 늘 꼭 내게 다가와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가 물어올 것을 대비해서 늘 근사한 문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그녀가 물어보면 마치 방금 생각해 낸 것처럼 이야기해서 그녀를 놀라게 했다.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짧은 시간이 추리소설 따위를 읽는 일의 오십 배 정도는 될 만큼 기뻤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좌석이 송송 빈 평일 낮의 기차처럼 간헐적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녀가 나와 대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한 학기의 가운데였던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청소 당번이었던 나는, 같이 청소해야 할 친구가 게임 이벤트를 핑계로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혼자서 교실을 청소해야 했다. 나는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적막해진 교실을 천천히 치우고서, 텅 빈 교정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 앞 길목에는 연노란색의 아카시아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었다. 이따금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달콤한 아카시아 향을 잔뜩 물고서 얼굴에 덥석 안겼다. 평화로운 봄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 여학생이 걷고 있었다. 해의 열기가 식어가는 오후 다섯 시 무렵이어서, 골목에는 ―그녀와 나를 제외하면― 한 마리의 고양이만이 달관한 도인과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담장 위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그녀를 계속 모른 체하며 뒤따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소심하게 “저기”하고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멈추어 서서 뒤돌아보았고, 나를 보곤 해사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제야 집에 가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담임선생님이 부탁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나란히 발맞추어 걷게 되었다. 그리고 꽤 진지한 태도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는 곳은 어느 동네인지, 어느 초등학교에 다녔었는지, 학원은 다니는지, 그 나이대 학생들이 나눌 만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버스를 타는 곳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고, 주로 가는 슈퍼마켓도 똑같았다. 우리는 금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대로 버스를 탄다면 고작 이십 분 정도 함께할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에서 어떤 기회는 단 한 번만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같이 집까지 걸어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수영은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좋아”하고 말하며 흔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수영이 그날 나 때문에 학원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학교에서 우리가 사는 동네까지는 무려 육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였다. 우리는 나란히 속도를 맞춰 걸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낌없이 대화를 나눴다. 수영의 작고 나긋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우리는 십수 개의 횡단보도를, 그리고 하나의 육교를 건넜다. 나는 수영이 1남 1녀 중 막내딸이며 꿈이 의사라는 사실을, 좋아하는 음식은 다양해서 무엇 하나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집에 있을 때보다 학교에 있을 때를 더욱 좋아한다는 사실을, 찌는 여름은 견뎌도 살을 에는 겨울은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보다 비가 오는 밤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그날 내게 털어놓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것은 그녀와 함께 사는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며, 오빠 역시 친오빠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그즈음으로부터 일 년 정도 지난 뒤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날의 하교를 같이한 뒤로, 불쑥, 놀라울 정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같이 공부하자는 명분으로 주말마다 빠짐없이 만났는데, 실질적으로 공부한 시간은 사전 속 오자만큼이나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녹음이 울창한 공원을 걸으면서 일광욕을 즐겼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마주 보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그해 여름은 따뜻한 햇볕은 있었어도 더위는 없었고, 땀은 있었어도 불쾌함은 없었다. 하루하루 포근하고 충만했던 그해 여름을 나는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두 장의 달력이 뜯기고 중학생으로서 맞는 마지막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기말고사를 마치자, 학생들 대다수는 어떤 기류에 휩쓸리듯 붕 떠올랐다. 모두가 관대해졌고 무방비해졌다. 농담과 웃음이 잠자리처럼 온종일 교실 안을 날아다녔다. 다만 수영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불안의 그림자를 나는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잠시 후 혼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오늘 집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촉이 지진탐지기만큼이나 예민한 여학생들은 우리의 관계가 특별해졌다는 사실을 벌써 눈치챈 듯 보였다. 수영은 학생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영과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전처럼 집까지 걸어가면 좋았겠지만, 하늘에는 곧 비를 쏟아낼 것 같은 두꺼운 먹구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은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학생들을 긴장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날씨가 어떻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관계에 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망설였다. 예컨대 질문의 형태로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제안의 형태로 말하는 게 좋을지, 그것도 아니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심장이 제멋대로 마구 뛰는 것도 문제였다. 그녀에게 고백하리라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심장이 꼭 갓 잡아 꺼내놓은 물고기처럼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펄떡댔다. 그러한 상태로 망설이고 있는 내게, 수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너에게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주 또렷하게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생동감 있게 빛나고 있었다. 살면서 한 번, 혹은 두 번밖에 보지 못하는 특별한 눈동자였다.
“내가 너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간신히 입을 떼었을 때, 수영은 내가 바보 같다는 듯이 쿡쿡, 웃고는 보속을 높여 내게서 자신을 감췄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이 흩날렸고, 그녀의 머리칼에서 나는 꽃 향을 싣고서 내 코끝에 부딪혔다. 나는 그녀가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좋아”하고 말했다.
나는 수영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예상했던 대로 비가 오는 바람에, 우리는 땀과 빗물에 젖은 채 버스에 올랐다. 미지근한 빗물이 버스 안에 뚝뚝 떨어졌다. 나는 아마 방학이란 게 없었대도 학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등교 거부 운동 같은 것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날로써 새로운 관계를 맺었지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어, 내가 수영보다 한 정거장 먼저 버스에서 내리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와 함께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불안의 그림자가, 그녀를 혼자 두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친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점심은 다른 날 먹는 게 좋겠다고, 죄송하다고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수영에게 오늘 시간을 같이 보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어머니랑 점심 먹는다고 했잖아?”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 외출하시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셔. 아마 지금쯤 창문 앞에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오늘은 배달 음식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실 거야. 그런데 나는 배달 음식이 싫거든. 너는 어때? 학원에 가야 해?”
“아니, 오늘은 가지 않아.”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 때문에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닌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는 금방 그쳤다. 나는 수영과 함께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공원을 걸었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해 우울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비 온 뒤라 흙과 풀 냄새가 대기에 가득했다. 우리는 공원을 거닐며 그것들을 아낌없이 잔뜩 들이마셨다. 나는 그녀에게 방학 동안에는 대체로 무엇을 하고 지낼 예정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글쎄.”하고 답했다.
“원래는 학원에 가게 되어 있었는데, 사정상 학원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아.”
“너는 집에 있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
“맞아”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걷는 공원 앞에는 구립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은 책을 빌려 읽는 곳이지만 그곳에서도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같이 도서관에 다니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마치 학교에 가듯이 아침에 만나 함께 도서관에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는 음료수를 마시며 산책하는 거야.”
수영은 “물론 나는 좋아”하고 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해가 구름 틈을 미끄러져 나올 때처럼 아주 밝은 화색이 번졌다.
“하지만 너는 괜찮겠어? 모처럼 방학인데 말이야.”
나는 나로서도 집에서 뒹구는 것보다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좋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리고 공부하다가 지루하면 소설을 읽으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나의 옆에는 그녀가 앉아 있고, 쉬는 시간에는 그녀와 손을 잡고 공원을 걸을 것이며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면 그녀와 마주하고 앉아 밥을 먹을 것이다. 그보다 완벽한 여름 계획이 있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