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4)

장편소설

by 김기현

4

그날은 오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출근 ―으로 예정된 날― 이었다. 이른 아침,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었다. 아직 여름 해가 온전히 제자리에 들어앉기 이전의 시각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수영에게 아침 인사 메시지를 보낸 뒤, 아침의 남는 시간을 달리는 데 사용할 것으로 결정하고 무작정 옷을 입고 달렸다. 킬로미터당 육 분의 페이스. 아침 공기의 상쾌함과 달리기의 격렬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적절한 속도다. 여섯 시 근처에 나와 관사 근처를 달리다 보면, 나와 비슷한 옷차림으로 자신만의 달리기에 열중하는 군인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 중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당신을 응원한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인사한 후 리듬에 집중했다. 나는 삼십 분간 같은 속도로 달린 후, 희미한 러너스 하이를 느끼며 속도를 높였다. 사십 분, 칠 킬로미터였다.

세상에는 언제나 많은 일들이 동시에 벌어진다. 내가 녹음을 눈에 담으며 한가로이 달리고 있을 때 한쪽 땅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군인들이 황망하게 죽어 나가고, 내가 영화를 틀어 놓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어느 나라의 아이들은 기근이나 전염병으로 생명을 잃는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여기에 누구의 잘못 같은 것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삶이란 원래 그토록 다양하며 잔인한 것이다. 거기에 형평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달리기를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내가 아는 누군가― 는 거친 탄띠를 들고서 홀로 보급소로 향했다는 사실은, 내가 옷을 벗고서 더운물로 몸을 적시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천장에 탄띠를 걸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씻고 난 내가 깨끗한 티셔츠를 입을 때 그 누군가는 탄띠 안에 제 머리를 집어넣고 결단코 의자를 발로 찼다는 사실은 부조리하다.

그날 오전, 부대에 도착한 나는 당직사관의 전화를 받고 지휘통제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지휘통제실에 당직사관은 없었다. 내가 당직병에게 당직사관의 행방에 관해 묻고 있는데, 아래 계단에서 간호장교가 의무병을 한 명 데리고 올라왔다. 간호장교의 얼굴은 씩씩했고, 자신이 필요로 인해 호출되었다는 긍지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간호장교는 “누가 쓰러졌다고 전달받았습니다”하고 말하더니, 의무병을 돌아보며 “삼 층이라고 했나?”하고 물었다. 나는 재빨리 계단을 뛰어올랐다. 보급소와 샤워실 등이 집합해 있는 삼 층 우측 복도에는 병사들이 어수선하게 모여 있었다. 나는 나에게 경례하는 병사들을 뚫고 지나 4중대 보급소 앞에 멈추어 섰다. 보급소 안에는 당직사관이 무릎 꿇고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누군가 누워 있었다. 보급소 창을 통해 들어온 여름 아침의 햇빛이 다섯 평 남짓의 보급소 구석구석을 비추었고, 부유하는 먼지들을 명료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자의 번쩍이는 전투화 ―더할 수 없이 깨끗이 닦인 전투화였다― 에 부딪혀 부서졌다. 천장에는 누런 탄띠가 매달려 하느작거리고 있었다. 나를 뒤따라온 간호장교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쓰러진 병사의 가슴팍을 양손으로 힘껏 눌렀다. 반동으로 그의 몸이 들썩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자극에 의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간호장교는 몇 차례인가 흉부 압박과 인공호흡을 반복하더니 의무병을 불렀다. 간호장교의 지시 아래, 그와 의무병, 당직사관과 나는 병사를 들어 들것으로 옮겼다. 우리가 들것을 들고 복도를 달려 계단을 내려가는데, 호흡이 맞지 않아 들것이 계속 기울었고, 우리는 흘러내리려는 병사를 손으로 붙잡아야만 했다. 나는 인간이 정말 ‘넋이 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시청각으로 많은 정보가 밀려옴에 따라 뇌에서는 서둘러 정보들을 종합하고 판단하여 간단한 문제는 즉시 행동에 옮기도록 하고 복잡한 문제는 회의 기관에 이관한다. 회의 기관에서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을지에 대해 논의하는데, 회의장 한편에는 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이, 다른 한편에는 도덕과 윤리를 우선시하는 집단이 있어 충돌을 빚는다. 회의에서 통과된 일을 나는 즉각 행동에 옮기지만, 나의 이익과 도덕 문제가 상충하는 상황에는 회의 기관에 과부하가 걸려 뇌는 곧 파업을 선언한다. 이렇게 많은 일들은 저 혼자 해낼 수 없어요, 라고 투덜대는 것이다. 나는 들것을 들고 내려가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이 병사가 나와 같은 중대에 속한 김석훈 일병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김석훈 일병을 구급차에 태워 부대 병원으로 향했고, 수많은 군의관이 뛰어들어 김석훈을 살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나는 부대로 복귀해 교육대장과 연대장에게 차례로 이를 보고했다. 그 뒤에 김석훈의 부모님에게 연락해 악보(惡報)를 전했다. 그들은 우선 부정했고, 다음에는 화를 냈으며, 마지막에는 울부짖었다. 오후가 되자, 헌병대 수사 장교와 수사관들은 4중대의 병사들을 면담했다. 아마 그들은 부대에 부조리가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것이 병사의 자살과 상관이 있는지를 중점으로 면담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차례로 헌병대 수사관에게 불려 가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울리는 유가족의 전화를 받아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하루의 끝에서 그날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는 이 같은 일들이 모두 하루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마치 나흘이나 닷새에 걸쳐서 벌어진 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특별히 빠르게 흐르거나 느리게 흐르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속도로 초침이 이동하고, 초침이 육십 번 움직이면 분침을 한 차례 밀어낸다.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열 시에 이르기까지 열네 시간이라는 시간은 팔백사십 번의 분침의 이동, 오만 사백 번의 초침의 이동으로써 흘러간 것이다. 나는 병사들이 잠들고 난 이후에야 부대를 빠져나와 집에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오늘이 내 전역 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교육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전역을 일주일쯤 미뤄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답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컴컴한 거실이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5

나는 그해 여름 여자친구와 함께 일주일에 다섯 번씩이나 구립 도서관에 갔다. 나는 영어와 수학 교재, 그리고 추리소설을 챙겨서 아침 아홉 시까지 수영의 집 앞으로 갔고, 수영과 만나 나란히 걸었다. 도서관까지는 이십 분쯤 걸어야 했는데, 수영의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길의 절반은 공원이어서, 우리는 시원한 그늘 밑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우리는 관내 독서실에 마련된 자리를 예약했다. 이백 석쯤 되는 독서실은 늘 절반쯤 가득 차 있었는데, 우리 같은 학생들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수학능력시험이나 각종 고시, 자격증을 준비하는 성인들이었다. 도서관까지 걷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장난치며 킬킬댈지라도, 도서관에 도착해 자리에 앉은 후에는 자못 차분한 태도로 각자의 루틴에 맞추어 공부했다. 나는 늘 독서로 시작해서 뇌가 글자를 흡인하는 속도가 느려지면 수학 문제를 풀었다. 그러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다시 영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익혔으며, 그것이 지루해지면 다시 소설을 펴서 읽었다. 그것이 그해 여름 나의 루틴이었다. 우리는 정확히 사십오 분씩 공부했고, 사십오 분이 지나면 십오 분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자판기에서 캔 음료를 뽑아 도서관 바깥을 걸었다. 해는 작열했고 매우 뜨거웠지만, 실내에서 공부하는 우리에게 햇살은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도서관 처마 아래 계단에 앉아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흐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주로 가만히 빗소리를 들었다. 한 시가 되면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편의점에 앉아 김밥이나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공원 그늘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수영이 싸 온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매우 충만한 날들이었다.

학교에 가듯이 일주일에 다섯 번을 그렇게 공부하고 나면, 주말 간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물론 여행이라고 해 봤자, 버스나 전철을 타고 우리가 가본 적이 없는 곳에 가서 실컷 걸으며 여러 가지 장면들을 눈에 담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산 호수공원과 선유도 공원을 걸었고, 광화문과 청계천을 걸었으며 이태원과 압구정의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통해 외부 세계의 감각을 살갗에 분명하게 새겨 넣었다. 그것은 우리가 나고 자란 동네를 걷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었고, 삶의 두께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터프해졌다.

그해 여름의 끝자락이 다가왔을 때, 나는 여자친구와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이야기나 우리 바깥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들 말고, 우리 내부에 있는 이야기, 우리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에 관해서 한 번쯤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단순히, 자 이제부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고 말한다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일요일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하나가 수줍은 듯이 걸려 있었고, 덥지 않은 바람이 풀잎과 사람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그간 찌푸렸던 얼굴은 어느새 반듯하게 펴져 있었다. 나는 여자친구와 1호선 전철의 철로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철로는 때로 땅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어느 순간 다시 지상 위로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한 시간 하고 삼십 분쯤 걷고서, 철로와 인접해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간헐적으로 전철이 철로를 밟는 소리가 공원을 메웠고, 전철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멀어지면 바람이 수풀을 흔드는 소리가 다시 공원을 꽉 채웠다. 우리는 잠시 쉬고서 다시 일어나 손을 맞잡고 공원을 여기저기 걸었다. 마치 모든 흙바닥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려는 듯이. 나는 충분히 땅을 밟았다고 생각했을 때, 멈추어 서서 여자친구를 껴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긴장과 경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무의식적인 데에서 기인한 거부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몸과 달리,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내 가슴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아이를 재우듯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찬찬히 토닥였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점차 이완되었다. 나는 그녀의 몸이 충분히 이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왜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그에 대답하기 위해 한참이나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녀의 내부에서 어떤 생각들이 언어화되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오빠 때문이야.”

그녀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꺼낸 문장의 길이는 고작 그 정도였다. 그러나 그 문장이 가진 무게는 상당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수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애를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손이 나의 허리를 감쌌다. 나는 그녀가 도망치기라도 할 것처럼, 혹은 바람이 그녀를 데려가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전철이 철로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외부 세계의 일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몸을 감촉하며 말로 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서 살고 싶다고 말했었지?” 그녀가 말했다.

“응. 아무도 너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어.”

수영은 내 몸에서 얼굴을 떼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철로 위를 지나가는 전철을 바라보았다. 전철은 다가왔을 때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멀어졌다.

“그런 날이 온다면 네가 내 옆에 있을까?”

“그럴 거야.”

“내게서 멀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수영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햇살을 받은 고요한 바다처럼 찬란하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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