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7
수영과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처럼 남녀가 한 교실을 공유하지 않았다. 남자 반이 위치한 층과 여자 반이 위치한 층이 달랐다. 그렇기에, 우리 반에는 다소 남학교와 같은 분위기가 ―내가 남학교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어느 방식으로든 그러한 집단을 경험해 보면 아, 이런 게 남학교의 분위기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형성되었다. 한 교실 안에 서른 명이 넘는 남학생들을 몰아넣고 나니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괴팍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웃을 일이 가득한 코미디극을 보는 것과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스스럼없는 농담이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는 교실이 매우 낯설었는데, 어느새 동화되어 킬킬대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체육 시간이면 축구의 수비수에 강제 채용되어 날랜 공격수들을 막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추리소설에 흥미를 잃으면서 생긴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수영과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삼 년 내내 등하교를 같이했고, 점심시간이면 빠짐없이 만나 바깥을 산책했다. 바깥이라고 해 봐야 학교 담장으로 둘러싸인 협소한 공간이라 좁은 길목뿐이었지만, 우리는 그 시간만큼은 햇빛을 담뿍 맞으며 오전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공유했다. 수영은 우리 반에 있는 우스꽝스러운 학생들의 이야기를 내게서 전해 듣는 것을 좋아했다. 반에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전날 술을 마셔 숙취로 힘들어하는 학생, 날이 덥다며 상의를 탈의한 채로 수업을 듣는 학생, 모든 수업에 엎드려 자다가도 예쁜 선생님이 ―아마 화학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업에 들어오면 한숨도 자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의 성적 중 화학 점수가 가장 높았던 걸 고려한다면 화학 선생님은 상여금이라도 받았어야 마땅한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괴짜 같은 학생이 있는 건 수영의 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영의 옆자리에는 매 쉬는 시간마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려 그녀가 그 노래를 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학생이 있었고,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빼어나지만, 지독할 정도로 담배를 피워 교복에 냄새가 배어버린 학생도 있었으며, 체육 시간을 앞두고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브래지어를 훌렁 벗어 제 유방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그런 여학생들이 방과후수업에서 남녀가 한 교실에 모이면 한없이 순해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흥미로웠다. 물론 그 편은 남학생도 마찬가지지만.
수영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전과 같은 태도로 성실히 공부했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이야 중학교에서의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었고, 주말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 이상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에 대해서, “공부는 내가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 써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과목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라도 공부하고 싶어. 그게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자유이지 않을까?”하고 말했다. 그녀는 1학년 때 반에서 2등을 했고, 400명 중에서는 10등 안에 드는 성적을 받았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수영은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더 이상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온 에너지를 다해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일 학년을 마쳤을 때 자신이 의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간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간호사야?” 내가 물었다.
“어느 나라에나 병원은 있으니까. 그 편이 이민 가는 데에는 유리할 거야.”
매일 여섯 시 삼십 분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열 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삶을 살면서도 수영이 게을러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 한국을 떠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수업은 졸지 않고 들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때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공책에 연필로 표기해서 두는 방식으로 오목을 두거나, 선생님들이 없는 틈을 타 친구들과 축구공 리프팅 내기를 하곤 했다. 내기에서 지면 벌칙으로 복도에서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돌아오곤 했는데, 매우 유치하며 못된 짓이지만, 덕분에 그 시절은 매우 유쾌하고 충만했다. 나는 그렇게 철없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음에도 1학년 내내 400명 중 50등 안에는 안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건 지난해 여름과 겨울 수영과 함께 독서실에 다니며 끊임없이 추리소설을 읽고, 활자에 질리면 수학 문제를 풀고, 계산에 질리면 영어 공부를 했던 것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역시 수영과는 다소 ―라고 하기에는 많이― 차이가 나는 성적이어서,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수영에 비교하며 더 열심히 하라고 꾸중하곤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도 점심시간이면 반드시 바깥을 산책했다. 그때 나는 절대 수영이 공부하는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넌지시 그녀에게 나를 만나는 데 있어서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공부한다고 밥을 굶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한다고 산책을 게을리해서는 안 돼.” 그녀가 말했다.
“그런 거야?”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만 있는데 이렇게 잠깐이라도 햇볕을 쬐지 않다가는 정말 시체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우리가 고등학생 때 한 데이트라고 해 봐야 대부분 같이 등하교하고 산책하는 것뿐이었는데, 그건 정말 훌륭한 데이트였다. 매일 같은 길목에 같은 산책로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는 늘 새로웠다. 가끔은 어떻게 그렇게 대화가 끊기지 않을 수 있는지 우리 자신도 놀라곤 했다. 예컨대 우리는 ‘만약에’로 시작하는 대화를 즐겨했는데, 그렇게 시작되는 문장은 ―창의력만 있다면― 무한한 것이어서, 무수하게 많은 가상을 상상하고 그로 인해 벌어질 일들에 관해 유쾌하게 떠들어댈 수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다른 데이트, 예컨대 놀이공원에 간다든지 하는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하는 일을 구태여 갈망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것들은 우리의 성향에 맞는 데이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앳되기는 했어도― 분명한 남녀 관계였기에,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따분한 어떤 주말에는 부모님이 없는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같이 떡볶이를 만들거나 토스트를 구워 먹었고, 밥을 먹은 뒤에는 침대에 누워 서로를 껴안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길 기도했다.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여름, 수영은 내게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글쎄”하고 말한 뒤, 그러한 마음이 생겨본 적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어. 어른들이 맥주가 맛있다고 할 때마다, 그 말의 함의는 무엇일까, 하고 말이야. 마치 뜨거운 콩나물국을 숟가락으로 입에 떠 넣으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맛있다는 단어에도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뙤약볕을 몇 시간쯤 걷다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서 물맛이 좋다고 말할 때처럼 그저 해갈의 쾌감일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그렇게 충분히 사유해 본 적이 없어서, 수영의 시선과 호기심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그녀에게 부모님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물어봤지. 하지만 늘 시시한 대답뿐이었어.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돼.’하고 말이야. 꼭 모험 영화에 나오는 대사 같지 않아? 너도 맥주를 마셔봤지? 나는 맥주가 맛있다는 아빠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아빠의 맥주에 몇 번이나 입을 대봤지만, 헛수고였어. 어쩌면 맥주가 맛있다는 말은 반어법일 뿐일지 몰라.”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하는 수영을 보며 나는 킬킬댔다. 우리가 걷던 인도는 공원에 면해 있어 늦게까지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의 반대편에는 술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곳은 늘 시끄러웠다. 의미 없는 고성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맥주의 맛이 좋다기보다는, 취기가 오는 느낌이 좋은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소주를 마시면 되잖아. 값은 소주가 훨씬 싼걸.”
그녀의 말이 맞았다. 물론 소주에는 소주의 맛이 있고, 맥주에는 맥주의 맛이 있겠지만,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입에 대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맥주도 마셔본 적이 없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어?”
“글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이 원체 술을 안 하시니까.”
수영은 그렇게 말하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우리 한 번 맥주를 마셔볼까? 수능이 끝나면.”
“물론 좋아. 하지만 우리는 술을 살 수 없잖아?”
“바보.”
수영은 그날부터 제 집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한 캔씩 숨겼다. 그녀의 부모님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깨닫는 순간도 있었겠지만, 수능 시험을 몇 달 앞둔 모범생 딸이 맥주를 숨기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영은 결전의 날, 그간 모은 맥주를 가방에 넣고 낑낑대며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오징어채와 포테이토 칩을 들고서. 가방에서 꺼내어 보니 수영이 그간 숨긴 맥주는 무려 열두 캔이나 되었다. 무려 육 리터인 것인데, 나는 설사 그게 술이 아닌 물이라고 할지라도 도저히 다 마실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영은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자신만만한 태도로 맥주를 한 캔씩 꺼내어 내 방 베란다에 줄 세웠다. 나는 이미 수영과 함께 집에서 맥주를 마시겠다고 부모님께 허락받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남자친구의 집 냉장고에 맥주를 넣기는 염치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바깥 날씨가 영상 사, 오도쯤 되어서, 맥주는 곧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우리는 맥주의 맛을 깨우친답시고 각자 한 캔씩 들고서 입에 흘려 넣어가며 열두 캔의 맥주를 모조리 마셨으나, 끝내 맥주의 맛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아마 끝에 가서 분명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어느 순간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들어 버렸고, 후반부의 기억은 정확히 필름을 잘라내듯이 사라졌다. 수영은 그날 생에 처음으로 외박이란 것을 한 셈이 되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수영의 핸드폰에는 믿을 수 없이 많은 부재중 전화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수영과 함께 그녀의 집에 가서, 그녀의 부모님에게 십수 번이나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사죄드렸다. 내가 집에 돌아가고 수영 또한 나름대로 곤욕을 치러야 했는데, 그녀는 한 번쯤은 있어야 할 일이라며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 일은 곧 아주 우스운 사건이 되어 우리는 이후 맥주를 마실 때면 그날을 회상하며 킬킬대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친밀감이라는 게 공동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없이 친밀한 존재였다. 중학교 삼 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독특하게 생긴 회초리를 ―그런 건 어디서 구할 수 있었던 걸까?― 들고 다니며 마찬가지로 독특한 어조로 학생을 꾸짖던 도덕 선생님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학교에서 아직 분필을 쓰던 시절, 분필이 칠판을 두드리던 메마른 소리를, 칠판을 지울 때 공기 중에 부유하던 분필 가루의 이미지를, 그때 그 퀴퀴한 냄새를, 처음으로 집에 같이 갔던 여름을, 그때의 부드러운 바람을, 달콤한 아카시아 향을, 그날 주고받았던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도서관에서 코 고는 사람을 만나 겪었던 불편함을, 쉬는 시간에 마시던 커피 우유의 달콤함을, 공원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도시락을 먹을 때의 산뜻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교내에 어떤 나무들이 심겨 있는지를 천천히 관찰했고, 또 각 나무가 몇 월에 꽃을 피우고 몇 월에 꽃이 지는지를 알아내었으며, 선생님마다 수업할 때의 특징을 공유하여, 선생님들이 남학생을 수업할 때와 여학생을 수업할 때 얼마나 다른지 꿰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다른 학급에서 수업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묘한 정보의 차이를 공유하면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수영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해 그녀와 같은 학교에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 운이 좋게 그녀가 합격한 학교와 가까운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를 따라서 대학까지 일부러 가까운 곳에 가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겠지만, 열아홉 살의 내 상상력으로는 성적 맞춰서 대학교에 가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란 계속 바뀌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그럴 바에야 여자친구의 학교와 멀지 않은 학교에 성적 맞춰서 입학하면 그만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대학교라는 것이 멀리에서 보면 모두 달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다 비슷한 게 아닐까? 학생들은 생기 넘치는 얼굴로 따분함을 말하며, 교수들은 농장에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가축처럼 깊은 한숨을 내쉰다. 어느 학교에나 1등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 것이고, 어느 학교에나 적당히 졸업만 하려는 학생이 있을 것이며, 어느 학교에나 대학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학교라는 게 다 비슷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