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8
수영에게 전화가 온 것은 퇴근하여 이제 막 관사에 도착했을 때였다.
“응.”
“퇴근했어?”
“주차하려던 참이야.”
수영은 침묵했다. 나는 차를 세운 뒤 시동을 끄고 안전띠를 풀었다. 시동이 꺼진 자동차가 진동을 멈추며 잠에 들자, 차 안에는 어지러운 침묵이 감돌았다.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어?”
“해 볼게.”
“복잡한 일이더라도 내게 말해 줘야 해. 우리는 부부니까.”
나는 마치 수영이 맞은편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자살한 병사는 내가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끼던 병사였어. 염세적인 데는 있어도 예의가 바르고 일 처리에 능숙했거든.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어쩐지 정당하지 않은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도 나 못지않게 내게 호감을 품고 있었어. 물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이야. 그런데 그 병사가 죽기 얼마 전에 ‘만약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중대장 때문이다’하고 말했대.”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소리가 모두 바닥에 처박혀 버린 듯한 농밀한 침묵이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달력을 확인했다. 사흘 뒤에는 진짜 전역을 할 테고, 나흘 뒤에는 관사를 떠나겠지만, 그동안 먹을 최소한의 음식이 필요했다. 또한 바닥에 돌아다니는 머리카락과 먼지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트에서 물과 식빵, 치즈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맥주를 사 와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리고 창문을 연 뒤 침구를 깨끗이 털어냈고 물티슈로 바닥을 훔쳤다. 쓰레기와 분리수거는 알맞게 정리하여 버렸다. 쓰레기를 버리고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하늘에 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차 있는 상현달이 노란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수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거기 달은 어때? 이쪽은 오른쪽이 찬 상현달이야.
― 이쪽은 왼쪽이 찬 상현달이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역시 오늘도 맥주를 마시러 가지 않을 수는 없겠다고 인정했다. 나란 인간은 그렇게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나는 아무 모자를 집어 눌러쓴 뒤 러닝화를 신었다. 방금 냉장고에 들어간 미지근한 캔 맥주가 아닌 K가 내려주는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K의 호프에 처음 간 것은 삼 년 전이었다. 삼 년 전 나는 대위로 진급하면서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발령받았다. 수영이 서울에서 병원을 정리할 동안, 나는 기혼자 자격으로 임대한 2인 거주용 관사에서 한 달 정도는 혼자 지내야 했다. 나는 발령받은 이후 매일 저녁 맥주가 맛있는 호프를 찾아다녔으나, 논산에는 ‘맥주 따위가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고 생각해 버리는 인간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활동 반경을 넓혀 다른 호프를 찾았다. 관사에서 멀어질수록 얼굴을 아는 이들 ―혹은 알게 될 이들― 과 마주칠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무모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육군훈련소에 발령받은 지 보름 만에 K의 호프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 처음 갔을 때는 상권과도 먼 곳에 있는 호프가 지하에 있는 게 어쩐지 어둡게만 느껴졌지만, 곧 그곳의 주인과 그가 틀어 두는 재즈와 지하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곳은 나에게도 적합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맥주가 무척 맛있었다. 아마 주인이 생맥주 기계 관리를 무척 성실히 하는 모양이었다.
K는 채식주의자였다. 나는 그에게 어쩌다 채식주의자가 되었냐고 물었다.
“어쩐지 살면서 너무 많은 닭과 소를 먹은 것 같았거든. 그에 대한 회개랄까? 아니면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 랄까? 내가 사십 년 동안 먹은 닭과 소는 남들이 백 년을 살아도 다 먹지 못할 양일 거야.”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닭과 소를 많이 먹은 것이냐고 물었다.
“보디빌더였거든. 믿기지 않겠지만 말이야.”
K는 중키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체중이 구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던 보디빌더였다. 그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으며 끼니마다 닭이나 소를 제 주먹만큼 먹었다.
“어쨌든 나는 운동을 그만두었고, 머지않아 육식까지 그만두었어. 그런 마당에 체육관을 운영한다는 게 우습지 않겠어? 내처 체육관을 팔아버렸지.”
“그리고 논산에 와버린 거예요?”
“내가 군에 있을 때 나의 선임이었던 사람이, 십여 년 전 불쑥 이곳에 호프를 차렸어. 보다시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데다 지하에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곳에 말이야. 게다가 맥주는 맛이 없고 안주라고는 노가리와 감자가 전부인 정말 끔찍한 호프였지. 나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몇몇 동기와 함께 그를 보러 여기에 왔었어. 몇 해가 지나자, 그가 내게 여기를 인수하지 않겠냐고 묻더군.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나는 실업팀에서 연봉을 받는 보디빌더였고, 이미 체육관도 운영할 때였어. 여기는 손님이라곤 우리 말고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그런 곳이었지. 그러나 네 해 전 실업팀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체육관을 팔고 나니 할 일도 없겠다, 호프를 인수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이 든 거야.”
“지금은 전혀 끔찍하지 않은데요.”
“절반은 재즈 덕분이지.”
“원래 재즈를 좋아했나요?”
“아니. 호프를 인수한 뒤에 끔찍하게 맛없는 맥주와 감흥 없는 음악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대로 두었다간 나는 파산해 버릴 거고, 아무도 모르는 이 지하에서 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생맥주 기계를 새 거로 들여 관리법을 익히고, 쓸 만한 스피커를 사서 제대로 된 음악을 틀기 시작한 거야. 처음부터 꼭 재즈를 고집했던 건 아닌데,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음악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재즈에 정착했어. 아무래도 노랫말이 있는 노래는 오래 들을 수 없더군. 나는 매일 시간을 들여 재즈를 찾아 들으며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세워나간 거야.”
수영이 논산으로 내려오고 나서 우리는 함께 K의 호프에 갔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지 않고 카운터 석에 나란히 앉아 생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K는 가끔 우리의 맞은편에 앉아 같이 대화를 나눴다. 우리 셋 사이에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던 건 아닌데,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끔 유머를 담아 쉽게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훌륭한 청자(聽者)였다.
내가 호프에 도착했을 때, K는 닭 날개를 굽고 있었다. 나는 K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한 뒤 카운터 석에 앉았다. 한쪽 테이블에는 이십 대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이 제 앞에 생맥주를 한 잔씩 두고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나도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손님이었다. 아마 그들은 사무실 내에서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세 명이리라. 나는 그들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동네에는 여자가 다닐 법한 회사나 공장은 찾아볼 수가 없어 아무래도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녀들을 힐끔 보며 그녀들이 칠판 앞에 서서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은 그런대로 어울렸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군복을 입혀 놓고 경례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들은 군인은 아닌 것이다. 부대에도 젊은 여군들이 많지만, 군인에게는 군인만의 기류가 흐른다. 그런 기류가 흐르지 않고서야 어떻게 군복을 입겠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겠는가. 나는 곧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두고 진지하게 음악에 집중했다. 참새가 건반 위를 통통 뛰어다니는 듯한 피아노 연주였다. 나는 아마 한국을 떠나면 K의 호프에서 듣는 이 재즈와 K가 내려주는 생맥주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주에 떠나는 건가?”
피아노가 주도하던 트랙이 끝났을 때 K가 나의 생맥주를 내리며 말했다.
“일단 관사는 비워야겠지만, 바로 호주에 가지는 못할 것 같아요.”
K는 내게 생맥주를 주었다. 나는 양손을 합장하여 고마움을 표했다.
“어제 말한 이유 때문에?”
“네. 그리고 거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어요.”
K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닭 날개를 좀 구워줄 수 있을까요?”
K는 물론, 이라고 답하며 냉장고에서 꺼낸 닭 날개를 성의 있게 구웠다. K가 굽는 닭 날개는 아주 훌륭했다. 특별한 닭을 쓰는 것도, 특별한 양념이나 향신료를 쓰는 것도 ―내가 추측하기에는― 아니다. 그저 신선한 닭을 먹기 좋게 손질하여 진지하고 성의 있게 굽는다. 다른 데 시선을 주지도, 괜히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닭 날개가 거의 구워졌을 때쯤 소금을 뿌린 후 불 위에 몇 초간 더 구워 접시에 올려 낸다. 그는 아마 요리에 있어서 전문가는 아니겠지만, 태도는 그 못지않게 무척이나 진지하다. 나는 아마 그가 보디빌더 시절에도 그렇게 진지한 태도로 역기를 들고 내렸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 고독한 운동을 마친 뒤에 하루 일 킬로그램에 달하는 닭과 소를 먹었으니, 그가 육식을 그만두기로 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닭 날개를 굽는 K를 바라보며 생맥주를 들이켰다. 첫맛은 탄산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 부드러움이 지나간 뒤에는 강한 탄산이 남는다. 맥주 맛은 호프에 흘러 다니는 음악만큼이나 한결같다. 한 번도 엇나간 적이 없다. K는 곧 구운 닭 날개를 내게 주었다. 나는 역시 양손을 합장한 뒤에 닭 날개를 먹었다. 한 조각을 베어 물고 꼭꼭 씹어 삼킨 뒤 맥주를 넘긴다. 맥주는 입 안에 남은 미량의 소금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것이 K의 호프에서 닭 날개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무엇 좀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말했다.
“물어봐도 되는지 물어보는 거군.”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뉴스는 보았는지 그런 걸 물어보려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겠네.”
K는 나의 말을 희한할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먼저 온 손님의 맥주가 거의 떨어졌으니, 손님이 가든 맥주를 추가로 주문하든 그런 다음에 질문하는 걸로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닭 날개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집 청소를 마친 뒤에 마시는 맥주는 역시 맛있었다. 그러나 이건 알코올릭들의 궤변인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알코올릭들은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술맛이 좋다고 말하고, 날이 맑으면 날이 맑아 술맛이 좋다고 말한다. 일한 뒤에는 피곤해서 술맛이 좋다고 말하고, 쉬는 날이면 컨디션이 좋아서 술맛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집 청소를 하지 않고 마시는 맥주보다는 집 청소를 마친 뒤 마시는 맥주가 ‘반드시’ 더 맛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생맥주 석 잔을 더 주문했다. 나는 아마 오늘 그녀들의 반 학생들이 어지간히 그녀들을 속 썩였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영화 《클래스》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다소 비뚤고 괴팍한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 선생님에게서 트집 잡을 건 없을까, 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교사가 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성적으로는 절대 교사는 될 수 없었지만.
선생님들에게 맥주를 가져다준 K가 나의 맞은편에 섰다.
“무엇을 물어볼지 다소 긴장되는데.”
“아쉽지만 긴장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공백을 두었다. 어떤 질문은, 날씨를 묻듯이 가볍게 할 수 없는 법이니까.
“혹시 살면서 어떤 오해에 휩싸여 본 적이 있나요?”
K는 나와 얼마쯤 거리가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골몰했다. 음악을 듣는 청각의 기능은 잠시 꺼두고 내부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이다. 숨을 꾹 참고 깊은 곳까지 헤엄쳐 들어가면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을 발견하는 일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마지막 한 모금쯤 남은 미지근한 맥주를 천천히, 소리 없이 들이켜자, K는 생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은 채로 냉장고에서 새로운 잔을 꺼내어 생맥주를 채워 내게 주었다. 내가 집에서 도보로 삼십 분이나 걸리는 이 호프에 고작 맥주 한 잔을 마시러 온 것은 아님을 K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누구나 내 나이쯤 되면 어떤 오해에 휩싸여 본 경험이야,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마침내 K가 말했다. “그 과정을 지나면 얼마쯤 터프해지지.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깨지면서 말이야. 그건 물론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없으면 인간은 제자리를 찾는 데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지 않을까.”
“제자리?”하고 내가 물었다.
“자신에게 알맞은 위치를 말하는 거야. 물리적인 위치든, 아니면 내부의 위치든.”
나는 내가 K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정확히 짚지 못했다고 느꼈다.
“너는 군인이니까. 그에 맞는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처음 제 총이란 게 생긴 병사가 사격하면 총알이 빗나가게 되지?”
“그렇죠. 영점이 맞지 않을 테니까요.”
“최소 열 발에서, 많게는 수십 발의 탄알을 소모함으로써 영점을 맞추게 되겠지. 삶도 그런 거야. 우리도 제 위치를 맞추기까지 끊임없이 빗나가는 경험을 하는 거야. 물론 빗나가는 경험이란 절대 유쾌하지 않아.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그 과정에서 환멸을 느끼며 고독해지고 염세적으로 변하게 돼. 그런 변화를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에 너는 이미 내부의 위치는 올바르게 자리 잡은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부의 위치가 올바르게 자리 잡으면 초점이 분명해지거든. 나에게 맞는 안경을 쓴 것과 같아. 그런 사람은 자신이 마주하는 일들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분류할 수 있지. 예컨대, 내가 시간을 들여야 할 일과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돼.”
나는 그의 통찰력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생긴 슬기나 독서를 통해서 깨닫는 지혜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잘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의 한 시점에서 모래폭풍에 휩싸여 본 경험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그런 종류의 통찰력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닭 날개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꼭꼭 씹어 삼킨 뒤 말했다.
“물리적으로는 어떨까요? 제게 맞는 물리적인 위치는 어디일까요?”
“그런 건 내가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건 너는 여기를 떠나 호주에 가야 해.”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K의 제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육식 거부, 지하의 호프, 재즈와 생맥주, 그런 단어들이 송송 솟아올랐다.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 K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의 죽음과 관계된 무엇으로 인해 너는 오해에 휩싸이고 있는 건가?”
“네, 맞아요.”
K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닭 날개가 있던 접시와 거품층이 진 맥주잔을 치운 뒤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꺼내어 손질했다. 그리고 한 접시를 먼저 온 손님들에게, 그리고 다른 한 접시를 내게 주었다. 나는 다시 한번 양손을 합장하여 고마움을 표한 뒤 오렌지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매우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한 오렌지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말이야.” K가 말했다. “오해에는 몇 가지의 종류가 있어. 하나는 자연발생적인 오해야. 예컨대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나의 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떤 누락, 그리고 그 누락으로 인해 생기는 공백으로 오해가 생기고 깊어지는 것이지. 알다시피 그런 경우는 매우 흔해. 일반적으로는 누락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은 누락이 사람 간의 아주 긴밀한 신뢰를 단숨에 무너뜨리기도 해. 물론 이 누락에는 의도적인 누락이 있고 의도적이지 않은 누락이 있어. 그러나 사람의 의도라는 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을 거야.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자신에게 계속 거친 몸싸움을 걸어오는 상대 선수의 발에 태클을 걸어 심각한 부상을 초래했다고 가정해 봐. 그 태클에는 상대를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백 퍼센트 있었거나, 백 퍼센트 없었다는 흑백논리만으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태클을 거는 당사자조차도, 내가 상대를 다치게 할 의도가 얼마만큼 있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거야. 거기에는 수천만 가지의 크고 작은 의도라는 게 있는 셈이지.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오해는 무엇인가. 다른 하나는 타인을 고립시키거나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오해야. 이는 명확히 말하면 물론 ‘날조’지. 그러나 이차원의 존재인 선은, 삼차원의 존재인 삼각형을 그저 선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듯이,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고립되어 버린 이의 시선에서는 오해라고 볼 수밖에는 없는 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어느 정도는요”하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오해가 있을 거야. 예컨대 진실을 감추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잖아? 인간은 그러한 오해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지.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보기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