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8)

장편소설

by 김기현

9


대학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던 수영과 달리 나는 일단은 통학하기로 마음먹었다. 단번에 너무 많은 것이 동시에 변하는 것은 내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품을 들여 하나에 적응하고, 그다음 또다시 품을 들여 다른 하나에 적응하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인 것이다. 학교는 집에서 왕복 세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전철 안에서 나는 책도 읽을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편한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어도, 그런대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1호선 전철이 노량진역과 용산역을 넘나들 때면 반드시 책을 덮고 창밖을 보았다. 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는 시각적 체험은 매번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때로는 찬란한 햇빛이 강에 비쳐 눈부셨고, 때로는 붉은 저녁놀이 고층 건물과 함께 타오르기도 했으며, 때로는 왜인지 가슴을 울적하게 하는 서울의 야경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수영은 평일에는 학교생활에 집중했고, 주말에는 과외 수업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단 하루도 온전히 쉬는 날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쯤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고, 이후에는 공원을 걸었다. 나는 그해 봄, 우리가 어쩌면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느꼈는데, 우선 실제적 거리가 그렇게 되었다. 중학생 때는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고, 고등학생이 되어 교실이 나누어졌으며,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학교가 달라졌다. 나는 앞으로도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상념에 잠겼다. 멀어지는 건 육체적인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수영은 차후 병원에서 일하게 될 간호학도로서 그들만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갖추기 시작했고, 나는 문학과 영화의 언어를 갖추기 시작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둘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다고 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나는 우리의 사고가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들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입 밖에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입 밖에 내는 순간 그것은 진짜 문제가 되어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성장기가 각자 조금은 다른 형태로, 다른 시기에 찾아오듯이, 성인이 된 우리가 성숙해지는 과정도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수영은 말하자면 조금 더 현실적인 과정이었다. 그녀는 월세를 내야 했고, 자신의 끼니를 자신이 직접 요리해서 챙겨야 했으며, 가계부를 들여다보고 지출을 점검해야 했고, 과외 수업을 지속하면서도 학교 성적에 신경 써야 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녀에게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사치스러운, 말하자면 소모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땠는가. 나는 말하자면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강의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피츠제럴드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끼고 읽으며 인간의 어둠을 직시하고 나 나름대로 외부의 힘에 대응할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수영의 삶과는 매우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 자력에 이끌려 서로 조금씩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현실적인 방향과 비현실적인 방향.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견디는 노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대응하려는 노력.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물론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예컨대 그 정도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던 게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력이라는 것은 인력으로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난항 속에서 우리가 그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되면서 우리의 육체적 관계가 새로운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일 때도 자연스레 서로의 육신을 탐닉하며 나신의 상태로 나아갔지만, 언제나 어느 지점에서 수영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그것은 얼어버린 것과는 달랐다. 그녀의 피부가 마치 모든 수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다른 상태로 변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변화가 소녀가 으레 느낄만한 부끄러움과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버지니아는 남성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굳을 때면 나는 이불로 그녀를 덮고서 그녀를 꾹 안았다. 그리고, 괜찮아, 하고 말했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등을 토닥일 때면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 뒤로 그녀를 안으려는 행위는 가능한 한 절제했다. 그러나 수영은 몇 차례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진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손을 이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행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서툴렀지만 그래도 조금씩 방향을 잡아나갔다.

마침내 우리가 완전한 성교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우리를 조금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가 더 가까워졌다거나 하는 종류가 아닌, ―우리의 관계는 더 가까워질 수도 없이 이미 가까웠다― 우리의 관계에 어떤 의무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그녀가 설사 나에게서 멀어져 가더라도,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스무 살의 성교가 가져다준 변화치고는 다소 장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그것과 달랐다.

또한 대학의 긴 여름방학이 우리의 관계를 환기했다. 나는 수영의 권유에 따라 방학 동안 수영의 집에서 지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낮에 일했으면 좋았겠지만, 여름방학이 도래하자 이미 다들 좋은 일자리를 순식간에 꿰차버려서, 하릴없이 위에 커피를 쏟아부으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나는 안암동의 한 편의점에서 오후 열 시부터 오전 여덟 시까지 담배와 술, 라면 따위를 계산하고, 빈 물건을 채우고, 매장을 청소했다. 새벽 두 시쯤이 되어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편의점 앞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새로운 커피를 마시면서 그것들을 치웠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윌리엄 포크너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꿈에 작가가 나와 제 작품에 관한 설명을 해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색이 조금씩 바뀌어 완전한 아침에 이르면 다음 근무자가 왔다. 나는 간밤에 잘 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수영의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늘 일찍 일어나 나의 아침 식사를 차려 주었다. 햄과 채소가 들어간 볶음밥, 카레, 오므라이스, 잔치국수 등 그녀는 다양한 음식을 만들 줄 알았다. 내가 아침을 먹은 뒤 씻고 그녀의 침대에 누워 그녀의 향이 가득한 베개를 베고 잠들면, 그녀는 과외 수업을 하러 나갔다. 교대근무와 같은 양상이었다. 대신 우리는 쉬는 날에는 종일 같이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같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저녁에는 공원을 걸었다.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저런 술을 사서 맛보았다. 때론 과일 향이 나는 소주를 마셔보기도 하고, 때로는 흑맥주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하이볼을 만드는 재미에 취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술을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그해 여름을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 고등학생 때와 같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던 우리의 사고는,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교집합이 점차 확장되었다. 나는 그걸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수영은 내가 다시 본가로 돌아가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했다. 나도 서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를 위한 일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해 늦여름에는 그간 오지 않았던 비가 나날이 쏟아지고 있어서 그녀의 감정 상태가 불안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는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꼭 그녀와 함께 밤을 보냈다. 곧 맞이한 시월에는 가을비가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내렸었는데, 그 탓에 나는 벌써 며칠이나 입은 티셔츠를 손으로 세탁해야 했다.

“티셔츠를 하나 살 걸 그랬나 봐.”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하고 내가 답했다. “이렇게 세탁하면 깨끗한걸.”

“하지만 일주일째 같은 옷을 입게 되었어.”

나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기 봐! 오늘로 칠 일째야! 하면서.”

“그렇다면 그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게 아닐까?”

수영은 쿡쿡대며 웃었다. 가을의 저녁 기온은 멀쩡한 바위가 산 아래로 추락하듯이 갑자기 떨어져 유난히 춥다고 느껴졌다.

“만약에 이대로 영원히 비가 그치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내 옆에 있어 줄 거야?” 그녀가 물었다.

“하는 수 없지.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니까.”

“그러면 내가 매일 티셔츠를 세탁해 줄게.”

나는 꽉 짜낸 티셔츠를 의자에 걸어놓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내게 이불을 덮어주며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이불 아래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영원할 것 같은 빗소리를 들었다. 비는 수직 낙하하여 아스팔트에 부딪혔고 이따금 바람에 휘날려 창문을 두드렸으며 모여서는 어딘가로 흘렀다.

“어쩐지 장마 때 비가 적게 온다 싶더니. 역시 비라는 건 한 해간 내려야 할 총량이 있는 모양이야.” 내가 말했다.

“그런 걸까?”

수영은 생각에 잠긴 듯 아주 차분했다. 아파 보이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사람에게도 총량이 있을까? 고통의 총량이라든지, 슬픔의 총량이라든지……”

나는 그런 게 있대도 별 의미 없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 용량이란 인간마다 다를 것이고, 결국 그 용량을 알 수 없다면 총량의 법칙 같은 건 아무런 의미를 띠지 못할 거야.”

“물론 그래.”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고통에도 총량이 있다면,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될 것으로 생각해. 어쨌든 한 스푼 덜어냈구나, 하고 말이야.”

우리는 다시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철저하게 무의미한 고통을. 원인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전쟁에 징집되어 비가 오는 밤 문득 날아온 포탄에 다리 한쪽이 날아간 자가 느낄 고통, 그러한 무의미함에 대해 생각했다.

“비가 오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내가 물었다.

“내가 이 땅에 혼자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잠든 사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버린 거야. 모두가 나의 존재를 잊고 떠나가 버려서, 이 공허한 땅에 실수로 혼자 남아버린 거야. 거기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아무 소리가 없어. 심해와 같은 어둠과 장엄한 침묵이 나를 뒤덮고, 그 아래 오직 빗소리만이 하릴없이 반복될 뿐이야. 그런 지독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온 뒤에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그러나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인간은 원래 태어나면서 발가벗고 태어났는데 말이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엄마뿐이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 인간이야. 그런 내가 느끼는 상실감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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