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와의 추억 소환
젊어서 일본에 가 결혼하고 살고있는 친구 희선이와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예전에 엄마 모시고 일본에 갔을때 짬을 내서 달려와 같이 본게 마지막이었다. 희선이...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희선이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노란 치즈였다.
1980년대 한국은 아직 외국에서 농산물수입이 거의 금지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오렌지나 귤은 오직 제주도에서 생산해 육지로 팔고있었다. 그시절 이야기이니 거의 호랑이 전자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당시 제주도에서도 귤 농사는 섬 남쪽 서귀포 인근에서 귤 과수원 농장을 하던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어차피 외국의 오렌지를 수입해올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먹는 귤은 제주도 귤 과수원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고있었다. 귤, 오렌지, 바나나, 파인애플 등 더운 지방에서 나는 것은 다 그랬다. 공교롭게도 이 비싼 과일들은 다 노랑색이었다. 제주도에서도 북쪽인 제주시에서 귤 과수원은 귀했고 여기서 학교를 다녔던 우리들에게 노랑색은 비싸고 고급진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희선이를 처음 봤는데 희선이는 제주시에서도 관광특구라 하는 신제주 연동 토박이였다. 따뜻한 마음씨 외에 갖고오는 문구도 입는 옷도 말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뭔가 좀 있어보였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 주고 간 학용품부터 하와이에서 온 관광객이 주고갔다는 슬리퍼까지 뭔가 좀 간지 나 보였다.
일은 학기초 점심시간에 시작되었다. 봄날 창밖에선 운동장 언저리에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고있었다. 급 친해진 몇명이 같이 책상을 붙여 도시락을 까먹으려는데, 희선이가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교실에 갑자기 이상한 꾸린내가 진동을 하기시작했다. 아니 신성한 점심시간에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며 다들 모여드는데 희선이 도시락이 샛노란색이었다. 밥 위에 노란 무언가가 덮고있었다. 냄새의 정체도 그 노오란 것이었다. 아이들은 뭔가 심하게 썩었다고 생각하고 희선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희선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노란것을 밥에 비벼먹는 것이었다. 고급진 노랑색과 대조되는 꾸린내... 게다가 그이상한 것에 밥을 비벼먹다니...
희선아..괞챦아? 뭐 상한거 아니야? 라고 묻자 세련된 도시아이 희선이는 이거 치즈라는 건데 맛있어,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게 그 책에서만 보고 테레비에서 말로만 듣던 고급 간식 치즈라고? 처음엔 걱정과 염려로 희선이를 보던 친구들의 표정은 희선이가 한숟갈, 두숟갈 떠먹으면서 경악으로 변했다. 냄새만으로는 곰팡이 곱하기 백인데 색깔로는 고급진 노랑색의 이게 치즈라고? 그런데 냄새가 이렇게 고약하다고? 이윽고 그 경악은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변했다.
그날 이후 희선이 하면 치즈, 치즈 하면 희선이가 됬다. 거의 개화기 신문물의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학교에 고급 서양간식 치즈를 단박에 소개하고 알려버린 선구자가 되시었다. 이날 이후에도 희선이는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치즈를 싸왔고, 그 귀하다는 치즈를 친구들에게 한장씩 먹어보라고 나눠주는 배려도 잊지 않으셨다. 냄새로는 싫지만 돈주고도 사기어려운 고급음식을 나눠주니 우리도 한입씩은 먹어봤다. 조금씩 우리도 그 노오란 치즈의 깊은맛에 빠져들었다.
음식과 냄새는 인류의 진화에 핵심요인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치즈가 나왔을때 처음엔 이런 반응이었으리라. 그것이 점차 번지고 먹게되면서 좋은 음식으로 자리잡았으리라. 우리 개인의 추억에도 냄새는 깊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내친구 희선이도 그시절 냄새 나지만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주었다. 해마다 봄에 노오란 개나리가 지천에 흐드러지게 필때면 노오란 치즈의 습격사건도 같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