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결혼 20주년이 되었다. 결혼할때만 해도 20년은 너무나 멀고, 불가능해보여 20주년이 되면 대단한 일이 일어날줄 알았다. 20년간 내가 선택한 누군가와 신뢰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희망적이긴 했으나 가능할 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는 대단할 것 없이 두 아이를 잘 키워왔고, 커다란 역경 대신 자잘한 어려움들을 잘 견뎌왔다. 하루하루가 폭풍 전야의 난파선 같았던 내 20대를 끝내며 시작한 결혼생활은 20년을 지나면서 항구에 닻을 내리듯이 평온하게 자리잡았다.
20주년에 남들은 뭐 샤넬백을 산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다이아반지 1캐럿을 했다고도 했다. 돈이 있건 없건 이 정도는 일생에 한번 정도면 사줘도 좋을법하다. 우리 부부는 둘다 맞벌이에 회사일이 막중하여 평소 푹 쉴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 20주년이 되자 용기를 내기로 했다. 샤넬백, 다이아 반지는 됬고, 우리 부부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긴 휴가를 내기로 했다. 길다고 해봐야 연휴와 주말을 포함해 열흘 남짓 정도였다. 그리고 지구본을 꺼내 항상 가고싶었으나 긴휴가에만 갈수있는, 나이 들어서는 갈수 없을것 같은, 그리고 다시는 갈수 없을것 같은 곳을 가기로 했다. 바로 파타고니아 Patagonia.
좋아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가 이곳 지명을 땄다는 것, 그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가 쓴 책에서 읽은 자연중심 경영철학도 알고싶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노스페이스의 창립자도 은퇴후 막대한 재산을 들여 파타고니아 자연보호에 앞장섰다. 무엇이 이들을 파타고니아로 이끌었을까? 그리하여 한밤중에 구글맵 지구본에서 돌려본 파타고니아는 생각보다 크고, 예상보다 멀고, 기대보다 아름다웠다.
파타고니아는 남미의 위도 40도 이하 남단 부분 지역을 일컫는다. 거인의 땅, 파타고니아는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남미를 탐험하며 만난 원주민들이 당시 스페인 등 서유럽 사람들보다 신장이 커 거인족이라고 묘사한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비롯됬다고 한다. 지역으로서 파타고니아는 안덱스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칠레, 동쪽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따라서 칠레쪽 파타고니아와 아르헨티나쪽 파타고니아를 모두 가는것이 좋다. ‘지구의 끝’ 으로 여행자들에게는 지상낙원, 트레킹을 즐기는 모든 트렉커의 마지막 꿈의 종착지로 불리운다.
이는 남미라는 곳이 쉽게 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빙하와 바람과 눈과 산위의 호수 등 좀처럼 한눈에 보기어려운 풍경이 모여있는 독특성도 한몫을 한다. 보통 빙하가 있으면 지구의 양극단에 있어 걸어서 가기 어렵거나, 너무 높은 고지대라 올라가기 어렵다. 파타고니아는 산정호수와 빙하산을 걸어다니면서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도 희귀한 경험이다. 무엇보다 남미가 워낙 가기어렵고 이들이 위치한 나라가 이들 자연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거나 반대로 훼손하지도 않아 자연환경이 정말 “자연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도 파타고니아의 큰 장점이다.
칠레쪽 파타고니아는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를 걷는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이자, 전 세계 트래커들의 성지이다. 파타고니아 대초원 지대에 3천 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파이네 산군의 풍경,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매번 독특한 빛깔의 호수 풍경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아르헨티나쪽 파타고니아는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Los Glaciares)안에 모레노빙하와 피츠로이 세로토레 봉 일대지역을 가보게된다. 모레노빙하와 피츠로이 봉 지역은 위치상 거대한 산맥 군단이지만, 빙하 보호를 위해 직선 통행을 막아 버스로 빙 둘러 한참을 이동해 간다음에야 걷기를 시작해야한다.
호기롭게 파타고니아를 가보기로 결심하기까진 좋았다. 주변에 트레킹 하는 분들과 여행사쪽으로 알아보니 보통 1년~3년 정도 준비, 공부하고 간다고 한다. 이는 높은 빙하산인 파타고니아 여행시기가 연중 남미의 여름인 12~3월경만 가능하고 숙소, 교통편 등이 개인이 준비해 가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쿠... 문제는 남편이나 나나 직장문제로 올해를 넘기면 다시는 긴휴가를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여행사 프로그램은 한달에 한번 정도밖에 없고, 한달 정도 기간이라 우리가 따라갈 수 없었다. 개인이 준비해서 간 경우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가고자한다면 우리가 직접 일정 짜고, 준비하고, 가야한다. 고민끝에 해보기로 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일하느라 서로 너무 바빠서 맨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11월에 결심하고, 12월부터 준비하여 1월에 다녀오게 되었다. 결심한지 2달, 숙소 예약하고 준비한지 1달만에 결행하였다.
“저지르겠다고 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파타고니아 기행기로 유명해진 영국의 브루스 채트윈(Bruce Chatwin)이 한말이다. 그가 ‘선데이타임스’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신문사에 ‘파타고니아로 떠남’이라는 짤막한 글 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그가 쓴 책 ‘파타고니아’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제가 늘 저지르겠다고 협박했던 일을 드디어 결행했습니다. 오늘 밤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납니다.”
채트윈의 말처럼 우리 부부도 저지르겠다고 한일을 결행하였다. 준비기간이 워낙 짧아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려웠다. 심지어 칠레 토레스 델파이네 국립공원내 산장을 예약결재하긴 했는데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제대로 한건지 확신도 없었다. 가는날까지 주변사람들한테 어디 간다고 얘기도 못했다. 저질체력인 우리 자신도 이 모험이 믿기지 않는데, 남들이 믿어줄까 싶었다. 칠레 In 부에노스아이레스 Out 일정으로 잡고 드디어 칠레행 비행기를 탔다. 가는데만 꼬박 이틀 걸리는 대모험이 시작되었다. 제대로된 트레킹으로는 처음, 지구에서 가장 가기어렵다는 파타고니아를 가게 된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