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트레킹, 파타고니아 이야기
여행사에서는 보통 칠레 인-아웃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인-아웃으로 일정을 짜는데 우리는 시간절약상 칠레 인-부에노스아이레스 아웃 일정으로 짰다. 서울에서부터 3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뒤에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내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맨처음 해야할 일이 있었다. 바로 트레킹의 중간중간 고속버스로 이동해야하는 일정상, 버스표를 미리 다 예매해야한다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에선 워낙 트레킹 이용자가 한정적이고 버스도 몇대 없어서 안전하게 하려면 날짜와 시간대별로 미리 예매를 해둬야한다고 들었다.
공항 스타벅스 야외 테이블에 짐을 풀고 앉았다. 산뜻하고 온화한 바람이 부는게 남미에 여름이 왔구나 싶었다. 구글검색으로 찾은 버스회사 사이트에 들어가 날짜별로 버스표를 예매하는데.. 영어로 번역도 잘 안되서 스페인어로 예약을 다 완료햇다. 이미 산장 예약할 때 발휘한 쥐뿔도 모르는 스페인어 신공이 여기서도 역할을 했다. 대충 처음엔 나오는게 이름, 그 다음은 성별일꺼고, 뭔가 년도 나오면 생년월일일꺼고, 그러다 안되면 다시 다른거 입력해보면 되고, 마지막에 카드 번호 누르고 결재가 되면 된거다. 하도 스페인어 떼려맞추기를 많이 해서 나중엔 정말 무슨 뜻인지 스페인어가 들린다.
이제 최남단 지역인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원래 남미의 가장 남단 지역은 푼타 아레나스이고, 우슈아이야 빙하나 남극으로 갈때 보통 이 도시로 간다. 그러나 최근 토레스 델파이네 공원과 좀더 가까운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작은 국내선 공항이 생겨 여기서 1박을 타고 이튿날 아침 일찍 국립공원으로 가야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은 나무로 지은 단층 건물로 캠핑장 느낌인데 공항안은 전세계에서 모인 트레커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르나 다들 모험을 결행한 사람들이다. 피부색, 머리색, 차림새 같은게 다 달라도 하나같이 눈에서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칠레 국립공원내 트레킹은 두개의 트레킹 루트가 있다. 산악지대를 아래에서 빙도는 O 트레킹으로 약 200여 Km 이고 보통 9~10일의 여정이다. 이보다 짧은 것이 아랫쪽 W 트레킹으로 남쪽의 호수들을 보며 북쪽의 암벽과 빙하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이다. 총 80KM 정도거리며 3박 4일 또는 4박5일의 여정이다. 우리는 W 트레킹을 할것이다.
이튿날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토레스 델파이네 국립공원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공원 웰컴센터에서 입장료를 내고 다시 첫 출발지인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가려면 유람선을 타고 푀회 호수 lake Pohoe 를 지나쳐가야한다. 이 호수를 지나칠때 북쪽으로 웅장한 빙하산과 암벽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평온해보이던 푀회 산정호수에 배를 타고 지나가니 바람이 거세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파타고니아의 바람이구나.
우리를 선착장에 내려주고 배는 되돌아갔다. 장수가 강을 건너면 배를 불태운다더니, 타고온 배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가 정말 파타고니아의 심장부에 온게 맞구나 하는 현실감이 몰려왔다.
호숫가에서 그란데 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국에서부터 걱정햇던 것이 엄습해왔다. 내가 산장예약을 제대로 한것이 과연 맞는가? 스페인어로 된 칠레 예약사이트라 가는날까지도 확신이 없엇다. 남편에게도 산장 리셉션 데스크 앞에 일단 가봐야 알겠다고 여러번 얘기했다. 안되면... 그건 모르겠고, 암튼 가보자. 내가 갖고있는 유일한 정보는 예약번호. 산장직원은 예약번호를 한참 치더니 도미토리 번호를 알려주었다. 성공이었다. 히유... 일단 오늘 밤 비는 피했네...
파이네 그란데 산장은 6-8인 도미토리 형태로 구획된 목조 산장이다. 이런 도미토리 형태의 산장에 처음 와봐서 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남녀 구별도 없는 숙소에 처음엔 다소 당황했다. 그러나 하룻밤 자보니 이것이 경험에 의한 최적의 산물임을 알수 있었다.
한방에 침대 여러개를 두는 형태라 전세계에서 트레커들이 오는데 남녀 성별로 구분하여 방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리라. 여자 방이 빈 상태로 공실로 운영할 수도 없으니 결국 한 방에 남녀 구분 없이 다 받게 된섯 같다. 대신 방을 안에서 잠글수 있게 하면 사고발생시 밖에서 대응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방문을 잠글수 없도록 한것이 신의 한수 이다. 공용샤워실은 깨끗했고, 온수도 잘나왔다. 산장 직원들은 방관리, 샤워실과 화장실, 로비 청소 등 공용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일, 그리고 식당 관리 이정도만 하면 될것이었다. 산장엔 작은 로비와 큰 식당이 있고 2층엔 맥주 펍도 있어서 저녁엔 산행을 마치고 온 여행객들로 왁자지껄할 것이다.
시계를 보니 지금은 오후 1시. 우리방 침대를 보니 이미 다른 사람들은 짐을 부리고 일찍 어딘가로 간것 같았다. 한낮에 짐을 부리고 산장 로비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산행을 나가보기로 하였다. 등산화 끈을 조여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