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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식 보고서(5)- 공무원의 명령불복종과 절차적 고민

- 복종의 의무와 명령 불복종

by 걷는사람

품격있는 글쓰기로 장병은 구했지만 함장은 파면되다.

지난 편에서 미국의 품격있는 공문서 글쓰기의 표본으로 코로나 시기 해군 크로지에 함장의 보고서를 소개한 바 있다. 이 공문서가 언론에 나온뒤 미국 국민들은 해군본부를 비판했고, 해군 지휘부는 이에 분노하여 작성자인 크로지에 함장을 명령불복종으로 파면시켰다. 해군본부 내부적으로는 서한을 언론에 유출한 자를 색출하면서 4월 2일, 크로지에 함장을 전격 경질한다. 당시 모들리 해군장관 대행은 “서한 유출에 크로이제 함장의 책임이 드러난다면 군의 질서와 규율을 해치는 행위”라고도 하면서 결국 크로지에 대령을 파면시킨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45668.


그러나 파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공문서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이를 읽어본 미 국방부와 시민들은 함장을 옹호하고 해군본부를 비판하게 된다. 결국 함장의 상급자인 해군장관 (당시 지명자)를 물러나게 하는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는 명령과 규율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였고, 비록 크로지에 대령도 파면되고 해군장관도 모두 경질되었지만, 미 전역에서 크로지에 대령의 용기와 리더쉽이 회자되었다.


크로지어 함장 사건을 보는 또다른 시선 - 시민의 기본권과 공직자의 명령 불복종

코로나 19사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월 4,800여 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남중국해에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출항한 미 항공모함 루즈벨트호에서 3월부터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루즈벨트호는 3월 27일 괌 해군기지로 복귀, 정박하였으나 해군본부의 하선불가 명령으로 하선하지 못하고 대기하게 되었다. 이에 3월 30일 크로지어 함장은 해군지휘부 등을 포함한 20여 명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이메일로 송부했고 이게 언론에 공개됐다.


해군은 해군인원 하선을 허가하면서 동시에 크로지어 함장을 해임시켰다. 이 사건은 군인을 포함한 시민의 기본권과 공직자의 복종의무가 충돌하는 일이었다. 장병들의 생명권 보호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임무수행이라는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지휘관인 함장은 승조원들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휘관으로서 장병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기에 함장의 경질은 미 해군당국의 과도한 처사로 보였다.


함장의 조치는 정당했나?

영상 공개 이후 미국 민주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함장의 복귀 청원을 내자, 미 해군은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 2020년 6월, 미 해군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함장의 조치가 미흡했기에 복귀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함장이 군사보안을 준수하지 못하여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크로지어 함장이 서신을 상용이메일로 발송하면서 루즈벨트호의 위치 및 피해 장병들에 대해 상세하게 공개하게 되었고, 루즈벨트호가 남중국해 임무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력공백을 노출했다는 것이다.


서신의 언론 공개 이후 실제로 남중국해에서 중국 선박이 베트남 어선과 충돌해서 베트남 어선을 침몰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보안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서 외부에 부대상황을 노출했기 때문이었다. 전투준비라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경질의 근거로 삼았다.


내 의견이 옳다 해도 절차에 따라 건의해야 한다.

즉 당시 미 국방부와 해군의 입장은 설령 그 의견이 옳다해도 절차와 규정을 지켜 건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당시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컸던 시기였기에, 크로지어 함장의 조치를 지금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의견을 제기하고자 할 경우에는 법과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군 지휘관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국군의 본연의 임무수행을 포기하거나 위험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응 타당한 말이다. 특히 당시 트럼프 1기 시대 대통령의 철학이 명확하여 더 이상 반대목소리가 나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와 군인의 일상적 절차와 공식 라인이 막히고 오염되었다면?

이제 다시 트럼프 2기가 되었고, 만약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똑같이 그는 명령불복종으로 처벌받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일도 적지 않다. 그새 한국에서도 고민할 일들이 많아졌다.


확실한 것은 안팎의 의견이라는 의미의 '언로'라는 것은 반드시 공식 보고라인이나 보고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공식 라인과 일상적 절차가 경직되고 오히려 특정 세력에 의해 오염되는 경우도 많다. 이럴때 지휘부와 리더쉽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하급자와 일선 시민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언로'는 열어둬야한다.



참고

- 이상택, “미 항공모함 루즈벨트호의 코로나19 사태시 함장의 지휘조치에 대한 법적 검토”, 인하대학교 법학연구, 2021.3.

- 김백진, HIM 잡지 2023.10월호에 기고, “당신이 쿠로지오 함장이라면”,

https://www.nbcnews.com/news/us-news/videos-show-sailors-cheering-navy-captain-relieved-command-after-raising-n117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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